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신약] 사도행전 이야기45: 바오로의 두 번째 선교 여행2(사도 16,11-3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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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9-12-29 | 조회수7,341 | 추천수0 | |
[이창훈 소장의 사도행전 이야기] (45) 바오로의 두 번째 선교 여행 Ⅱ(사도 16,11-34) 성령의 힘으로 감옥에서 풀려난 바오로
- 필리피에서 선교 활동을 하던 바오로와 실라스는 감옥에 갇혀 있다가 감옥 간수와 그 집안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세례를 베푼다. 사진은 바오로와 실라스가 갇혔던 곳으로 여겨지는 필리피 유적지의 감옥 터.
바오로는 유럽 본토인 마케도니아로 건너가 필리피에 도달합니다. 그곳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히는 시련을 겪기도 합니다.
리디아가 복음을 받아들이다(16,11-15)
트로아스에서 환시를 본 바오로는 마케도니아로 건너가기로 하고 일행과 함께 트로아스에서 배를 타고 사모트라케로 갔다가 다음날 네아폴리스로 갑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다시 필리피로 가서 며칠을 보냅니다.(16,11-12) 말하자면 바오로 일행은 이제 아시아 땅에서 유럽 땅으로 건너간 것입니다. 마케도니아는 오늘날 그리스를 비롯해 그 주변 나라들인 불가리아와 북마케도니아공화국, 알바니아 같은 나라들을 포함하는 남부 유럽 발칸반도 일대를 가리킵니다.
필리피에서 지내면서 바오로 일행은 안식일이 되자 유다인들의 기도처가 있다고 생각되는 성문 밖 강가로 나갑니다. 필리피는 마케도니아 지역에서 첫째가는 도시였기에 유다인이 살고 있을 것이고 그렇다면 물이 있는 주변에 정결례를 위한 기도처가 있으리라고 바오로는 생각했을 것입니다. 또 강가이니만큼 빨래를 하러 또는 물을 길으러 오는 여인들이 있을 것이고 그들을 상대로 말씀을 전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과연 강가에는 여인들이 모여 있었고 바오로는 그들에게 말씀을 전합니다. 마치 율법학자들이 앉아서 율법을 가르치듯이 바오로는 앉아서 그 여인들에게 말씀을 전하지요.(16,13)
말씀을 듣는 이들 가운데는 티아티라 출신으로 자색 옷감을 파는 리디아라는 여인이 있었습니다. 티아티라는 요한 묵시록에 나오는 일곱 교회가 있는 곳 가운데 하나(묵시 2,18-29)로, 염색 공업의 중심지였습니다. 사도행전 저자는 리디아가 “자색 옷감 장수로 이미 하느님을 섬기는 이”(16,14)라고 소개합니다. 자색 옷감은 왕이 입는 옷의 천으로 사용되는데, 부를 상징한다고 합니다. 또 ‘하느님을 섬기는 이’라는 표현은 리디아가 유다교로 개종했음을 나타냅니다.(13,43 참조) 따라서 리디아는 유다인이 아니지만 유다교로 개종해 하느님을 섬기는 부유한 여인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 마음을 열어 주시어 리디아는 온 집안과 함께 세례를 받습니다. 그러고 나서 자기 집에 머물러 달라고 바오로 일행에게 강권하지요.(16,14-15) 리디아와 그 집안의 세례는 바오로가 마케도니아 곧 유럽 본토에 와서 베푼 첫 세례입니다. 리디아와 그 집안사람들은 유럽의 첫 그리스도인입니다.
