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신약] 사도행전을 따라가는 성경의 세계: 박해받는 예루살렘 교회 (1) 사도들에 대한 박해(사도 5,17-4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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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20-04-02 | 조회수6,693 | 추천수0 | |
[사도행전을 따라가는 성경의 세계] 박해받는 예루살렘 교회 (1) 사도들에 대한 박해(5,17-42)
– 성전산으로 이어지는 돌계단. 가말리엘을 비롯한 율법 교사들이 이어지는 이 계단에 앉아서 사람들을 가르쳤을 것으로 추정된다.
예루살렘 초기 교회는 신자들이 한마음 한뜻이 되어 가진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며 사도들의 가르침을 듣고 친교를 이루며 빵을 떼어 나누고 기도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신자 공동체는 온 백성에게서 호감을 얻었습니다. 사도들은 놀라운 표징과 이적을 통해 백성의 존경을 받았고, 주님을 믿는 신자들은 더욱더 늘어났습니다.
박해의 발단
그런데 이 모습을 못마땅해 하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대사제와 그를 동조하는 사두가이파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사도들을 붙잡아 공영 감옥에 가둡니다. 사도행전은 그 이유를 “시기심에 가득 차”라고 전합니다(5,1). 백성이 자기들의 말을 듣지 않고 사도들을 따르는 데서 생긴 시기심이었습니다.
하지만 단지 시기심에서만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이들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서 나자렛 예수의 이름으로 죽은 이들의 부활을 선포하고 있는 것을 보고는 붙잡아 감옥에 넣었다가 예수의 이름으로는 절대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고 지시하고 풀어준 적이 있었습니다(4,1-22 참조). 그런데 사도들이 이 지시를 어기고 있다고 본 것입니다.
– 성 베드로 사도.
대사제와 그의 동조자자들은 이튿날 ‘산헤드린’이라고 하는 예루살렘 최고의회를 소집하고는 경비병을 감옥에 보내 사도들을 데려오라고 지시합니다. 최고의회는 대사제와 수석 사제들, 귀족 계급의 원로들 그리고 율법 학자 등 모두 71명으로 이루어진 이스라엘 백성의 최고 원로단 회의였습니다.
그런데 경비병들이 감옥에 가서 보니 사도들이 감쪽같이 없어져 버렸습니다. 성전 경비대장과 수석 사제들이 당황해하고 있는데 사도들이 성전에서 백성을 가르치고 있다는 전갈이 옵니다. 전날 밤 천사가 사도들을 감옥 밖으로 데리고 나갔고, 사도들은 천사의 말대로 이른 아침에 성전에 들어가 가르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경비대장과 경비병들이 사도들을 최고의회에 데려오자 대사제는 사도들에게 이전에 지시했던 일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킵니다. “우리가 당신들에게 그 이름으로 가르치지 말라고 단단히 지시하지 않았소? 그런데 보시오 당신들은 온 예루살렘에 당신들의 가르침을 퍼뜨리면서 그 사람의 피에 대한 책임을 우리에게 씌우려 하고 있소.”(5,28)
대사제의 이 말에는 사도들을 체포한 이유가 잘 드러나 있습니다. 사도들이 단순히 자기들의 지시를 어긴 것으로 그치지 않고 나자렛 예수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자기들에게 씌우려 하고 있어서 못마땅하다는 것입니다.
사도들의 증언
대사제의 말에 베드로와 사도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에게 순종하는 것보다 하느님께 순종하는 것이 더욱 마땅합니다.”(5,29) 베드로를 비롯한 사도들은 제대로 배우지 못한 무식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반면에 대사제는 하느님과 가장 가까이에 있고 하느님 뜻을 가장 잘 아는 사람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런 대사제 앞에서 “사람에게 순종하는 것보다 하느님께 순종하는 것이 더욱 마땅하다”라는 사도들의 대답은 자기들이 대사제나 최고의회 사람들보다 하느님 뜻을 더 잘 안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였습니다.
