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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성경 인물 이야기: 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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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0-04-04 조회수8,436 추천수1

[함신부가 들려주는 성경 인물 이야기] 노아 (1)

 

 

외경 에녹 1서는 노아가 눈보다 더 희고 장미보다 더 붉은 피부, 양털보다 더 흰 머리카락과 태양처럼 빛나는 눈을 갖고 태어났으며, 태어나자마자 하느님을 부를 수 있었다고 합니다. 꿈란 문헌은 노아가 태어났을 때 그에게서 빛이 흘러나와 집을 가득 채웠다고도 합니다.

 

그러나 창세기는 노아를 비현실적이고 신비로운 인물이 아니라, 현실적이고 경건한 인물로 묘사합니다. 창세기에 따르면, 노아는 아담의 10대손으로 태어났으며, 그의 이름은 위로를 뜻합니다(창세 5,29). 노아는 의롭고 흠이 없었으며 하느님과 함께 살았습니다(창세 6,9). 이 마지막 표현은 직역하면 ‘하느님과 함께 걸었다’입니다. 노아가 하느님의 뜻에 맞는 인생길을 걸었다는 의미입니다. 창세기 6,8은 모든 인간 가운데서 노아만이 유일하게 악하지 않았음을 시사합니다. 여기에 더해 신약성경의 2베드 2,5의 ‘의로움의 선포자’라는 표현은 노아가 자신만 생각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도 회개하여 살아남도록 노력했음을 암시합니다.

 

제2 성전시대(신바빌로니아에 의해 파괴된 예루살렘 성전이 재건된 기원전 515년부터 로마에 의해 다시 파괴된 70년 사이)에 쓰인 많은 유다 문학 작품들이 ‘노아의 책’이 있었다고 하지만, 오늘날까지 전해 내려오지는 않습니다. 만일 그 책이 실제로 존재해서 우리에게 전해졌다면, 우리는 노아의 인물 됨됨이에 대해 훨씬 많이 알 수 있었을 것입니다.

 

노아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대홍수겠지요. 창세기 6,7에서 하느님은 악으로 가득 찬 사람들을 두고 ‘내가 그것들을 만든 것이 후회스럽구나!’라고 한탄하십니다. 그리고 대홍수를 일으키겠다고 하십니다. 이 홍수가 세상을 악으로 물들인 인간들에 대한 하느님의 감정적인 대응으로 보이기도 하겠습니다. 이러한 하느님의 모습이 거슬린 요한 외경은 홍수를 일으킨 존재를 하느님이 아니라 하위신인 얄다바오트로 기록했습니다.

 

하지만 창세기 6장 12절과 17절에 히브리어 샤햐트라는 같은 단어가 사용된 점(우리말 성경에는 각각 ‘타락하다’와 ‘없애 버리다’로 다르게 번역되었습니다)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은 인간들이 이미 스스로 샤하트하기로 결정했기에,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그대로 하신 것이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이에 따르면, 대홍수로 인한 인류 멸망의 책임은 인간 자신에게 있는 것입니다. [2020년 4월 5일 주님 수난 성지 주일 가톨릭 안동 3면, 함원식 이사야 신부(안계 본당 주임)]

 

 

[함신부가 들려주는 성경 인물 이야기] 노아 (2)

 

 

대홍수 이야기를 읽다 보면 상충하는 부분이 적잖게 눈에 띕니다. 문헌 가설은 여기 야훼계 전승(J)과 사제계전승(P)이 들어있다고 합니다.

 

1. J는 사람의 생각과 행동의 악함을(창세 6,5), P는 땅이 부패한 것을 홍수 원인으로 듭니다(창세 6,11).

 

2. J에서 노아가 홍수의 생존자로 선택된 것은 전적으로 은총인데(창세 6,8), P에서는 하느님께서 노아가 의인이기에 선택하십니다(창세 6,9).

 

3. J에서는 정결한 것 7쌍, 부정한 것 1쌍이 방주에 드는데(창세 7,2), P에서는 모든 동물이 암수 1쌍씩 방주에 들어갑니다(창세 6,19).

 

4. J에서는 노아가 동물들을 방주로 데려오는데(창세7,2-3), P에서는 동물들이 스스로 방주로 옵니다(창세7,8-9).

 

5. J에서는 홍수 7일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는데(창세 7,7), P에서는 홍수 시작 때 방주에 들어갑니다(창세 7,13).

 

6. J에서는 비가 홍수를 일으키는데(창세7,12), P에서는 궁창의 물이 홍수의 원인입니다(창세 7,11).

 

7. J에서는 홍수 기간이 40일인데(창세 7,17), P에서는 노아 600세 2월 17일(창세 7,11)부터 601세 2월 27일(창세 8,14)까지 12개월 11일간 홍수가 지속합니다. 여기 사용된 달력은 일 년이 354일인 태음력인데, 365일을 일 년으로 치는 태양력으로 환산하면 정확히 1년이 됩니다.

