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 카테고리 | 성경 | ||
---|---|---|---|---|
이전글 | 이전 글이 없습니다. | |||
다음글 | 미사 후 성당을 나올 때 절을 해야하는지요? |3| | |||
작성자이정임 | 작성일2013-03-29 | 조회수569 | 추천수1 | 신고 |
+샬롬(그리스도의 평화)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마태 16,15) "예수님께서 카이사리아 지방에 다다르자 제자들에게,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들 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제자들이 대답하였다. '세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에레미아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하고 물으시자, 시몬 베드로가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마태 16,13-16) 오늘 어떤 일로 실망하고 풀이 죽어 있을 때에 시몬 베드로의 고백을 통해 용기를 얻게 해 주셨습니다. 이 고백을 할 때의 상황은 어땠는가? 예수님의 제자들은 아직 예수님께서 정확하게 누구이신지 알지 못하고 있었고, 또한 세상 사람들은 더 더욱 알지 못했던 상황이었습니다. 또한 이 시대의 상황에서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는 고백은 아마 돌로 맞아 죽을지도 모르는 고백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신성모독죄로 십자가형에 처해 지셨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모든 사람이 아니라고 말할 때에 용기있게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라는 고백은 어쩌면 순교와 맞먹는 고백일 것입니다. 예수님은 시몬 베드로의 이 고백으로 교회를 베드로 사도에게 맡기셨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이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 내 어린 양들을 돌보아라. 내 양들을 돌보아라. 내 양들을 돌보아라.'라고 말씀하시며 '나를 따라라'"(요한 21,15 이하 참조)라고 하셨습니다. 당신의 어린 양들을 돌볼 책임을 맡기시며 어떻게 돌봐야 하는가? 예수님이 하셨던 것처럼 돌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베드로 사도는 그 미션을 완성하셨던 것입니다. 저도 오늘 이 베드로 사도의 용기에 힘을 얻었습니다.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볼 때에 베드로 사도의 고백은 아마 정의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고 생각되어집니다. 실망과 좌절은 성령께서 선물로 주시는 마음이 아닙니다. 그동안 제가 혹시라고 공부해오면서 가톨릭교도권에서 가르치는 내용과 다르게 습득한 지식이 있다면 꼭 바로 잡아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든 다시 한번 공부를 해 보려고 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개인 묵상집을 내고 싶었었는데 가톨릭교도권 어디인지는 아직 모르지만 그동안 제가 썼던 글들을 보내서 어느 부분에 어떻게 가톨릭교도권의 가르침과 다르게 익혀 왔는지 배우고 싶습니다. 그래서 굿뉴스에 그러한 곳을 알려 달라고 요청을 해 놓기는 했지만 혹시라고 그러한 곳을 아시면 형제들이 도와 주시면 좋겠습니다. 잘못 알고 있으면 당연히 제대로 배워야지요. 이러한 용기를 주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함께 하시길 빕니다. |
||||
태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