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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성서의 해: 신명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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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9-08-12 조회수6,104 추천수1

[2019 사목교서 ‘성서의 해Ⅰ’] 신명기 I

 

 

이제 우리는 오경의 마지막 책인 신명기(申命記)를 만나게 됩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이집트를 탈출하여 시나이산에서 하느님과 계약을 맺고, 계약을 맺은 후에 이스라엘 백성은 사십 년이라는 긴 시간을 광야에서 보냈습니다. 이제 그들은 약속의 땅을 눈앞에 두고 요르단 강 건너편인 모압 땅에 이르게 됩니다. 신명기는 바로 이곳에서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해준 연설을 담은 책입니다. 민수기는 “주님께서 예리코 앞 요르단강 가의 모압 벌판에서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명령하신 계명과 법규들이다.”(민수 36,13)라고 마무리됩니다. 그리고 민수기에 이어서 신명기는 “이것은 모세가 요르단 건너편 아라바에 있는 광야에서, 온 이스라엘에게 한 말이다.”(신명 1,1)라고 시작됩니다. 창세기에서 탈출기, 탈출기에서 레위기, 레위기에서 민수기로 내용이 이어진 것처럼, 민수기도 자연스럽게 신명기로 이어집니다.

 

신명기의 내용을 살펴보기에 앞서 먼저 제목을 통해서 신명기를 알아보고자 합니다. 히브리어 성경의 제목 신명기는 ‘이것들은 말씀들이다’라는 의미를 지닌 ‘엘레 핟데바림(הדברים אלה)’입니다. 이 제목은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한 연설문이라는 성격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부르는 신명기(申命記)와는 뭔가 다른 뉘앙스로 들려옵니다. 그 기원은 어디에서 유래한 것일까요? 그것은 그리스어 번역 성경인 칠십인역에서 유래합니다. 칠십인역에서 제목을 ‘듀테로노미온(δευτερονόμιον)’으로 부르는데 이는 ‘두 번째 법’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럼 첫 번째 법, 두 번째 법이 있는 것일까요? 이 그리스어 단어는 신명기 17,18의 히브리어 ‘미쉬나 하토라 하조트(הזאת התורה משׁנה)’라는 단어를 그 원뜻인 ‘이 법(토라)에 대한 필사’를 ‘이 두 번째 법’이라고 잘못 번역하여서 나온 제목이었습니다. 잘못된 번역이긴 하였지만, 의미가 완전히 틀리지는 않았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시나이산에서 하느님과 계약을 맺으면서 받은 첫 계명들을 ‘첫 번째 법’으로 본다면(탈출 19장-민수 10,10), 이에 대하여 해설을 해 주는 신명기를 ‘두 번째 법’으로 이해할 수 있게 만들어 줍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사용하는 ‘신명기(申命記)’는 어떤 의미일까요? 바로 거듭이라는 의미를 지닌 거듭 신(申)자와 명령하다는 의미를 지닌 목숨 명(命)의 조합입니다. 신명은 ‘명령을 거듭하다’이며, 이는 바로 두 번째 명령, 법이라는 칠십인역 제목을 번역한 단어입니다.

 

신명기는 오경의 마지막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이라는 것은 다섯 권 책을 마무리하는 역할을 보여줍니다. 오경의 결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집트를 탈출하여 약속의 땅을 앞에 두고 탈출부터 지금까지의 긴 여정을 회고하며 모세가 죽음을 앞두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해준 유언과도 같은 말입니다. 민수기에서 이집트를 탈출한 탈출 세대는 그들의 불신앙으로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새로운 세대가 약속의 땅에서 하느님 말씀에 충실하게 따르면서 살아갈 것을 모세는 당부합니다.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하느님을 향한 신앙을 잃지 말 것을 당부하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러기에 신명기는 시나이산에서 맺은 계약을 상기시켜줍니다(탈출 19-24장). 그리고 신명기의 신학을 우리에게 전해줍니다. 그 중심에는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신명 6,4-5)입니다. 한 분이신 그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 그것이 바로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할 핵심이라는 사실을 모세의 입을 통해서 들려줍니다.

 

신명기는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보낸 사십 년이라는 시간을 정리하여 주는 책입니다. 이스라엘의 이집트 탈출 여정의 요약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의 죽음을 앞에 둔 하느님의 성실한 종이었던 모세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봅시다. [2019년 8월 11일 연중 제19주일 인천주보 3면, 박형순 바오로 신부(인천가톨릭대학교 교수)]

 

 

[2019 사목교서 ‘성서의 해Ⅰ’] 신명기 II

 

 

신명기는 모세의 입을 통해서 ‘하느님은 한 분이시고, 한 분이신 그 하느님을 사랑하라’는 가르침을 이스라엘 백성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알려줍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구체적인 방법, 그것은 하느님과 맺은 계약에 충실하고, 하느님께서 내려주신 규정들을 성실하게 지키는 것이라는 사실을 신명기는 강조합니다. 이러한 내용들을 신명기는 크게 모세의 세 개의 연설(신명 1-4장; 5-28장; 29-30장)과 부록(31-34장)을 통해서 전달해 줍니다.

