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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경 속의 인물] 12지파 카테고리 |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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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삼용 쪽지 캡슐 작성일2013-04-19 조회수1,260 추천수2 신고
[성경 속의 인물] 12지파 (1)

신은근 바오로 신부(삼천포본당 주임신부)


야곱은 외삼촌 라반의 집을 떠나 고향땅 가나안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이미 그는 두 아내와 두 여종과 열 한명의 아들을 거느린 대가족의 으뜸이 되어 있었다. 요르단 강 동편에서 야뽁(Jabbok)강을 만났다. 이 강을 건너면 약속의 땅이다. 야곱은 식구들을 먼저 보내고 홀로 강가에 남았다. 온갖 상념이 지나가고 있었다. 형 에사우를 속인 일, 외삼촌 집에서 노예처럼 14년을 일한 일, 그리고 마침내 하느님의 축복을 받아 대가족을 이룬 일.

야뽁강은 말없이 흐르고 있었다. 그는 강의 남쪽 언덕 위에 천막을 치고 감사의 기도를 바쳤다. 어둠이 몰려오자 깜빡 잠이 들었다. 그런데 어떤 이가 나타나 야곱을 깨웠다. 잠결에 그는 불청객을 붙잡고 씨름을 했다. 엄청난 힘을 느끼면서 야곱은 그가 하느님의 천사임을 깨닫는다.

‘저에게 축복해 주시지 않으면 놓아 드릴 수 없습니다.’ 야곱은 아브라함과 이사악으로 이어지는 ‘하느님의 축복’을 청하고 있었던 것이다. 천사는 야곱에게 복을 빌어주고 떠났다. 이후 야곱은 더 이상 두려움에 사로잡히는 약한 남자가 아니었다. 아브라함에게 약속했던 ‘밤하늘의 별처럼 수많은 후손’을 이어갈 상속자임을 확실하게 깨달았던 것이다. 야곱은 그곳에서 이름을 바꾼다. ‘하느님과 겨루고 사람과 겨루었다’는 의미를 지닌 ‘이스라엘’로 바꾼 것이다.(창세 32장)

그리곤 깨달음을 얻은 그곳 땅을 ‘프니엘(Peniel)’이라 이름 지었다. 프니(Peni)는 얼굴을 뜻하고 엘(EL) 하느님을 뜻한다. ‘프니엘 사건’ 이후 야곱의 이름은 이스라엘이 되었고 그의 자녀들도 ‘이스라엘의 후손’이란 별칭을 얻게 되었다. 솔로몬 이후 다윗왕국이 갈라졌을 때 북 왕조는 자신들의 나라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불렀다. 야곱의 정통성을 이어간다는 의미였다. 현재의 이스라엘 국가명도 야곱의 이름을 내세운 것이다.

이렇듯 이스라엘 12지파(支派)는 야곱의 아들로부터 시작된다. 야곱은 첫 부인 레아에게서 외동딸 디나(Dinah)와 6명의 아들을 낳았다.(르우벤, 시메온, 레위, 유다, 이싸카르, 즈불룬) 그리고 레아의 몸종 질파에게서 두 명의 아들을 낳았다.(가드, 아세르) 둘째 부인 라헬에게서는 요셉과 벤야민을 낳았고 그녀의 몸종 빌하에게서 두 명의 아들을 얻었다.(단, 납탈리)

한편 야곱의 셋째 아들 레위는 거칠고 과격했다. 야곱 일행이 스켐(Shechem)에 머물 때 성주의 아들이 디나를 좋아해 청혼했는데 레위는 많은 사람을 죽이면서 이를 막았다.(창세 34장) 이 사건으로 야곱은 레위에게 저주를 내린다.(창세 49장) 이후 레위의 후손들은 한 곳에 모여 살지 못했고 다른 지파의 동네에 흩어져 살며 제관(祭官) 업무를 전담하게 된다.

