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신약] 사도행전 이야기55: 야고보를 비롯한 원로들의 조언(사도 21,17-2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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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20-03-16 | 조회수8,685 | 추천수0 | |
[이창훈 소장의 사도행전 이야기] (55) 야고보를 비롯한 원로들의 조언(사도 21,17-26) “유다인을 얻기 위해 유다인처럼”… 정결 예식을 치르다
- 바오로의 선교 여행 지도. 출처=「주석성경」
마침내 예루살렘에 도착한 바오로는 야고보를 비롯해 예루살렘 교회의 원로들을 만나 그간의 활동을 보고하고 조언을 듣습니다. 바오로 일행이 예루살렘에 다다르자 예루살렘 신자들이 반갑게 맞이합니다.(21,17) 이로써 바오로는 3차 선교 여행을 마칩니다. 여기서 바오로의 선교 여행 전체를 잠깐 정리하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3차 선교 여행을 마치다
바오로는 1차 선교 여행을 안티오키아 교회의 파견을 받아 떠납니다.(13,1-3) 바오로(당시는 사울)는 안티오키아의 외항 역할을 하는 셀레우키아를 출발해 키프로스 섬으로 건너갔다가 소아시아 남쪽 페르게를 거쳐 내륙 지방인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 이코니온, 리스트라와 데르베까지 갔다가 왔던 길을 되돌아 안티오키아로 돌아옵니다.(13,4─14,26) 「주석 성경」의 연표를 따르면, 바오로의 1차 선교 여행은 기원후 45~49년에 이루어집니다.
바오로는 1차 선교 여행에서 많은 사람을 제자가 되게 하는 성과를 거두지만 또한 반대하는 유다인들에게 적지 않은 박해도 받습니다. 1차 선교 여행의 경험은 예루살렘 사도 회의에서 다른 민족 사람들이 모세 율법을 지키는 문제와 관련한 해결책을 마련하는 데에도 영향을 미칩니다.(15,12)
바오로의 2차 선교 여행은 1차 선교 여행지들인 소아시아 내륙 데르베와 리스트라 같은 도시뿐 아니라 갈라티아와 프리기아 지방을 다닌 후 에게해와 맞닿은 트로아스까지 갑니다. 그곳에서 환시를 보고는 사모트라케섬을 거쳐 유럽 대륙인 마케도니아의 네아폴리스로 갔다가 바로 필리피로 가서 선교합니다. 그리고 암피폴리스와 아폴로니아를 거쳐 테살로니카와 베로이아에서도 말씀을 전하지요. 거기에서 아테네로 내려왔다가 코린토로 가서 1년 6개월 이상 머물며 선교한 후 에페소를 거쳐 카이사리아로 건너와 예루살렘 교회에 인사하고 안티오키아 교회로 돌아갑니다.(15,36─18,22)
49~52년에 이뤄진 이 2차 선교 여행의 주목할 특징은 유럽 본토에 본격적으로 복음을 전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필리피, 테살로니카, 코린토가 그 대표 도시들이었고, 바오로가 이곳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들에는 그 신자들에 대한 바오로의 애정과 염려가 잘 드러납니다.
바오로는 3차 선교 여행에서 내륙을 통해 갈라티아와 프리기아 지방을 두루 거치면서 1차, 2차 선교 여행 때 찾았던 곳들을 들러 제자들을 격려한 후 에페소에서 3년 가까이 지내지요. 거기에서 다시 트로아스를 거쳐 2차 선교 여행지들인 마케도니아의 여러 도시를 거쳐 코린토에서 3개월을 머뭅니다. 거기서 거꾸로 마케도니아를 거쳐 트로아스로 건너오고 밀레토스를 통해 소아시아 남쪽 항구 도시 파타라에서 배를 타고 시리아 땅인 티로에 도착합니다. 그리고 프롤레마이스와 카이사리아를 거쳐 마침내 예루살렘에 다다름으로써 긴 여정을 마무리합니다.(18,23─21,17) 3차 선교 여행의 기간은 53~58년으로 가장 길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 원로들의 인정과 염려
예루살렘에 도착한 이튿날 바오로와 일행은 야고보를 비롯한 예루살렘 교회 원로들을 만나 인사합니다.(21,19ㄱ) 이 야고보는 예루살렘 사도 회의 때에 베드로의 의견을 뒷받침하며 해결책을 제시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지도자입니다. 바오로는 갈라티아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에서 야고보를 “주님의 형제”, “교회의 기둥”이라고 불렀지요.(갈라 1,19; 2,9)
바오로는 원로들에게 자기의 선교 활동을 통해 “하느님께서 다른 민족들에게 하신 일들을 낱낱이 이야기했고” 이야기를 들은 원로들은 “하느님을 찬양”합니다.(21,19ㄴ-20) 원로들이 하느님을 찬양했다는 것은 바오로의 이방인 선교가 하느님의 개입으로 이루어졌음을 인정한다는 의미를 지닌다고 하겠습니다.