 

첫 번째 설교(1-4장)에서는 모세가 호렙(시나이)에서 시작한 광야에서의 여정을 회고합니다. 하느님과 관계된 십계명에 대한 해석을 통해서 이 규정들을 지켜야 약속의 땅에서 축복된 삶을 살 수 있음을 알려줍니다. 두 번째 설교(5-28장)에서는 법령과 규정들에 대한 해석을 소개합니다. 특히, 이 부분에서는 학자들에게 ‘원신명기(原申命記)’라고 불리는 ‘신명기 법전(신명 12-26장)’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신명기 법전은 예배, 정치, 형벌 등과 관련된 세부 규칙들을 다룹니다. 세 번째 설교(29-30장)는 모세의 마지막 설교입니다. 과거의 잘못을 반복하지 말고, 하느님을 선택할 것을 요구합니다. 생명과 죽음, 축복과 저주,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의 선택에 달려있는 것이니, 주님의 가르침을 선택하여 생명과 축복을 얻을 것을 권고합니다. 이어지는 부록(31-34장)에서는 여호수아의 후계자 임명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고, 모세가 열두 지파를 축복한 이후에 죽음을 맞이하는 이야기로 마무리됩니다.

 

조금 뜬금없지만, 혹시 우리나라가 아닌 외국에서 미사 참례를 해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그 미사가 어떠했나요? 우리나라에서 참례하는 미사와 큰 차이점이 있었나요? 미사에 사용되는 언어 외에는 시작 전례, 말씀의 전례, 성찬례, 마침 강복과 파견에 이르기까지 전혀 다른 차이점을 발견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것은 왜 그런 것일까요? 우리는 사도신경을 고백하면서 하나이며 보편된 교회를 고백합니다. 하나이며 보편된 교회, 그것은 우리가 믿는 대상이 한 분이신 하느님이며, 하느님을 믿는 하느님 백성도 하나이며, 그 하느님께 드리는 제사도 하나이기에, 우리는 세계 어디에서나 하나의 전례를 행하게 됩니다.

 

이와 같이 한 분이신 하느님, 하나의 전례, 하나의 백성은 예수님 시대에 생겨난 가르침이 아니라, 이미 구약 시대부터 강조되어 왔습니다. 그리고 그 가르침을 강조하고, 중요하게 언급한 성경이 바로 신명기입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신명 6,4)라는 신앙고백이 강조되며, 아울러 한 분이신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이라는 하나의 백성을 선택하셨고(신명 7,7-8 참조), 그 하나인 백성은 하나의 전례를 통해서 한 분이신 하느님을 섬길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전례의 통일성을 위해서 신명기에서는 하느님께서 약속의 땅 가운데 한 장소, 바로 예루살렘을 선택하셨고(신명 12장 참조), 그 장소에서만 합당한 예배를 드릴 수 있음을 분명하게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미사를 어디서나 참례할 수 있습니다. 우리 성당이 아니면, 옆 본당으로 가도 아무런 문제가 없지요. 만약, 우리 가톨릭 신자가 합당하게 미사를 참례할 수 있는 장소는 오로지 로마에 있는 베드로 대성당에서만 가능하다고 한다면, 어떨까요? 황당하겠지요. 하지만, 구약에서는 오로지 예루살렘에서만 합당한 예배를, 제사를 봉헌할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한 분이신 하느님을 섬기는 길은, 하나의 백성이 하나의 전례를 가지고, 오로지 한 곳에서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그렇다면, 오늘날에 비해 교통이 더 불편한 그 옛날에 왜 이런 불편함을 감수했을까요? 그것은 바로 모든 지역에 성전을 짓고, 예배와 제사를 드리게 될 경우에는 위험성이 존재했기 때문입니다. 그 위험성이라는 것은 다른 이방민족들이 각자 섬기는 신들에게 봉헌하듯이,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께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위험이 있고, 그것은 참된 하느님 신앙을 훼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그들은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모세가 경고한 잘못된 예배를 봉헌했습니다.

