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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Re:부자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 갈수 없는가? 카테고리 |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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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정임 쪽지 캡슐 작성일2012-08-26 조회수1,113 추천수1 신고

+샬롬(그리스도의 평화)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마태 19,24)

부자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는가?

부자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창세기의 아브라함도 부자였습니다. "아브람은 은과 금이 많은 큰
큰 부자였다."(창세 13,2) 그리고 욥도 부자였습니다.
"그 사람은 동방인들 가운데 가장 큰 부자였다."(욥기 1,3 참조)
이 당시의 욥이 소유했던 모든 것들은 다 무로 돌아갔지만 훗날
하느님을 진정으로 만난 욥은 주님께서 전에 소유하였던 것을 갑절로
더해 주시는 축복을 받았다고 합니다.(욥기 42,10 참조)

그리고 부자로 말하면 창세기의 요셉을 꼽을 수 있겠지요.
다윗 왕도 부자였고, 구약의 인물들을 다 찾아보지 않아서 그렇지
부자로 살았던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구약에서의 하느님의 축복은 현세적인 축복의 개념으로 살아가는 동안
부자로 사는 것을 축복의 개념으로 이해하고 있었다고 배웠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고 하신 말씀을 글자 그대로
해석하시면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말씀으로 보여집니다.

그럼 왜 예수님께서 부자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말씀하시는지를 먼저 보셔야 할 것입니다.

먼저 부자 청년의 질문을 검토해 보면 "스승님, 제가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무슨 선한 일을 해야 합니까?"라고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이 질문을 자세히 보시면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을 인간의 어떤 선한
행위로 얻으려는 것이 보입니다.

선한 무엇을 하면 얻어지는 것이라고 우리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 질문에 예수님께서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을
지키라고 하니까 그 청년이 그런 것들은 제가 다 지켜 왔습니다.
하고 대답하였습니다.

그 대답에 예수님께서 다시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너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하시자 그러나 그
젊은이는 이 말씀을 듣고 슬퍼하며 떠나갔습니다. 그가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여기에서 제가 묵상한 것은?
계명만 지킨다고 완전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완전한 사람이 되는 길은 바로 형제를 실체적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큰 일입니다.
현재 제 현실에 비교해서 저는 이 청년의 발뒤꿈치도 따라가지 못합니다.
이 청년은 계명을 잘 지켰다고 합니다. 그런데 저는 계명조차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계명을 지키는 일보다 더 큰 일은 사랑하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굶주린 이웃이나 형제를 바라보는 마음에 측은지심이 없다면 절대
가지고 있는 재물을 팔아서 나눌 수 없다는 사실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사람이 자기 스스로 계명을 잘 지켜서 갈 수 있는
나라가 아니라 불쌍한 이웃을 향한 측은지심, 곧 사랑을 실천할 때
갈 수 있는 나라인데 그 사랑은 주님의 말씀을 온전히 따를 때에만
가능한 일이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나라와 부자 청년 이야기 바로 직전에 어떤 일이
있었느냐하면? 어린이들을 사랑하시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여자와 어린이는 인격적인 대우를 받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인격적인 대우를 받지 못하는 어린이들을 받아 들이시며 그들에게
손을 얹어 축복해 주시며 하신 말씀을 묵상하면 이렇습니다.

"사실 하늘 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마태 19,14)
어린이들이라는 것을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단순하고 순수함, 그럼으로써 말씀을 잘 따를 수 있다는 것과
먹고 살기 위한 노동력이 없어 누군가 도움을 주지 않으면 굶어
죽는 처지의 약한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부자 청년에게 그동안 계명을 잘 지켰으니 이제는 내가
이 어린이들을 받아들이듯이 너도 가진 것을 팔아 이 어린이들과 같이
노동력이 없는 불쌍한 이웃들과 나눔(사랑)을 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부자 청년은 이 말씀을 듣고 슬퍼하며 떠나갔습니다.
그렇습니다. 계명을 지키는 일보다 더 힘든 일이 사랑하는 일입니다.
사랑은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가지고 있는 것을 나누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사랑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면서 보여주신
그것이 사랑인데  누가 그렇게 죽기를 진정 갈망하겠습니까?

"내가 죽음으로써 네가 사는 길!"
곧 한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는 길!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가는
것이 더 쉽다. 그토록 불가능하게 보이는 일을 이제 하느님이신
예수님께서 몸소 보여주실 것입니다. 십자가상 수난과 죽으심으로.

그리고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는 다른 묵상은?
사람의 자신의 선한 의지만으로는 불가능하지만 어린아이처럼 단순하게
말씀을 따를 때는 가능하다는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바로 다음 대목에서 따름과 보상에 대한 말씀을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내 이름 때문에 집이나 형제나 자매, 아버지나 어머니,
자녀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모두 백 배로 받을 것이고 영원한
생명도 받을 것이다."(마태 19,29)

그러므로 처음에 부자 청년이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자신이 무슨
선한 일을 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라고 봅니다.
영원한 생명은 결국 인간의 선한 어떤 행위로 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따름과 관계없이 전적으로 인간의 선한
어떤 행위로는 부자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불가능하게
보이듯이 불가능하지만,

하느님의 말씀을 전적으로 따를 때 선물로 받는 것이라는 의미로
예수님께서 보여주시는 십자가상의 수난과 죽음(사랑)을 우리도
받아 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그것이 불가능하지만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모든 것이 불가능해 보이지만 하느님의 말씀을
진정으로 따른다면 가능하다."

부자 청년이 자신의 생각을 따랐기에 슬퍼서 떠난 것입니다.
자신의 생각을 따르면,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 나가는 것과 같이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하느님의 말씀을 따랐다면 그가 그토록 원하는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부자 청년처럼 사람의 생각을 따르면
그것이 불가능하지만 하느님의 말씀을 따르면 그것이 가능하다는
말씀으로 이상은 저의 개인적인 묵상입니다.

주님 안에서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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