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공부는 왜 합니까? | 카테고리 | 성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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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정임 | 작성일2013-05-08 | 조회수607 | 추천수1 | 신고 |
+샬롬(그리스도의 평화) 공부는 왜 합니까? 가톨릭 교회는 우리를 믿고 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저는 그동안 왜 이 성경 묻고 답하기를 책임지시고 상담해 주시는 사제는 없으실까? 계시다면 이러저러한 잡음이 없을 수도 있는데... 이러한 생각도 했었습니다. 그러면서 여러가지 생각을 해 왔습니다. 언제는 다시는 이곳에 오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도 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또 방문하고 방문하고 그러고 있습니다. 무엇이 저를 이곳에 이끌고 있는가? 하고 생각해 봅니다. 궁금증입니다. 다른 형제들은 성경의 말씀 중에서 무엇을 궁금해 하시는가? 성경의 궁금증은 바로 인생의 궁금증과 연결되고 있음을 알기에 더욱 궁금해집니다. 다른 형제들의 궁금증을 통해 저도 함께 궁금해 합니다. 이렇게 깨달은 내용들은 제 마음에 살아서 저를 살게 하는 힘이 되어 줍니다. 이 매력이 저를 이곳으로 이끌고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한 사람은 주님의 지혜를 온전히 다 통달하고 깨달을 수 있는가? 그렇게 완전한가? 저 자신을 봅니다. 아닙니다. 사람은 볼 수 있고 깨달을 수 있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리고 보고 싶은 것만 보고 그것만 기억하기도 합니다. 바로 인간은 한계를 지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사람과 사람이 서로 협력해서 살라고 사람의 몸에서 사람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서로에게 알맞은 협력자로 함께 살면서 행복하라고.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 협력해서 주님의 일을 해야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동안 가톨릭 교회는 세상속에 사는 그리스도인들(평신도 그리스도인)을 각기 다양한 교육들을 통해 많이 공부를 시켜 왔습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교회는 눈부신 변화를 해 왔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세상속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인 우리들에게 성경을 맘껏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는 것입니다. 공의회가 1965년 폐막한 이후 48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성경에서 30년은 예수님께서 공생활을 시작한 시기이고 유다인들은 랍비가 되어 성경을 가르칠 수 있는 나이라고 합니다. 성경에서 40은 충만함을 의미한다고 배웠습니다. 세상적인 충만함이지요. 그러므로 세상속에 사는 그리스도인들(평신도 그리스도인)이 48년간 성경을 공부하였다면 이제는 스스로 서로에게 도움을 주며 살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의미들을 가톨릭 교회는 이미 아셨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언제까지 세상속의 그리스도인들이 교회가 주는 양분만 받아먹고 어린아이처럼 살 것입니까? 우리도 이제 어른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성경을 이해할 수 있는 많은 교육 프로그램도 있고 서적도 있고 ... 이러한 혜택을 먼저 누린 형제는 이제 시작하는 분들에게 예수님처럼 자상하게 자신이 이해하고 있는 모든 것을 나누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가지고 있는 재물만 나누라고 하시는 예수님이 아니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라."(마태 28,20)고 하셨습니다. 다소 잘못 이해하고 있다고 "야단쳐라." 라고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가르쳐라." 라고 하신 말씀 안에는 완전히 모르는 이를 지칭하기도 하겠지만 조금 잘못 이해하고 있는 이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서로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가르쳐 주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서로 협력하여 사는 길이고 예수님의 참 소망이신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을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사랑받아 본 적이 없어서 어떻게 사랑하는 것인지 모른다면야, 그래서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이 어떤 것인지 모른다면야, 그 사랑을 먼저 체험하는 것이 순서일 것입니다. 공부는 왜 합니까? 아니 공부하는 과정 안에서 예수님께서 몸소 가르쳐 주시는 부분입니다. 먹지도 못할 과일나무를 심어 가꾸는 사람은 없습니다. 함께 나누고 행복하지 못한다면 그 공부는 왜 합니까? 예수님께서 왜 당신이 명령하신 모든 것을 가르치라고 하셨습니까? 함께 행복하기 위해서입니다. 열심히 공부해서 남을 행복하게 해 줄 수 없는 공부는 먹지도 못하는 과일 나무를 가꾸는 것과 같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우리 함께 열심히 공부해서 남 줍시다. 그리고 함께 행복하게 삽시다. 예수님의 소원이십니다. 밭(성경)에 묻힌 보물은 무지 많습니다. 주님의 밭이기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째째하게 한 가지 보물만 묻어 놓으시고 밭에 보물을 묻어 놨으니 캐라고 하셨겠습니까? 한 사람이 캐면 보물이 한 가지이지만 우리 모두가 한 가지씩 캐면 그 보물이 얼마나 많고 다양하겠습니까? 주님께서 밭(성경)에 묻어 놓으신 보물은 우리가 다 헤아릴 수 없을 것입니다. 어떤이는 황금을 캘 수도 있고, 어떤 이는 다이아몬드를 캘 수도 있고, 제가 보석 이름을 다 모릅니다. 요한 묵시록에는 다양한 보석들의 이름이 나옵니다만 외우지 못하니 생략합니다. 자기가 캔 보석만이 보물의 전부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우리 각자가 캐낸 보석은 그 자체로 보석일 수 있습니다. 그것을 볼 수 있는 눈을 열어 주십사 청합시다. "주님, 저희의 눈을 치유해 주십시오." 아멘.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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