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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약] 사도행전 이야기47: 바오로의 두 번째 선교 여행4(사도 17,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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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0-01-12 조회수6,771 추천수0

[이창훈 소장의 사도행전 이야기] (47) 바오로 사도의 두 번째 선교 여행 Ⅳ(사도 17,16-34)


아테네 아고라에서 대화하고 토론하며 주님 알리다

 

 

바오로 사도가 아테네의 아레오파고스에서 한 설교는 이교인들에게 복음의 메시지를 어떻게 전달해야 하는지에 대한 좋은 사례가 된다. 사진은 아테네 전경과 아레오파고스(왼쪽 하단의 바위 언덕).

 

 

테살로니카에서 베로이아로 피신해 선교를 계속하던 바오로는 유다인들이 베로이아까지 쫓아와 군중을 선동하자 형제들의 인도로 아테네로 갑니다.(17,10-15) 바오로의 아테네 선교 활동을 살펴봅니다.

 

 

격분해서 토론하는 바오로(17,16-21)

 

아테네에 도착한 바오로는 베로이아에 남은 실라스와 티모테오를 기다리던 중 아테네 도시가 우상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을 보고 격분합니다.(17,16) 당시 아테네는 정치적 영향력이 쇠퇴했으나 여전히 학문과 문화의 중심지였습니다. ‘그리스-로마 신화’ 이야기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이 도시에는 많은 신이 있었고, 신상들도 많았습니다. 외설적인 신상들도 있었습니다. 그곳 사람들은 인간의 모습에 따라 신들을 만들어냈습니다. 우상을 엄격히 금지하는 유일신 사상에 깊이 젖어 있는 바오로로서는 격분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바오로는 이 격분을 다른 식으로 풀어냅니다. 유다인 회당에 가서 유다인들과 또 하느님을 섬기는 사람들과 토론할 뿐 아니라 날마다 ‘아고라’라고 하는 광장에 나가 그곳에 모인 사람들과 토론한 것입니다.(17,17)

 

광장에는 에피쿠로스 학파와 스토아 학파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이 두 학파는 당시 아테네의 대표적인 학파들로, 에피쿠로스 학파는 현세적 삶과 쾌락적 감각에 치중해 신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스토아 학파는 본능보다 이성을 따르는 삶을 중요시했습니다. 그들은 신의 섭리를 인정하지만 신을 초월적인 존재가 아니라 인간 마음 안에 내재하는 존재로 여겼습니다. 이들에게는 바오로의 말이 얼토당토않은 얘기처럼 들리기도 했고 또 자기들이 알지 못하는 또 다른 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처럼 들리기도 했습니다.(17,18)

 

그래서 그들은 바오로를 아레오파고스로 데려갑니다. 좀더 자세한 얘기를 듣기 위해서입니다.(17,19-20) 아레오파고스는 ‘아레스 언덕’이라는 뜻인데 ‘아레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전쟁의 신입니다. 아레오파고스는 시민들에게 중요한 일을 설명하는 자리이기도 했고, 문제가 있는 사람에게 공개적으로 해명을 요구하거나 듣는 자리이기도 했습니다. 오늘날로 치면 공청회장 또는 법정의 역할까지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을 쓴 루카는 한 마디를 덧붙입니다. 아테네 사람들과 아테네에 머무는 외국인들은 새로운 것이 보이면 그것을 두고 얘기를 나누는 것으로 세월을 보낸다는 것입니다.(17.21)

 

 

아레오파고스 설교와 반응(17,22-34)

 

바오로는 아레오파고스 가운데에 서서 말합니다. 그의 말을 나눠서 살펴보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1) 그는 아테네 시민들의 종교심을 이야기하면서 그것으로 하느님을 알리는 계기로 삼습니다. “여러분은 모든 면에서 대단한 종교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 여러분의 예배소들을 살펴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겨진 제단도 보았습니다. 여러분이 알지도 못하고 숭배하는 그 대상을 내가 여러분에게 선포하려고 합니다.”(17,22-23)

 

2) 그 하느님이 누구이며 어떤 분이신지를 설명합니다. ㉠“세상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드신 하느님은 하늘과 땅의 주님으로서, 사람의 손으로 지은 신전에는 살지 않으십니다.”(17,24) 이 내용은 원래 유다인들이 이교인들에게 설교할 때 사용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지만 스테파노가 최고의회에서 한 설교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7,48 참조), 하느님이 사람 손으로 지은 신전에서는 살지 않으신다는 것은 그리스도교가 유다인들에게 설교할 때도 활용했습니다.

