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원 신부님께서 고해성사보속에 관해 주신 답변
1)죄의 사함을 받는 고해성사는 다음 세 가지로 이루어집니다.
마음으로 죄를 뉘우침, 입으로 죄를 고백함, 행동으로 죄를 보속(속죄)함.
이 세 가지가 꼭 있어야 진정한 참회라 할 수 있습니다.
마음속에 아무런 뉘우침도 없이 죄만 고백하면 되는 게 아니지요.
비록 비밀스럽게 이루어지지만 교회 공동체 앞에서 죄를 고백하는 일 없이
마음으로만 뉘우친다고 하느님과의 화해와 형제와의 화해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지요.
뉘우치고 고백하였으니 다 끝났다고 하여 속죄의 행위가 뒤따르지 않으면
안 되지요.
고해소에서는 간단한 기도로 보속을 정해줍니다만
그 보속은 참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그 보속을 통해서 우리는 교회 공동체의 보속에 참여합니다.
나아가 온 그리스도, 그리스도의 몸 전체가 끊임없이 행하는 보속에 참여합니다.
2) 이것은 용서하시는 하느님 아버지 앞에서 우리가 보여야 할
자녀다운 태도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건 우리가 이 세 가지 행위를 하기 때문에
죄가 용서된다는 것이 아니고 우리 죄의 용서는 전적으로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과 호의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카톨릭과 개신교의 참으로 소모적인 논쟁은 그 강조점이 서로 ‘다른’ 걸 두고
서로 ‘틀렸다’고 우기는 것입니다. ‘틀린’ 게 아니고 다만 ‘다를’ 뿐입니다.
예를 들어 개신교는 하느님 아버지의 용서라는 크신 자비에 강조점을 두고
천주교는 하느님의 자녀로서 당연히 보여야 할 신앙 또는 사랑의 응답에
강조점을 두는 데 우리는 이 두 가지를 다 강조합시다.
그럼 다툴 일은 없어질 것입니다.
*교리는 긍정적이고 열린 마음으로 배우고 익히면 됩니다.
그것은 토론을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 역시 배우는 입장이지
모든 것을 다 알기 때문에 가르치는 입장이 아닙니다.
이 점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개신교 전도사님께서 ''신부님께 고백하는 문제''로 시비(?)를 걸 때,
신학원신부님께서 제게 답해 주셨던 답변인 윗글과 고해성사, 성호경긋기에 관한 제 입장을 아래와 같이 말씀드리며 오히려 ''심도 깊게 연구하라''고 강조해 드립니다.
전도사님께.
고해성사는 요한복음 20장의 형제에게 서로 잘못을 고하라는 대목에서
나의 잘못 죄과를 형제에게 고하라고 명령하는데
목사님 신부님께 고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형제들이 뒤돌아서 험담할까 염려할 걱정이 없어(뒷일) 더 안심됩니다.
죄송한 말이지만 목사님들과 상담한 것들이 얼마 후 사모님의 입에서
쏟아지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개신교에서는 ''신부가 무슨 권한으로 용서하느냐? 잘못되었다!!'' 고
하는데 물론 주님께서 용서합니다.
신부님께서는 주님께서 용서해주실 것을 강청합니다.
용서받았다는 확신을 심어주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영적으로 참 좋은 건강한 방법이라 여기며
''고해성사''와 삼위일체를 시인하는 ''성호경긋기'' 는 개신교에서도
심도 깊게 연구했으면 합니다.
그리고 제 개인적으로는 성경에 단 한 번 나온 말씀이라도 귀히 여깁니다. 비록 단 한 번 기록 됐어도 무수한 사건과 말씀들이
다 기록되어있지않다고 했으니, 단 한 군데 단 한 번의 기록이라도
참으로 소중한 것입니다.
딱 맞아떨어지지는 않겠지만 개신교의 개역개정판 성경전서로
몇 군데 찾아 보았습니다.
뱃사람들이 요나에게 이 재앙이 무슨 연고로 우리에게 임하는가 고하라(요나1.8)
이스라엘 자손이 가로되 이 악한 일의 정형을 우리에게 고하라
(왕상 12:7)
야곱의 집에 그들의 죄를 알리라(이사야58,1)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한 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 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증(마18,15~20)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행 2,37~38)
한 사람 앞에서, 두 세 사람 앞에서, 여럿 앞에서, 군중들 앞에서
개인적인 죄이든, 율법에서 금하는 죄이든
스스로 고하기도 하고, 명령,압력에 의해서 고하기도 하고...
이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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