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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경] 로핑크 신부의 바이블 인사이트: 행동하는 기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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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9-08-13 조회수5,767 추천수1

[로핑크 신부의 바이블 인사이트] 행동하는 기다림(Tätiges Warten)

 

 

기원전 아마도 1250년경에, 이집트의 한 강제 노동 수용소에서 한 무리의 외국인 노동자들이 탈출을 감행합니다. 그들은 법의 보호도 받지 못한 채 극도의 억압을 당하고 있었지요. 그들은 이집트 국경 수비대의 전열을 뚫고 광야가 있는 동쪽으로 도망칩니다. 그들이 믿고 의지하던 것은 그들이 주님(YHWH)이라 부르는 자신들의 신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찾고자 했던 것은 더 이상 억압이 없는 정의로운 새 사회였습니다.

 

이 작은 무리의 탈출은 그저 역사의 작은 변방에서 일어난 사건이었습니다. 국경 수비대 말고는 아무도 그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도망치던 무리는 자신들을 억압하던 간수들의 철퇴와 곤봉의 그림자에서 마침내 벗어났다고 느꼈을 때, 비로소 안도의 숨을 쉴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수백 년 뒤에 구약성경이 이 탈출 사건을 이야기할 때, 이 사건은 이미 하나의 ‘원형’이 된 지 오래였습니다. 말하자면 그것은 이스라엘의 모든 해방 체험에 대한 근원적 본보기이자 계속해서 되새겨야 하는 원천이었습니다.

 

 

지혜서의 예

 

이처럼 원형을 다양한 방법으로 거듭 되새기는 과정 가운데 하나로 구약성경의 ‘지혜서’를 들 수 있습니다. 지혜서를 쓴 현자는 이집트 탈출을 되새기며, 그 탈출의 밤이 이집트인들에게는 그들의 영혼 깊은 곳에서 올라온 유령들 마냥 끔찍한 공포가 들이닥치는 밤이었다고 말합니다(지혜 17,9-21 참조). 하지만 그 밤은 하느님의 약속을 신뢰한 이스라엘에게는 해방의 밤이었습니다.

 

지혜서의 저자는 후대에 이루어진 이스라엘의 모든 파스카의 밤들을 이 탈출의 밤 하나로 집약합니다. 그 밤에 이미 조상들의 찬미가들이 불리고(지혜 18,9 참조), 깊은 정적이 만물을 감싸고 시간은 흘러 한밤중이 되었을 때, 하느님의 전능한 말씀이 이스라엘을 적들에게서 구하기 위해 하늘에서 뛰어내렸다고 말합니다(지혜 18,14-15 참조).

 

그 밤에 이스라엘은 확신에 차 기다립니다. 하지만 그 기다림은 순전히 아무것도 하지 않는 수동적인 기다림이 아닙니다. 기다리는 이들은 한마음이 되어 가진 모든 것과 삶 전체를 서로 나누고, 심지어는 그들에게 닥치는 위험도 함께 나눕니다(지혜 18,9 참조).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기다림

 

지혜서의 이러한 통찰은 복음서의 몇몇 본문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열쇠를 제공해줍니다. 예를 들어 연중 제19주일(다해)에 읽는 루카 복음서 12장 32-48절이 그렇습니다. 이 부분은 루카 복음사가가 예수님의 여러 비유와 표상적 말씀들을 하나로 묶어 놓은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이 여러 전승들을 하나로 연결하는 주제는 재림하시는 주님에 대한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기다림입니다.

 

여기서도 그리스도인 공동체는 역사적인 이집트 탈출 때처럼 강력한 사회에 둘러싸인 작은 집단에 불과합니다. 그들은 “너희들 작은 양 떼야,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그 나라를 너희에게 기꺼이 주기로 하셨다.”(루카 12,32)라는 주님의 말씀을 믿고 인내하며 삽니다.

 

미래는 힘세고 부유하고 배부른 이들의 손에 놓여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작고 하찮은 이들에게 달려 있습니다. 그들이야말로 하느님께서 이미 계획하신 새것, 그분의 온 기쁨이고 열망인 그 새것을 위해 뽑힌 이들입니다. 신약성경이 하느님 나라라고 말하는 하느님의 그 새 세상은 옛 세상 한가운데로 뚫고 들어와 옛 세상을 변모시킵니다.

 

루카 복음사가가 바라보는 공동체들 안에는 하느님의 이 새 세상이 이미 시작되어 있습니다. 곧 여기서는 부유한 이들이 가난한 이들과 함께 나눕니다. 그들은 넘치는 가운데 친절하고 관대하게 자신의 것을 나누는 데서 그치지 않고, 공동체 내에서 연대가 이루어지도록, 다시 말해 정의와 상호 협력이 이루어지도록 힘을 다합니다.

 

이처럼 모든 것이 뒤집히는 사회적 변화가 가능한 것은, 공동체에 속한 사람들의 마음과 온 열망이 돈과 권력의 지배에 있지 않고 하느님의 다스림에 있기 때문입니다(루카 12,13-21 참조).