 

㉡ 부족한 것이 없으신 하느님은 “사람들의 손으로 섬김을 받지도 않으십니다.… 오히려 모든 이에게 생명과 숨과 모든 것을 주시는 분이십니다.”(17,25)

 

3) 바오로는 이제 그 하느님을 우리가 알아볼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분께서는 또 한 사람에게서 온 인류를 만드시어 온 땅에 살게 하시고 일정한 절기와 거주지의 경계를 정하셨습니다. 이는 사람들이 하느님을 찾게 하려는 것입니다. 더듬거리다가 그분을 찾아낼 수도 있습니다. 사실 그분께서는 우리 각자에게서 멀리 떨어져 계시지 않습니다.”(17,26-27)

 

4) 바오로는 하느님을 선포하는 자신의 말이 틀리지 않고 낯설지 않다는 것을 아테네 시민들이 알고 있는 이야기를 통해서 제시합니다. “여러분의 시인 가운데 몇 사람이 ‘우리도 그분의 자녀다’ 하고 말하였듯이 우리는 그분 안에서 살고 움직이며 존재합니다.”(17,28)

 

5) 이렇게 하느님을 알아볼 수 있기 때문에 이제 하느님 앞에서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하느님의 자녀답게 살고 회개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이므로, 인간의 예술과 상상으로 빚어 만든 금상이나 은상이나 석상을 신과 같다고 여겨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무지의 시대에는 그냥 보아 넘겨 주셨지만, 이제는 어디에 있든 모두 회개해야 한다고 사람들에게 명령하십니다.”(17,29)

 

6) 마지막으로 바오로는 지금이 바로 회개의 때임을 예수 그리스도 사건 곧 그분의 죽음과 부활 사건으로 이야기합니다. “그분(하느님)께서 당신이 정하신 한 사람을 통하여 세상을 의롭게 심판하실 날을 지정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분을 죽은 이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어 그것을 모든 사람에게 증명해 보이셨습니다.”(17,31)

 

바오로의 말이 끝나자 어떤 사람들은 죽은 이들의 부활에 대해 비웃고, 어떤 이들은 다음에 다시 듣겠다고 말합니다.(17,32) 아테네 사람들은 죽은 다음에는 영혼은 불멸한다고 여겼지만, 육체의 부활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바오로의 말에 비웃은 것입니다.

 

바오로는 아레오파고스에서 나옵니다. 몇몇 사람이 바오로의 말을 듣고 믿게 됩니다. 사도행전 저자는 그들 가운데는 아레오파고스 의회 의원인 디오니시오를 비롯해 다마리스라는 여자와 몇몇 다른 사람들도 있었다고 전합니다.(17,33-34)

 

 

생각해봅시다

 

바오로의 아테네 설교는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이교인들에게 어떻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지에 대한 방법을 제시합니다. 우선 그들의 문화와 전통을 기본적으로 존중하고 이해하는 데서 출발합니다. 그런 다음 그들이 이해하고 납득할 만한 방식으로, 그러나 그들이 미처 알지 못하는 것을 보완하는 방식으로 복음의 진리를 일깨워 주는 것입니다.

 

바오로는 첫 번째 선교 여행 때에 리스트라에서 이런 방식을 통해 살아 계신 하느님에 관해 이야기한 바 있습니다만(14,15-18), 리스트라 설교는 미완성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레오파고스 설교는 완성된 형태를 보여줍니다. 바오로의 이런 방식은 복음 선포가 여전히 필요한 오늘날에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이 시대 사람들에게 우리는 어떻게 하면 복음을 제대로 또 효과적으로 전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가톨릭평화신문, 2020년 1월 12일, 이창훈(한국평협 평신도사도직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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