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성령 - 율법을 완성하는 힘 | 카테고리 | 성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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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남충희 | 작성일2013-05-12 | 조회수491 | 추천수2 | 신고 |
화해하여라 (마태5,21-26) 21 “‘살인해서는 안 된다. 살인한 자는 재판에 넘겨진다.’고 옛사람들에게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22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자기 형제에게 성을 내는 자는 누구나 재판에 넘겨질 것이다. 그리고 자기 형제에게 ‘바보!’라고 하는 자는 최고 의회에 넘겨지고, ‘멍청이!’라고 하는 자는 불붙는 지옥에 넘겨질 것이다. 23 그러므로 네가 제단에 예물을 바치려고 하다가, 거기에서 형제가 너에게 원망을 품고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24 예물을 거기 제단 앞에 놓아두고 물러가 먼저 그 형제와 화해하여라. 그런 다음에 돌아와서 예물을 바쳐라. 25 너를 고소한 자와 함께 법정으로 가는 도중에 얼른 타협하여라. 그러지 않으면 고소한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넘기고 재판관은 너를 형리에게 넘겨, 네가 감옥에 갇힐 것이다. 26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네가 마지막 한 닢까지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에서 나오지 못할 것이다.” -------------------------세 부분을 물어보셨는데 저는 첫번째 부분에 대하여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아무튼 성서는 모든 부분이 서로 상통하면서 하늘나라를 증언하므로 제 설명을 포함하여 누구의 설명이든 주체적으로 수용하시면 되겠습니다. 물론 필요하다면 다른 부분도 설명드릴 수 있지만 지금은 그렇게 하지 않겠습니다. 율법에는 살인하지 말라는 규정이 있습니다. 그러나 형제에게 화를 내거나 형제를 깔보고 비난하는 것은 율법에 규정되어 있지 않습니다.(예수의 제자에게는 모든 사람이 하느님께서 낳으신 형제입니다.) 예수는 기존의 율법보다 더 까다로운, 또는 지키기 불가능한 율법을 주는 것처럼 보입니다. 대부분의 사람이 살인을 하지는 않지만 대부분의 사람이 이웃과 다투면서 살아갑니다. 인생은 생존경쟁이니까요. 그렇다면 이 불가능한 율법을 어떻게 지킬 수 있겠습니까? 오직 성령이 아니면 불가능합니다. 사실 남을 미워하는 사람은 이미 마음속으로 살인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미움이란 나를 거스르는 사람이 나쁘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나를 '매우' 거스르는 사람에게 손해를 입히고 싶은데 나에게 그럴 수 있는 힘(권력)이 있다면 나는 아마도 살인을 서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남을 조금이라도 미워하는 마음 자체가 없어야만 합니다. 성령은 바로 그런 사랑의 권능을 부여합니다. 그러므로 예수의 제자는 언제 어디서나 누구든지 사랑합니다. '예물'은 율법에 규정된 제물들을 가리키지만 실질적으로는 제사를 드리는 사람 자신입니다. 구약의 희생제물은 영적인 기도의 예형(豫型)입니다. 기도는 자신을 하느님께 바치는 일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자신을 당신께 바치는 사람을 새로운 영적 자아로 거듭나게 하여주십니다. 예수의 제자는 끊임없는 자기부정(自己否定)을 통하여 영적 쇄신을 이룹니다. 고딕으로 강조하신 부분에 대하여, 만일 다른 사람과 조금이라도 불화하는 마음이 있다면 하느님께 자신을 오롯이 바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형제에 대한 불만에 나의 意志를 굴복시키지 말고 홀로 하느님 앞에 나서야만 합니다. 그러면 하느님께서는 반드시 성령의 평화를 내려주십니다. 잘잘못을 따지지도 않고 패소하는 불합리한 재판이 세상에 어디 있겠습니까? 이것은 형제와의 다툼이 모두 허상에서 온 것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다툼은 욕망에서 오는 것입니다. 사람의 욕망은 무한하게 증대하고 욕망을 채우려는 사람은 많은데 욕망을 채울 수 있는 자원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욕망은 허상이기 때문에 욕망의 채우거나 욕망을 억누르는 것으로는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도 영구적인 평화를 누릴 수도 없습니다. 야고보서(1:15)에서 욕망은 죄를 낳고 죄는 죽음을 낳는다고 한 것은 바로 이 사실을 지적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조금이라도 다툼에 굴복하면 유죄이며 그 결과는 영적 사망입니다. 자, 결론은 버킹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성령입니다. 예수의 모든 가르침은 어떻게 성령을 받아들이는가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성령은 율법을 '일점 일획까지' 완성하는 힘입니다. 기도의 목적은 오직 하나, '성령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을 받아들이려면 겸손과 온유의 멍에를 메어야만 합니다. 겸손은 사람의 칭찬(명예와 권력)에 초연한 것이며 온유는 물질(쾌락과 재물)에 초연한 것입니다. 겸손과 온유의 멍에를 메면 생존경쟁에서 탈락할 것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듭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성령에서 오는 생명, 지혜, 자유는 육정의 즐거움을 보상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성령을 받기 전에는 성령에 대하여 미리 알 수 없습니다. 성령은 하느님의 영이므로 성령을 개념적으로 규정하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성령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참된 개성을 알려줌과 동시에 세상에 통달하는 지혜를 줍니다. 묵상에 도움이 되시길 바랍니다. 주님의 축복을 빕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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