 

그들은 허리에 띠를 매고 타오르는 등불을 손에 들고 있습니다(루카 12,35 참조). 동방의 기다란 옷은 뛰거나 일하기 위해서는 허리춤까지 올려 묶어야 했습니다. 당시에 등불은 켜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습니다. 등불을 켜려면 힘이 많이 들고 번거로웠습니다. 때문에 기다리는 이는 차라리 등불을 켜 놓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허리춤까지 올려 맨 옷과 타오르는 등불은 기다림을 가리키는 표상입니다. 하지만 그 기다림은 언제든 할 일을 하기 위해 곧바로 일어서려는 준비와 의지를 갖춘 기다림이지요.

 

함께 생각하고 함께 협력하는 이 기다림을 설명하기 위해 루카는 이어서 좀 더 명확한 긴 이야기를 덧붙입니다. 곧 12장 36-38절의 말씀이 그것입니다. 어떤 주인이 혼인 잔치에 초대를 받아 어딘가에 출타 중입니다. 그의 집은 너른 정원과 커다란 대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문은 빗장이 걸린 채로 굳게 잠겨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잠든 사람이 없습니다. 주인이 돌아오면 그를 맞이하기 위해 모두가 깨어 있습니다. 혼인잔치는 오래 지속되고, 주인이 언제 돌아올지 종들은 알지 못하는데도 그렇습니다.

 

초대교회에서는 이처럼 ‘깨어 기다리는 종’의 이야기를 예수님의 재림과 연결시켜 해석했습니다. 곧 그리스도인 공동체들은 주인이 돌아오기를 열망하며 기다리는 종들이 바로 자신들의 모습이라고 여겼습니다.

 

물론 루카 복음사가 시대에 주님의 재림이 늦추어진다는 사실이 이미 명백해졌습니다. “주인이 늦게 오는구나.”(루카 12,45)라고 말하며 느긋한 자세로 사는 종들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공동체들 안에서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루카 12,40)라고 말하며 주님 말씀의 급박성을 완화시킬 만한 충분한 이유가 되었습니다. 이로써 곧 오시는 주님에 대한 기다림은 늘 준비하고 있어야 하는 기다림으로 바뀐 것일까요?

 

 

성체성사에서 주님의 오심

 

주님의 재림이 늦추어지는 것에 대한 물음은 오늘날 우리에게 다시금 다른 형태로 제기됩니다. 그 사이 두 천 년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세상의 종말은 여전히 오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근본주의적인 몇몇 이단들만이 우리 시대에 종말이 온다고 믿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곧 오시는 주님에 대한 기다림은 별 의미가 없는 듯 보입니다. ‘곧 오심’에 대한 기다림에서 파생된 ‘늘 기다림’도 그다지 설득력이 없어 보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지혜서’는 우리에게 이해의 실마리를 보여줍니다. 곧 지혜서는 이스라엘의 기다림을 파스카 축제, 곧 예배와 연결시킵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교 예배 역시, 무엇보다 성찬례는 주님의 오심을 향해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주님의 죽음을 전하며 부활을 선포하나이다.” 그리스도교 예배는 주님의 재림에 대한 기다림을 생생하게 만들어주며, 그 기다림을 온 공동체의 외침이 되게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교회는 주님의 오심이 이미 시작되었다고 확신합니다. 곧 교회의 성찬례에서 주님은 이미 와 계십니다. 이미 우리 한가운데로 뚫고 들어오십니다. 이미 그렇기 때문에, 성찬례를 거행할 때 거기 하느님의 새 세상이 생겨납니다. 곧 사람들은 한마음이 되고, 자신들의 소유와 삶과 역사를 함께 나누고, 오롯이 하느님의 계획만을 생각하고, 등불을 켜 들고 허리에 띠를 맵니다.

 

이는 새로운 형태의 기다림입니다.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그리스도의 오심을 이미 늘 체험하는 기다림이고, 부활하신 분이 우리 가운데 이미 와 계시다는 사실 앞에서 어떻게 하면 그분이 공동체의 일상 한가운데서 구체적인 모습으로 드러날 수 있는지를 끊임없이 묻는 기다림입니다.

 

물론 루카는 몽상가가 아닙니다. 루카 복음사가는 그 모든 것을 현실로 그리는 한편, 동시에 훈계와 희망으로, 타오르는 기다림으로 그립니다. 그리스도인 공동체는 그래야만 한다고!

 

* 게르하르트 로핑크(Gerhard Lohfink) : 세계적인 성서학자이자 사제로, 독일 튀빙엔대학교에서 신약성서 주석학 교수로 재직하였고 현재 가톨릭통합공동체katholische Intergrierte Gemeinde에서 복음 정신에 따라 살며 연구와 집필에 몰두하고 있다. 국내 출간된 저서로 『예수는 어떤 공동체를 원했나?』 『예수마음코칭』 『주님의 기도 바로 알기』외 다수가 있다.

 

* 번역 : 김혁태 - 전주교구 소속 사제로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교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광주가톨릭대학교 총장을 맡고 있다.

 

* 로핑크 신부의 바이블 인사이트(Bible Insight) : 이 칼럼은 저명한 성서신학자인 게르하르트 로핑크 신부가 매월 『생활성서』 독자들을 위해 보내오는 글로, 성경 안에서 길어낸 신앙과 삶에 대한 아름다운 통찰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편집자 주)

 

[생활성서, 2019년 8월호, 게르하르트 로핑크 신부, 김혁태 신부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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