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구약] 성서의 해: 룻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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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20-01-12 | 조회수6,009 | 추천수1 | |
[2020 사목교서 ‘성서의 해 II’ 특집] 룻기
성경 목차를 살펴봅니다. 역사서 부분을 주목해 주십시오. 우리 성경책의 목차에는 여호수아기, 판관기, 룻기, 사무엘기 상하권, 열왕기 상하권, 역대기 상하권, 에즈라기, 느헤미야기의 순서로 목록이 이어집니다. 앞서 우리는 신명기계 역사서를 살피면서 룻기는 제외하였습니다. 목록의 순서에 따르면 룻기는 분명 판관기와 사무엘기 사이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룻기는 신명기계 역사서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룻기를 에즈라기와 느헤미야기 다음에 다루고자 합니다.
에즈라기와 느헤미야기의 이야기는 유배 이후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이스라엘 백성 공동체의 재건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성전과 성전의 예배 공동체를 강조하면서 순수 혈통을 강조하고 이스라엘의 자손과 혼인한 이방 민족의 여인들을 다시 그들의 나라로 추방하게 됩니다. 이러한 극단적 혈통주의는 하느님 구원의 보편성에 의문을 제기하게 만들어줍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기록된 책이 바로 룻기라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룻기는 이방 민족인 모압 출신 여인인 ‘룻’을 그 주인공으로 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시대에는 여성에게 그렇게 관대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룻이라는 여인을 주인공으로 삼는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준다는 것은, 룻기가 갖는 의미가 크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아울러 에즈라기와 느헤미야기에서 살펴본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이 이방 민족에게 관대하지 않았음을 알고 있습니다. 룻은 이스라엘 출신이 아닌 모압 출신 여인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왜 성경은 여인이면서 이방인이었던 룻을 주인공으로 하는 이야기를 들려주는가? 그 이유는 바로 룻기 마지막에 등장합니다. 보아즈가 룻에게서 오벳을 낳았고, “오벳은 이사이를 낳고 이사이는 다윗을 낳았다.”(룻기 4,22). 바로 다윗 임금 때문이었습니다. 룻기의 주인공인 이 모압 출신 여인은 바로 다윗 임금의 증조모였습니다.
에즈라기와 느헤미야기에서는 이방 민족을 철저하게 배척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극단적 배타주의에 대항하고자 룻기는 다윗 가문도 순수 이스라엘의 혈통이 아니었으며, 그 뿌리에는 이방인이 있었음을 들려줍니다. 유배 이후의 귀환 공동체가 추구하는 순혈주의에 따르면 다윗 임금도 태어날 수 없었다는 사실이 강조되는 것이지요. 또한 하느님의 구원은 이스라엘 백성에게만 유효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강조됩니다. 선택된 사람들만이 아니라, 가장 낮은 신분의 사람들인 과부, 외국인, 고아에게도 하느님 구원은 유효하다는 구원의 보편성을 룻기는 제시합니다.
룻기의 기본 배경이 되는 장소는 베들레헴입니다. 히브리어로 베들레헴은 벳(בת)과 레헴(לחם)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단어입니다. 벳은 집을 의미하고, 레헴은 빵을 의미합니다. 쉽게 빵집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데, 배고프고 먹을 것 없는 사람들이 나눔으로 먹을 수 있는 공간이 바로 베들레헴이라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참고로,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베들레헴은 바로 모든 이들의 먹을 것이 되어주시는 예수님의 삶을 암시하기도 합니다.
룻은 자신의 남편을 잃었음에도, 시어머니 나오미를 효성을 다해서 섬깁니다. 또한 후에 룻의 새로운 남편이 되는 보아즈는 룻을 보살펴줍니다. 등장인물 상호간에 주고받는 따뜻한 마음, 보살핌은 바로 룻기의 중요한 신학적 주제를 구성해 줍니다. 그렇습니다. 룻기는 이렇듯 사람들 사이에 전개되는 효성과 보살핌, 그것이 바로 하느님께서 베풀어주시는 자애라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하느님께서 초자연적인 모습으로 등장하셔서 특별한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것이 아니라, 바로 사람을 통해서 당신의 자애를, 은총을 베풀어주신다는 사실을 룻기는 우리에게 분명하게 알려줍니다.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선택하셨습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구원은 이스라엘 백성만을 향하지 않습니다. 하느님은 당신의 자애를 베풀어주십니다. 바로 당신의 숨을 불어넣어서 창조하신 사람들을 통해서 베풀어주십니다. 우리들을 바라봅니다. 이스라엘 백성 입장에서 보면 우리는 이방인입니다. 하지만, 룻기의 눈으로 우리들을 바라본다면 하느님 구원의 대상이고, 하느님 자애와 은총의 전달자가 됩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그러한 지위를 얻게 됩니다.
[2020년 1월 12일 주님 세례 축일 인천주보 3면, 박형순 바오로 신부(인천가톨릭대학교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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