 

신명기가 전해주는 길고 장황하고, 세부적인 규정들은 우리 삶의 자리와는 거리가 멀게 보입니다. 그래서인지, 읽기가 쉽지 않지요. 하지만, 신명기를 읽으면서 그 모든 규정들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한 분이신 하느님만을 섬기고, 그분만을 사랑하라는 요청이요, 가르침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아울러 한 분이신 하느님이 아닌 다른 우상에 의존했던 우리들의 신앙을 재정비해 보면 어떨까요? [2019년 8월 18일 연중 제20주일 인천주보 3면, 박형순 바오로 신부(인천가톨릭대학교 교수)]

 

 

[2019 사목교서 ‘성서의 해Ⅰ’] 신명기 III

 

 

신명기를 살펴보면서, 가장 중요한 신명기 신학은 한 분이신 하느님을 믿는 것이라는 사실을 강조했습니다. 이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이렇게 강조한 이유는 무엇일까? 신명기를 집필한 저자는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의 땅에서 하느님만을 섬기면서 하느님께 맞갖은 제물을 봉헌하는 그런 이상적인 삶을 살지 못했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명기는 한 분이신 하느님을 강조하고, 그분만을 사랑하라는 가르침을 전해줍니다. 또한, 한 분이신 하느님을 섬기고 사랑하는 것, 그것은 우리의 선택이라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그러한 사실을 신명기는 모세의 입을 통해서 우리에게 선포합니다.

 

“보아라, 내가 오늘 너희 앞에 생명과 행복, 죽음과 불행을 내놓는다.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주 너희 하느님의 계명을 듣고,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하며 그분의 길을 따라 걷고, 그분의 계명과 규정과 법규들을 지키면, 너희가 살고 번성할 것이다. … 그러나 너희의 마음이 돌아서서 말을 듣지 않고, 유혹에 끌려 다른 신들에게 경배하고 그들을 섬기면, 내가 오늘 너희에게 분명히 일러두는데, 너희는 반드시 멸망하고, 요르단을 건너 차지하러 들어가는 땅에서 오래 살지 못할 것이다”(신명 30,15-18).

 

조금은 긴 말씀이지만, 요지는 간단합니다. 하느님 계명에 충실하고 그분의 가르침을 잘 따르면 복을 받고, 반대로 하느님의 가르침을 거스르고, 다른 신들을 섬기면 불행이 다가올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상선벌악(賞善罰惡)의 가르침입니다. 그러므로 생명을 누리고 행복하기 위해서는 올바른 선택을 하라는 것이지요. 이것은 협박이 아니라, 선택에 책임을 지라는 권고입니다. 신명기는 지금의 삶이 행복하고 감사함과 기쁨이 넘친다면 그것은 올바른 선택에 대한 보상이라고 알려줍니다. 반대로 불행과 고통이 가득하다면 그것은 억울한 것이 아니라, 선택이 옳지 못했음을 경고합니다. 따라서 불행과 고통은 하느님의 뜻을 따르지 않았고, 그분 가르침과 반대되는 길을 선택한 것에 대한 책임이라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삶에 비추어보면 조금 억울하게 다가오는 부분도 있을 수 있습니다. ‘내가 무슨 큰 죄를 지었다고 이러한 고통이 나에게 오는가?’라는 질문을 던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신명기의 저자는 한 개인에게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라는 하느님의 백성 공동체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역사 안에서 고통과 불행의 문제를 바라보았습니다. 이방 민족의 침입을 받고, 도성과 성전이 파괴되는 어려움 속에서, 그 원인이 하느님의 부재(不在), 혹은 하느님의 무능함 때문이 아니라, 하느님과 계약을 맺은 이스라엘의 불충실함 때문이었음을 주장합니다.

 

신명기는 창세기부터 시작된 오경을 마무리합니다. 하느님의 창조에서 세상의 기원을 찾았고, 아브라함이라는 한 가족 공동체에서 시작하여, 이사악과 야곱을 거치면서 부족 공동체로 성장하고 마침내 이스라엘이라는 민족 공동체로 완성된 그들의 이야기를 마무리합니다. 한 민족 공동체가 하느님과 계약을 맺으면서 하느님의 백성 공동체로 정체성을 얻은 그 긴 여정을 마무리합니다. 그 여정의 마무리에 바로 ‘선택’이라는 과제를 하느님 백성 공동체에게 전해줍니다.

 

성경을 펼치면 우리가 가장 먼저 만나는 다섯 권의 책, 오경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에게 가장 중요하기에 ‘주님의 가르침’이라는 의미를 지닌 ‘토라(תורה)’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이 다섯 권의 책을 부릅니다.

 

약속의 땅 밖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을 체험하였고, 하느님과 계약을 맺었습니다. 이제 약속의 땅에 들어갈 모든 준비를 마쳤습니다. 하느님과의 계약을 바탕으로 약속의 땅에서 살아가기만 한다면, 이스라엘 백성에게 어려움은 없을 것입니다. 주님의 가르침은 그들을 모든 위험에서 지켜주고, 그들이 어려움을 넘어설 수 있는 힘을 주는 든든한 배경이 되었습니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주님의 가르침을 따르겠다는 선택만이 남았습니다. 신명기에 이어서 등장하는 역사서들은 이스라엘이 어떠한 선택을 하였는지 우리에게 알려줄 것입니다. 약속의 땅에서 이뤄진 이스라엘 백성의 순간의 선택. 그것이 어떠한 결과를 가져오는지 함께 지켜봅시다. [2019년 8월 25일 연중 제21주일 인천주보 3면, 박형순 바오로 신부(인천가톨릭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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