12지파 가운데 벤야민 지파는 있어도 요셉 지파는 없다. 대신 요셉의 두 아들 므나쎄와 에프라임의 이름을 딴 지파가 있다. 훗날 에프라임 지파는 북쪽의 10지파를 이끌고 남쪽의 유다 지파와 대립한다. 그들이 세운 나라가 ‘사마리아’를 수도로 하는 ‘북 이스라엘’이다. 첫 임금은 에프라임 지파 출신의 예로보암 1세였다. [2008년 6월 22일 연중 제12주일 가톨릭마산 14면]


12지파 (2)


모세가 죽자 후계자 여호수아는 백성들을 이끌고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간다. 그리고는 각 지파에게 땅을 나누어 주었다. 지파의 이름이 정착한 땅의 지명이 되었다. 유다 지방 에프라임 지방은 이렇게 해서 생겨난 이름이다.

르우벤, 시메온, 이싸카르, 에프라임, 므나쎄, 즈불룬, 단, 납탈리, 가드, 아세르, 이렇게 열 지파는 이스라엘 북쪽에 자리 잡았다. 이들 지파는 훗날 연합하여 ‘북 이스라엘 왕조’를 세우게 된다. 유다와 벤야민 지파는 남쪽 땅을 할당받았고 그들은 ‘남유다 왕조’를 세웠다.

12지파는 자신들이 차지한 땅에서 각자의 제단을 마련하고 개별적인 종교행위를 하며 독립된 체제로 살았다. 말하자면 철저한 지방분권이었다. 이들을 연합하여 강력한 통일국가를 이룬 사람이 유다지파의 다윗과 솔로몬이다. 하지만 솔로몬이 죽은 뒤 북쪽의 열 지파는 다시 떨어져 나가 자신들의 독립 국가를 세웠다. 기원전 931년의 일이다.

북 왕조의 중심은 에프라임 지파였다. 요셉의 장남이었던 에프라임의 후손들이다. 그들이 할당받은 땅은 이스라엘 중북부 지역이었다. 비옥한 초지와 언덕이 많아 목축업이 성행했다. 그리고 ‘실로와 베텔’ 등 중요한 종교적 유적지가 있었다. 자연 커다란 세력이 되었고 이웃 지파에 영향력을 행사했다. BC 930년 에프라임 지파는 북쪽 열 지파를 규합하여 남쪽 지파에 반란을 일으켜 성공한다. 북 이스라엘의 출발이다. 초대 임금은 에프라임 지파의 예로보암 1세였다.

기원전 721년, 아시리아(Assyria)는 북이스라엘을 침략하여 멸망시킨다. 수많은 백성들은 포로로 끌려가서 수도 니네베와 인근 나라로 흩어졌다. 그리고 북 이스라엘 땅에는 다른 민족을 강제 이주시켰다. 특히 ‘수도 사마리아’에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거주를 엄격히 제한했다. 세월이 흐르자 에프라임 지파와 북쪽의 9개 지파는 세력이 극도로 약화되었다.

유다지파는 예루살렘이 있는 남부지방에 정착했다. 이 지파에서 메시아가 나온다는 예언이 있었기에 차츰 강력하고 중요한 부족이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다윗과 솔로몬을 배출했다. 남쪽의 유다 왕국은 기원전 587년까지 번창하다가 바빌로니아에 정복당했고 주민들은 바빌론의 포로로 끌려갔다.

하지만 페르시아의 고레스(Cyrus II) 임금은 기원전 538년, 바빌로니아를 정복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고향으로 돌려보냈다.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그들은 즉시 성전 재건에 착수했고 유다지파가 주체가 되었다. 이후 유다 지파의 역사는 ‘유다인의 역사’가 된다.

벤야민 지파는 이스라엘 중부지방을 할당 받았다. 왕국이 분열될 때 벤야민 지파의 땅도 갈라져야 했다. 지형적인 비극이었다. 경계선 북쪽에 살던 사람은 에프라임 지파를 따라갔고 남쪽에 사는 이들은 유다지파를 따라갔다.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 사울과 사도 바오로는 벤야민 지파에 속한다.

레위는 야곱의 셋째 아들이지만 흩어져 살라는 유언을 받는다.(창세 49,5-7) 따라서 그들에겐 할당된 땅이 없었다. 대신 다른 지파의 땅에 흩어져 살며 율법을 가르치고 제관 일을 전담했다. 이렇게 해서 그들에겐 병역과 노동에서 제외되는 특전이 주어졌던 것이다. [2008년 6월 29일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교황주일) 가톨릭마산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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