하지만 원로들은 바오로에 대한 염려도 함께 표명합니다. “당신이 다른 민족들 가운데에서 사는 모든 유다인에게 모세를 배신하라고 가르치면서 자식들에게 할례를 베풀지도 말고 우리 관습을 따르지 말라고 한다는 이야기”를 수만 명이나 되는 유다인 신자들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모세의 율법을 열성적으로 지키고 있는 이 유다인 신자들에게는 바오로의 이같은 가르침이 몹시 거슬렸을 터인데 문제는 그들이 바오로가 예루살렘에 와 있는 것을 알게 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것입니다.(21,21-22)
바오로에게 생길 불상사를 막기 위해서 원로들은 대안을 제시합니다. “서원을 한 사람” 넷이 있는데 그들을 데리고 가서 함께 정결 예식을 하고 그들이 머리를 깎을 수 있도록 그 비용을 대면 바오로가 “율법을 정확히 지키며 사는 사람”이라는 것이 알려지게 되어 일이 잘 무마될 수 있으리라는 것입니다.(21,23-25)
여기서 서원을 한 사람이란 ‘나지르인 서원’을 한 사람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나지르인 서원을 한 사람들은 서원 기간이 차면 머리를 깎고 그에 따른 예물을 바치는 예식을 해야 했습니다. 바오로 역시 이방인 세계를 다니며 수많은 이방인과 접촉했기에 율법의 관점에서 보면 정결 예식을 치러야 하는 부정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과 함께 바오로도 정결 예식을 치르고 그 비용을 댐으로써 바오로가 율법을 열성적으로 지키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라는 것이 예루살렘 교회 원로들의 주문이었습니다.
원로들은 이 말에 이어 이방인 신자들과 관련해서는 우상에게 바쳤던 제물, 피와 목 졸라 죽인 짐승의 고기, 그리고 불륜을 삼가라는 예루살렘 사도 회의의 결정을 덧붙입니다.(21,25) 바오로는 원로들의 조언을 따라 그 사람들을 데리고 이튿날 그들과 함께 정결 예식을 치른 다음 성전으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정결 예식 기한이 차는 날, 곧 예물을 바칠 날을 신고합니다.(21,26)
생각해봅시다
예루살렘의 원로들이 말하는 것처럼 바오로가 정말로 ‘다른 민족들 가운데 사는 모든 유다인에게 모세를 배신하라고 가르치고 자식들에게 할례를 베풀지도 말고 유다인 관습을 따르지 말라’고 했을까요? 바오로가 모든 유다인에게 그렇게 가르쳤다고 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하겠습니다.
물론 바오로의 일차적 관심은 율법의 준수가 아니라 “하느님 은총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20,24)이었습니다. 실제로 바오로에게는 율법의 준수가 아니라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은총이 훨씬 중요했습니다. 이 점은 특히 바오로가 로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하지만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에서 바오로는 “나는 아무에게도 매이지 않은 자유인이지만, 되도록 많은 사람을 얻으려고 스스로 모든 사람의 종이 되었습니다”라면서 “유다인을 얻기 위해 유다인처럼…율법 밖에 있는 이들을 얻으려고 율법 밖에 있는 이들처럼 되었습니다” 하고 밝힙니다. 원로들의 조언을 받아 정결 예식을 치른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바오로의 이런 태도가 열성적인 유다인들에게는 배신자로 비쳤을 것입니다. 원로들의 말 속에는 바오로에게 품고 있는 유다인들의 이런 감정이 들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 감정이 어떻게 표출되는지 다음 호에서 계속 살펴보겠습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20년 3월 15일, 이창훈(한국평협 평신도사도직연구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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