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Re: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시다 (마르11,7-14) | 카테고리 | 성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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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남충희 | 작성일2013-05-18 | 조회수534 | 추천수1 | 신고 |
+찬미 예수 아직 열매가 열릴 때가 되지 않았으므로 무화과나무에 잎만 무성할 뿐 열매가 없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런데도 예수는 무화과 나무를 저주합니다. 사실 무화과나무는 식물에 불과하므로 자유로운 의지가 없고, 따라서 설령 제 때 열매를 맺지 못하더라도 저주받을 이유는 없습니다. 이것은 물론 무화과나무를 빗대어 자유로운 의지를 지닌 사람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을 지적하려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신의 판단과 행위에 대하여 스스로 책임을 질 수 있는 존재입니다. '잎이 무성함'은 지식, 건축, 예술 등등 돈, 명예, 권력에 따라붙는 화려한 겉모습입니다. '열매'는 영적 생명입니다. 무화과나무는 정해진 때가 되어야 열매를 맺지만 사람이 영적 생명을 열매맺을 '때'는 바로 지금입니다. 즉, 사람이라면 한시라도 회개를 지체할 수 없습니다. 하느님의 영인 성령이 없이는 인생 자체가 무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인생을 사는 동안 영적 생명을 얻지 않으면 다른 기회는 '영원히' 없습니다. (윤회와 같은 낭설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회개를 거부하기 위한 구실입니다.) 무화과나무의 잎이 무성한 것은 자연스럽지만 사람이 세상의 풍속을 따라 화려한 겉모습에 마음을 빼앗겨 회개하지 않는 것은 치명적입니다. 또, 무화과나무열매는 한때의 배고픔을 충족시키는 음식에 불과하지만 사람의 영적 생명은 더없이 고귀하고도 영원합니다. 무화과나무는 자연법칙에 따라 때가 되어야 열매를 맺지만 사람은 바로 지금 회개함으로써 때와 관계없이 늘 영적 생명을 열매맺습니다. 예수는 다소 폭력적인 기적을 통하여 회개를 촉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무화과나무 한 그루가 죽는 것은 물론 아깝습니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이 당연히 해야 할 바를 모르고 덧없이 죽어가는 것은 그와 비교할 수도 없이 아깝습니다. 예수의 '배고픔'은 그의 말을 알아듣는 사람들이 매우 적은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을 상징적으로 나타냅니다. 설마 인류의 스승이며 주님인 예수가 자신이 배고프다고 무화과나무를 탓할 리는 없겠지요. 미흡한 글이나마 조금이라도 도움되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축복을 빕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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