감옥에 갇힌 바오로와 실라스(16,16-24)
그런데 문제가 생깁니다. 점 귀신이 들린 하녀 하나가 바오로 일행을 쫓아다니면서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종으로서 지금 여러분에게 구원의 길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하고 소리를 질러대는 것입니다. 한 번도 아니고 여러 날을 두고 그렇게 하는 바람에 언짢아진 바오로가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에게 명령하니 그 여자에게서 나가라” 하고 일렀습니다. 그러자 점 귀신이 그 하녀에게서 나갑니다.(16,16-18)
그 하녀의 점을 통해 돈벌이하던 주인들은 돈벌이를 더 못하게 되자 바오로와 실라스를 붙잡아 광장으로 끌고 가서 행정관들 앞에 데려다 놓고 고발합니다. 그리스어로 ‘아고라’라고 하는 광장은 법정이 열리기도 하고 시장이 들어서기도 하는 곳입니다. 많은 사람이 모이는 곳이어서 집회와 토론 장소 역할도 하지요. 관청도 광장이나 광장 가까이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광장에서 두 사람을 행정관들 앞에서 고발할 수 있었습니다. 고발 내용은 유다인들인 두 사람이 “우리 도시에 소동을 일으키면서 우리 로마인으로서는 받아들이기에도 지키기에도 부당한 관습을 퍼뜨리고 있다”(16,21)는 것입니다. 군중도 합세해서 두 사람을 공격하자 행정관들은 두 사람의 옷을 찢어 벗기고 매질하게 한 후에 감옥에 가두고는 엄중히 감시하라고 지시합니다. 간수는 두 사람의 발에 차꼬를 채우고는 가장 깊은 감방에 가둡니다.(16,19-24)
간수와 온 가족이 구원을 받다(16,25-34)
자정 무렵이 됐습니다. 바오로와 실라스가 하느님께 찬미가를 부르며 기도하고 있는데 갑자기 큰 지진이 일어나 감옥 문이 모두 열리고 사슬이 다 풀립니다. 잠에서 깨어난 간수는 이런 상황을 보고는 수인들이 도망갔으리라고 생각해 칼을 빼서 자결하려고 하지요. 그러자 바오로가 큰 소리로 만류했고 간수는 두려워 떨면서 바오로와 실라스 앞에 엎드립니다. 그러고는 두 사람을 밖으로 데리고 가서는 “제가 구원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고 묻습니다. 두 사람은 “주 예수님을 믿으시오. 그러면 그대와 그대의 집안이 구원을 받을 것이오”라고 대답하고는 간수와 그 집 모든 사람에게 주님의 말씀을 들려줍니다. 간수는 바오로와 실라스의 상처를 씻어주고 나서, 그 자리에서 그와 온 가족이 세례를 받습니다. 그런 다음 집 안으로 데려가 음식을 대접한 후 하느님을 믿게 된 것을 온 집안과 더불어 기뻐합니다.(16,25-34)
생각해봅시다
1. 바오로가 마케도니아 땅으로 건너오게 된 것은 꿈에 환시를 보고서였고(16,9-10), 필리피에서 리디아가 온 집안사람들과 함께 세례를 받을 수 있게 된 것은 바오로의 말에 귀를 기울이도록 “하느님께서 리디아의 마음을 열어주셨기”(16,14) 때문이었습니다. 바오로와 실라스가 차꼬를 찬 채 감옥 가장 깊은 방에 갇혀 있던 한밤에 지진이 일어나 감옥 문이 열리고 사슬이 풀린 것 또한 우연의 일치라고는 보기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이 또한 하느님께서 개입하신 결과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말하자면 바오로 사도의 마케도니아 선교 활동에서도 성령께서는 눈에 보이게, 또는 보이지 않게 주도적인 역할을 하시며 개입하신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 성령의 이끄심 또는 개입은 인간의 협력이나 노력이 있어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바오로가 환시를 보고도 외면해 버렸다면 마케도니아행은 없었을 것입니다. 리디아가 유다교로 개종해 하느님을 경외하는 여인이 아니었다면 바오로가 전하는 말씀에 귀 기울이기가 그렇게 쉽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간수가 감옥 문이 열린 것을 보고 놀라서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을 때 바오로가 제지하지 않았다면 간수와 그 온 집안이 세례를 받고 구원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중세기의 위대한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은 “은총은 본성을 파괴하지 않고 오히려 완성한다”는 유명한 금언을 남겼습니다. 하느님의 도우심, 그분의 은총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하느님의 은총에만 의지하고 우리가 해야 할 역할이나 본분을 하지 않는다면 잘못입니다.
2.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령하니’라며 점 귀신을 쫓아낸 바오로의 행위는 ‘나자렛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합니다’ 하고 예루살렘 성전의 아름다운 문 곁에 있던 불구자를 고친 베드로의 행위(3,1-10)와 대비됩니다. 또 감옥 문이 다 열리고 사슬이 모두 풀려 바오로와 실라스가 자유롭게 된 이야기는 예루살렘에서 감옥에 갇혀 있던 베드로가 기적적으로 풀려난 이야기(12,6-11)와 대비됩니다. 바오로 사도를 베드로 사도와 대비되는 사도로 부각시키려는 사도행전 저자의 의도가 들어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요?
[가톨릭평화신문, 2020년 1월 1일, 이창훈(한국평협 평신도사도직연구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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