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시다.』 에 대한 나의 생각
하느님은 사랑이시라는데... 측은지심이 많으신 예수님이 왜 그러셨을까?...
저 역시 예수님은 무화과나무를 왜 저주하셨는지. 늘 의아했고 그 부분이 이해가
잘 안되면서도 그냥 넘어가곤 했던 부분입니다.
이번에 교우님들이 성경 묻고 답하기에 올리신 것을 계기로 묵상을 시도해봤습니다.
꺼져가는 촛불의 심지도 끄지 않으시는 예수님께서, 당신이 시장하셨을 때 열매가
없었다는 이유만으로 무화과나무를 그냥 저주하지는 않으셨을거란 믿음을 갖고서,
눈에 보이는 글자 너머에 무슨 뜻이 있는지 여쭤가며 묵상을 했습니다.
먼저, 예수님께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시는 장면이 나오는 복음 찾아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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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태오복음 21장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시다 (마르 11,12-14 ; 마르 11,20-25)
18 예수님께서는 새벽에 성안으로 되돌아가실 때에 시장하셨다. 19 마침 길가에 있는 무화과나무 한 그루를 보시고 가까이 가셨다. 그러나 잎사귀
밖에는 달리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으므로 그 나무를 향하여 말씀하셨다. “이제부터
너는 영원히 열매 맺는 일이 없을 것이다.” 그러자 나무가 즉시 말라 버렸다.
20 제자들이 그것을 보고 놀라서, “어째서 무화과나무가 즉시 말라 버렸습니까?”
하고 물었다.
2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믿음을 가지고 의심하지 않으면, 이 무화과나무에 일어난 일을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서 저 바다에 빠져라.’ 하여도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22 그리고 너희가 기도할 때에 믿고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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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말씀을 자세히 살펴봅니다
예수님께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시자 즉시 말라버린 걸 보고 놀란 제자들이
“어째서 무화과나무가 즉시 말라 버렸습니까?” 하고 물었고,
그에 대해 예수님의 대답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믿음을 가지고 의심하지 않으면,
이 무화과나무에 일어난 일을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서
저 바다에 빠져라.’ 하여도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그리고 너희가 기도할
때에 믿고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받을 것이다.”
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제자의 질문과 예수님의 대답이 서로 핀트가 딱 안맞는다고 생각되지 않으시나요?
제자는 나무가 말라버린 현상을 묻고 있고, 예수님은 믿음의 이야기를 대답하고
계십니다.
저의 묵상은 이렇습니다.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킨다.’는 말이 있습니다.
여기서 손가락이 가리키는 의도는 손가락 자체를 바라보게 하는데 있는게 아니고,
본질인 달을 바라보게 하는데 있습니다.
이 복음 말씀에 비유하자면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사건’은, 예수님이 그 말라버린 무화과나무를 통해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고자 하는게 무엇인지가 더 중요한 본질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그 사건을 통해 무엇을 가르치고 싶으셨을까요?
제자들의 질문에 대답하신 그 내용이 바로 가르침의 본질입니다.
"너희가 믿음을 가지고 의심하지 않으면,/ 이 무화과나무에 일어난 일을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서 저 바다에 빠져라.’ 하여도 그대로 이루어
질 것이다. /그리고 너희가 기도할 때에 믿고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받을
것이다."
바로 ‘믿음의 권능'을 강조하고 계십니다.
저는 예수님께서 ‘저주받은 무화과나무’를 교재로 삼아, 제자들에게 ‘믿음의 권능’을
시청각 교육을 시키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아직 영적인 믿음체계가 서지 못한 제자들에게는 현상적인 비유를 들 수밖에 없었을거라
생각해봅니다.
그럼 그 무화과 나무는 무슨 죄가 많아서 그런 일을 당했을까요?
(연관복음: 마태오 3:10, 마태오 21:43, 루가 13:2)
로마서 9장 18절~ 23절을 보면,
로마서 9: 18 이렇게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어떤 사람에게는
자비를 베푸시고,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어떤 사람은 완고하게 만드십니다.
19 이제 그대는, “그렇다면 하느님께서는 왜 사람을 여전히 책망하십니까? 사실
누가 그분의 뜻을 거역할 수 있겠습니까?” 하고 물을 것입니다.
20 아, 인간이여! 하느님께 말대답을 하는 그대는 정녕 누구인가? 작품이 제작자
에게 “나를 왜 이렇게 만들었소?” 하고 말할 수 있습니까?
21 또는, 옹기장이가 진흙을 가지고 한 덩이는 귀한 데 쓰는 그릇으로, 한 덩이
는 천한 데 쓰는 그릇으로 만들 권한이 없습니까?
22 하느님께서 당신의 진노를 보이시고 당신의 힘을 알리기를 원하시면서도, 멸망
하게 되어 있는 진노의 그릇들을 큰 은혜로 참아 주셨다면,
23 그리고 영광을 받도록 미리 마련하신 자비의 그릇들에게 당신의 풍성한
영광을 알리려고 그리하셨다면, 무엇이라고 대답하렵니까?
위의 로마서 말씀을 비추어볼 때, 특히 줄친 부분을 보면.
'제자들은' 하느님의 자녀로 선택받은 사람으로 영광을 받도록 미리 마련하신 '자비의
그릇들’이었고,
'그 말라버린 무화과나무'는 제자들에게 당신의 풍성한 영광을 알리려고 '쓰임을 받은
도구'였다는걸 미루어 알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무화과나무 저주 사건'은, 본질(가르침)을 설명하기 위한 손가락(상징) 이었다는게 저의 생각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지금 우리들에게도 그 '믿음의 권능'을 선포하고 계십니다.
"믿음을 가지고 의심하지 않으면 어떤 불가능한 일이라도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그리고
기도할때에 믿고 청하는 것은 무엇이나 다 받을 것이다." 라고...
이상은 저의 묵상이었습니다
이복선 아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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