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구약] 성서의 해: 유배 이후의 이야기 – 에즈라 · 느헤미야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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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9-12-29 | 조회수7,410 | 추천수0 | |
[2020 사목교서 ‘성서의 해 II’ 특집] 유배 이후의 이야기 – 에즈라 · 느헤미야기
바빌론 유배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아픔의 역사였습니다. 기원전 587년에 예루살렘 성전 파괴와 다윗 왕조의 몰락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시련은 그때부터 시작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약 1,500Km가 넘는 먼 곳으로 끌려가서 유배 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낯선 사람과 문화, 낯선 환경 속에서 그들은 유배 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바빌론 유배는 50년간 이어집니다. 50년이 지난 뒤에, 또 다른 고대근동의 패권국가인 페르시아 임금 키루스에 의해서 바빌론은 멸망합니다. 키루스는 바빌론에 의해서 강제로 이주하게 된 민족들에게 다시 자국으로 돌아가도 좋다는 칙령을 반포합니다. 이것이 바로 ‘키루스 칙령’입니다. 이렇게 유배지에 끌려간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시 자유를 얻고 고향으로 귀환하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유배지에서 돌아오고 나서 마주한 현실을 기록한 역사서가 바로 에즈라기와 느헤미야기입니다.
에즈라는 페르시아의 사신의 자격으로 유다 지방에 파견된 사제 출신 율법학자였고(에즈 7,6.11), 느헤미야는 페르시아 궁정의 술 시중 담당관이었다가 예루살렘 성벽을 건축하라는 전권으로 부여받고 귀국한 인물로, 유다 지방의 총독이 되는 사람이었습니다(느헤 5,14). 이 두 인물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에즈라기와 느헤미야기는 유배 이후 귀환 공동체가 최우선으로 삼은 과제가 무엇이었는지를 보여줍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50년의 긴 유배를 마치고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옵니다. 하지만, 예루살렘은 옛날의 그 예루살렘이 아니었습니다. 비록 50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예루살렘은 바빌론의 침략을 받아서 파괴되었던 그 모습으로 그대로 남겨져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성전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하느님 현존의 장소였으며, 하느님과 하느님 백성이 만날 수 있는 만남의 장소요, 하느님께 올바른 제사를 봉헌할 수 있는 지상의 유일한 장소였습니다. 그러한 성전의 파괴는 이스라엘 백성이 지난 50년간 이 중요한 장소를 잃어버린 채 살아갔다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유배에서 귀환한 이들은 많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제일 먼저 성전 재건에 착수하고 완성합니다. 성전을 봉헌하고 파스카 축제를 지내면서 이스라엘 백성은 이제 다시 하느님 백성의 여정을 시작합니다(에즈 1-6장).
가시적이고 외적인 재건이 성전 재건이었다면, 이제 이스라엘 백성은 내적인 재건에 힘을 기울입니다. 하느님 백성의 정체성을 회복하는 것이었습니다. 율법에 따르는 삶을 살아가고자 결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한 정체성 회복을 위한 노력 가운데 하나가 유다인과 혼인한 이방 여인들과 그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들을 유다 지방에서 추방하는 것이었습니다(에즈 7-10장). 언뜻 보면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지만, 유다인들은 자신들이 “거룩한 씨앗”(에즈 9,2)이라고 인식하였기에 이방인과 혼종혼에 대해서 엄격하였습니다. 특히 귀환 이후 유다인들은 정체성 회복이라는 과제 앞에서 엄격하게 그 기준을 적용하였던 것입니다.
성전의 재건과 에즈라의 개혁에 뒤이어 등장하는 느헤미야기는 계속되는 귀환 이후 공동체의 재건에 주목합니다. 에즈라기는 예루살렘 성전 재건과 파스카 축제, 이방인들에 대한 추방으로 이야기가 마무리되었다면, 느헤미야기는 느헤미야의 활약 속에서 이뤄진 예루살렘 성벽 재건에 주목합니다(느헤 1-7장). 유배 이후 폐허로 남겨졌던 예루살렘은 이제 에즈라와 느헤미야의 활약 속에서 다시 재건되어 주님의 찬란한 도성의 모습을 회복하게 됩니다. 이제 다시 에즈라가 등장하여 주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명령하신 모세의 율법서를 선포하고 초막절 축제를 지냅니다(느헤 8-10장). 마지막으로, 완성된 예루살렘 성벽을 주님께 봉헌합니다. 아울러 성전을 정화하고, 안식일의 준수와 이민족과의 혼인 금지하는 개혁의 이야기로 느헤미야기는 마무리됩니다(느헤 11-13장).
에즈라 · 느헤미야기는 귀환 이후 공동체가 잃었던 하느님 백성의 신원을 회복하고자 얼마나 노력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무리라고 여겨진 성전과 성벽의 재건, 야속하게 보이는 이방 여인과의 혼인에 대한 처우의 모습들. 하지만 그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가 읽어야 하는 것은 그들의 엄격주의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하느님 백성이라는 정체성의 회복을 위한 그들의 노력을 읽을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2019년 12월 29일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가정 성화 주간) 인천주보 3면, 박형순 바오로 신부(인천가톨릭대학교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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