– 이스라엘 야브네(얌니아)에 있는 랍비 가말리엘 2세(율법 교사 가말리엘의 손자) 무덤.(좌) 갈릴래아 사람 유다의 고향 가믈라. 유적만 남은 이 도시는 갈릴래아 호수 북동쪽 골란고원에 있다.(우)
사도들은 나아가 최고의회가 못마땅해 하는 핵심을 이야기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이 죽인 예수님을 다시 살리시어 구원자로 삼으시고 이스라엘이 회개하고 죄를 용서받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입니다. “우리는 이 일의 증인입니다. 하느님께서 당신께 순종하는 이들에게 주신 성령도 증인이십니다.”(5,32)
이 증언을 통해서 사도들은 대사제를 비롯한 최고의회에 정면으로 맞서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증언의 기조는 최고의회에 대한 비판이나 단죄가 아니라 회개하여 용서받으라는 권고입니다.
가말리엘의 개입으로 사도들이 풀려나다
사도들의 이 말에 최고의회 사람들은 격분해서 사도들을 죽이려고 합니다. 그때에 가말리엘이라는 율법 교사가 나서서 중재합니다. 나중에 이방인의 사도가 된 타르수스 출신 사울의 스승이기도 한 가말리엘은 사도들의 일에 관여하지 말고 내버려 두자고 제안합니다. 사도들의 계획이나 활동이 사람에게서 나왔으면 없어질 것이고, 하느님에게서 나왔으면 없애지 못할 뿐 아니라 자칫 하느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가말리엘은 이런 주장을 펴는 근거로 테우다스라는 사람과 갈릴래아 사람 유다 두 사람을 예로 듭니다. 테우다스는 기원후 44~46년에 예언자로 자처하면서 추종자들을 모았습니다만, 가말리엘의 말처럼 당시 유다 총독에게 사형을 당했고 추종자들은 죽거나 흩어져 버렸습니다. 갈릴래아 사람 유다는 역사적으로는 테우다스보다 1세대 이상 앞선 인물로 추종자들을 모아 로마에 반기를 들다가 죽었습니다. 로마에 대적해 이스라엘 독립 운동을 하는 열혈당이 이 유다에게서 시작됐다고 하지요.
– 예루살렘 성전 모형도. 선을 친 부분이 사도들이 불려간 최고의회 모임 방이다. BiblePlace.com
최고의회는 가말리엘의 말에 수긍하고는 “사도들을 불러들여 매질한 다음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하지 말라고 다시 지시하고서는”(5,40) 풀어줍니다. 사도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욕을 받았음을 기뻐하며 날마다 성전에서 또 이집저집에서 끊임없이 가르치면서 예수님은 메시아시라고 선포합니다.
오순절 성령강림으로 시작한 예루살렘 공동체는 사도들의 복음 선포와 놀라운 표징과 이적, 그리고 나눔과 사귐과 섬김의 생활로 백성의 호감을 사면서 날로 성장해 갑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이스라엘의 지배 계층에는 반대로 표적이 됩니다.
그 표적은 일차적으로 공동체의 지도자들인 사도들에게 향합니다. 처음에는 베드로와 요한을 붙잡아 경고하고 풀어주었지만, 이번에는 붙잡아 매질까지 합니다. 사도들에 대한 박해가 더 심해져 가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성령으로 충만한 사도들은 오히려 “모욕을 당할 수 있는 자격을 인정받았다고 기뻐하며”(5,41) 물러납니다.
예수님께서 참행복 선언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면, 그리고 사람의 아들 때문에 너희를 쫓아내고 모욕하고 중상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사실 그들의 조상들도 예언자들을 그렇게 대하였다.”(루카 6,22)
사도들은 매질을 당했을 때 예수님의 이 말씀이 떠올랐을 것입니다. 우리에게 시련이 닥쳤을 때에 위로가 되는 말씀은 무엇일까요.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0년 4월호, 이창훈 알퐁소(전 평화신문 편집국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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