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그리스도의 평화)
착한 사마리아인 그는 누구인가?
루카복음 10장 29절이하에 소개되는 착한 사마리아인 그는 누구인가?
여행을 가던 길이라고 소개되는 착한 사마리아인은 과연 예수님을 믿지
않았을까?
사마리아 지역은 지역상으로 그동안 배운바에 의하면 이방인 지역입니다.
그러나 이방인 지역에 산다는 그 이유로 하느님을 섬기지 않았다고
단정지어 말할 수 있을까요?
소개되는 소 제목이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착하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요?
착하다, 곧 '선함'은 누구의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하느님의 본질입니다.
그렇습니다.
착한 사마리아인은 하느님의 뜻을 살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자신들의 공동체만 주님께서 선택하셔서 도움을 주시는 분으로
이해하고 살았던 민족이었습니다.
하느님을 자신들의 민족신으로만, 자신들의 민족만을 위해서 계시는
분으로만 이해하고 살았었습니다.
루카복음사가는 이것을 꼬집어 올바로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어떤 지역에 한정되고 어떤 공동체에 한정되어 일하시는 분이
아님을 알려 주시고 계신 것입니다.
사마리아에는 하느님을 섬기는 사람이 왜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나라 사람들의 경우를 보십시오.
애국가에 "하느님이 보우하사" 라고 하지 않습니까?
하늘이 사람을 돕고 계심을 고백하는 민족이었습니다.
큰 틀에서 묵상해 보면 우리나라도 지역적으로 사마리아로 비유될 수
있을 것입니다.
루카복음사가는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통해 구원의 보편성을 말하고
싶으셨을 것입니다. 결국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통해 하시고 싶은
말씀은 누가 이웃이냐고 묻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느님 안에서 한 형제이므로 그냥 불쌍히 보고 서로 도우라는
메세지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간과해서는 안 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이유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통하여
온 세상을 구원하시고자 하셨다고 성경은 전하고 있습니다.
사람뿐만 아니라 모든 것입니다. 왜 그런가? 구원의 다른 이름은 행복입니다.
사람뿐만 아니라 당신이 지으신 모든 것들이 예수님을 통하여 행복을 누리길
바라셨고 그렇게 해 주시려고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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