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개와 돼지 | 카테고리 | 성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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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남충희 | 작성일2013-05-23 | 조회수740 | 추천수0 | 신고 |
짧은 구절이지만 매우 풍부한 상징성을 내포하고 있으므로 다소 길게 말씀드리겠습니다. '거룩한 것'은 영적 지혜, '진주'는 영적 생명을 가리키는 상징어입니다. 물론 둘 다 영적 자아의 품성(稟性)입니다. 믿음의 지혜는 하느님의 영인 성령으로부터 오는 것이므로 거룩합니다. "아버지께서 거룩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거룩하게 되시오."라고 한 말씀과 연결할 수 있습니다. 믿음은 모든 것 - 내 마음에 드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美와 醜), 내마음에 드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善과 惡) - 을 포용합니다. 바로 이런 이유로 예수의 제자는 원수를 사랑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개'는 사람의 지혜입니다. 율법학자와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같은 위선적 종교지도자들, 세상의 지혜롭다는 스승을 가리키는 상징어입니다. 개로 비유되는 견유학파도 염두에 두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개가 고기를 뜯어먹고 나면 뼈가 지저분하게 남습니다. 또 개는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는 꼬리를 흔들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공격합니다. 이처럼 사람의 지혜는 불완전하며 상대방을 공격하는 습성이 있습니다. 하느님의 지혜는 세상에 참된 평화를 주지만 사람의 지혜는 평화를 추구하면서도 불화를 일으킵니다. '진주'는 영적 생명이 세상에서 유일무이한 가치를 지니고 있음을 강조합니다. "가진 것을 다 팔아 그것을 삽니다." 라는 말씀과 연결할 수 있습니다. '돼지'은 욕정(쾌락과 재물)을 상징합니다. 돼지는 하늘을 볼 수없어서 그저 땅을 헤집고 다닙니다. 이 상징을 가다라 지방의 돼지떼 이야기와 연결할 수 있습니다. 돼지가 앞으로 달려가는 이유는 옆의 돼지들이 달려가기 때문입니다. 돼지는 자신의 판단력이 없이 그저 본능대로 무리를 지어 삽니다. 앞에는 죽음이라는 절벽이 있지만 돼지는 그것을 미리 볼 줄 모릅니다. '밟고 돌아서는' 행위는 돼지, '물어뜯는' 행위는 개를 지시하지만 둘 다 육적 자아의 행동을 상징적으로 표현합니다. 사람의 지혜는 겉으로는 교양과 품위가 넘쳐 보이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욕망의 지배를 받고 있습니다. 복음은 생명의 지혜를 증언합니다. 그런데 복음을 세상의 가치와 뒤섞어놓으면 그것은 세상의 가치로 변화하고 맙니다. 육정의 작용은 매우 교묘하여 자신을 속이면서까지 죽음을 고집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의 제자는 늘 자신을 돌아보면서 육정의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기도해야만 합니다. 개와 돼지를 이길 수 있는 힘은 오직 성령으로부터 오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지혜는 지혜로워 보이지만 어리석고 하느님의 지혜는 어리석어 보이지만 지혜롭습니다. 그러면 예수는 복음을 모르는 세상 사람들을 개와 돼지로 취급하는가 하는 의문이 듭니다. 이것은 인격모독이 아닌가?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은 자신의 판단과 선택에 따라 짐승이 되기도 하고 하느님의 아들이 되기도 합니다. 예수는 사실을 지적하는 것뿐입니다. 물론 사람은 하느님의 아들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개와 돼지보다 위대합니다. 그러나 위대하게 되기를 스스로 거부하는 사람은 어쩔 수 없이 개와 돼지로 남아있습니다. 예수의 제자는 참된 사람이며 하느님의 아들, 곧 신입니다. 개와 돼지의 상징은 예수가 사람의 가치를 얼마나 높이 평가하는지를 보여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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