 

8. J에서는 비가 그치자 홍수가 끝나는데(창세 8,2ㄴ), P에서는 땅과 하늘의 물구멍이 막힌 뒤 바람이 불어 물을 말림으로 홍수가 끝납니다(창세 8,1-2ㄱ).

 

9. J에서는 노아가 물이 빠졌는지 알기 위해 7일마다 비둘기를 세 번 날려 보내는데(창세 8,8-12), P에서는 까마귀를 한 번 날려 보냅니다(창세 8,7).

 

10. J에서 홍수 뒤 노아가 한 일은 감사 제사이고(창세 8,20), P에서는 육식 허용과 피 먹는 것 금지에 관한 하느님의 명령을 들었습니다(창세 9,3-4).

 

11. P에만 하느님과 노아의 계약이 나옵니다(창세 9,9). 그리고 하느님께서 무지개를 계약의 표징으로 주시는데(창세 9,15), 무지개는 히브리어로 케셰트로서 활을 뜻합니다. 하느님께서 사냥을 마친 뒤 활을 벽에 걸어두듯이 무지개를 땅이 아니라 하늘을 향해 걸어놓으셨습니다. 여기서 다시는 활을 땅에 쏘아 인류를 멸망시키지 않겠다는 하느님의 의지를 엿볼 수 있겠습니다. [2020년 5월 10일 부활 제5주일 가톨릭 안동 3면, 함원식 이사야 신부(안계 본당 주임)]

 

 

[함신부가 들려주는 성경 인물 이야기] 노아 (3)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모세오경 안에 다양한 전승이 함께 들어있다는 문헌 가설에 따르면, 노아 홍수 이야기의 야훼계 전승은 죄를 반드시 심판하시면서도 인간을 완전히 멸하지 않고 새로운 기회를 주시는 하느님의 은총을 강조하고, 사제계 전승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맺을 궁극적인 계약까지 계속 갱신되어갈 하느님과 인간의 계약이 최초로 맺어지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대홍수 이야기 안에 나타나는 이러한 차이점들을 문헌 가설로 설명하지 않고, 이야기의 세세한 부분을 조금씩 다르게 반복하는 히브리 문학의 특징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이에 따르면 이 이야기는 전체가 통일된 하나의 이야기로서 새로운 창조를 보여줍니다.

 

대홍수로 물이 온 세상을 뒤덮은 것에서 창조 이전 혼돈의 상태를 떠올리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창세 1,2 참조). 커질 대로 커진 인간의 죄가 급기야 창조 질서를 무너뜨리고 혼돈을 불러왔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당신께서 창조하신 모든 것을 무로 되돌리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노아의 가족과 동물들을 보존하심으로써 혼돈이 모든 것을 휩쓰는 것을 막으십니다. 하느님이 원하시는 것은 혼돈이 아니라 오히려 창조의 갱신입니다. 새 창조를 통해 인간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시기 위함입니다. 이 이야기를 새로운 창조 이야기로 해석할 수 있는 근거는 다음에서 드러나는 창조 이야기와 홍수 이야기의 연관성 때문입니다.

 

1. 창조 이전: 하느님의 루아흐(영)가 그 물 위를 감돌고 있었다(창세 1,2). - 하느님께서 땅 위에 루아흐(바람)를 일으키시니 물이 내려갔다(창세 8,1).

 

2. 둘째 날: “물 한가운데에 궁창이 생겨, 물과 물 사이를 갈라놓아라.”(창세 1,6) - 심연의 샘구멍들과 하늘의 창문들이 닫히고 하늘에서 비가 멎으니(창세8,2),

 

3. 셋째 날: “하늘 아래에 있는 물은 한곳으로 모여, 뭍이 드러나라.”(창세 1,9) - 둘째 달 스무이렛날에 땅이 다 말랐다(창세 8,14).

 

4. 다섯째 날: “번식하고 번성하여 바닷물을 가득 채워라. 새들도 땅 위에서 번성하여라.”(창세 1,22) - “새와 짐승과 땅을 기어 다니는 모든 것을 데리고 나와라. 그래서 그것들이 땅에 우글거리며 번식하고 번성하게 하여라.”(창세 8,17) [2020년 5월 17일 부활 제6주일 가톨릭 안동 3면, 함원식 이사야 신부(안계 본당 주임)]

 

 

[함신부가 들려주는 성경 인물 이야기] 노아 (4)

 

 

5. 여섯째 날: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들짐승을 제 종류대로, 집짐승을 제 종류대로, 땅바닥을 기어 다니는 온갖 것을 제 종류대로 만드셨다(창세 1,25). - “새와 짐승과 땅을 기어 다니는 모든 것을 데리고 나와라. 그래서 그것들이 땅에 우글거리며 번식하고 번성하게 하여라.”(창세 8,17)

 

6. 여섯째 날: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당신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자식을 많이 낳고 번성하여 땅을 가득 채우고 지배하여라.”(창세 1,27-28). - 하느님께서 당신 모습으로 사람을 만드셨기 때문이다. “너희는 자식을 많이 낳고 번성하여라. 땅에 우글거리고 그곳에서 번성하여라.”(창세 9,6-7)

 

이러한 창조 이야기와 홍수 이야기 사이의 유사성을 볼 때, 대홍수 사건을 멸망의 사건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의롭고 흠이 없으며 당신과 함께 걸은 노아를 통해 새로운 창조를 하시는 사건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노아 홍수 이야기 안에서 상충하는 여러 부분에 대한 문헌 가설의 설명과 창조 이야기와의 유사성 비교를 간단히 살펴보았습니다만, 대홍수 사건에 관한 어느 쪽의 해석을 따르든지 노아의 의로움과 믿음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만약 노아가 대홍수를 일으키시겠다는 하느님의 말씀을 믿을 수 없어서 방주를 만들지 않았다면 이 세상의 모든 살아 숨 쉬는 것들은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또, 만일 하느님께서 노아를 통하여 새로운 창조를 하실 결정을 내리실 수 있을 정도로 그가 의롭지 않았다면 인류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이렇게 하느님께서 노아를 통해서 하신 일을 보면, 현실이 아무리 엄혹하고 절망스러워도 하느님을 믿는 의인이 단 한 명이라도 있다면 분명히 이 세상에 희망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2020년 5월 24일 주님 승천 대축일(홍보 주일) 가톨릭안동 3면, 함원식 이사야 신부(안계 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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