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신약] 사도행전 이야기58: 최고 의회에서(사도 23,1-1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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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20-04-05 | 조회수8,436 | 추천수1 | |
[이창훈 소장의 사도행전 이야기] (58) 최고 의회에서(사도 23,1-11) 부활 이야기로 최고 의회에 분란을 일으키다
- 최고 의회에 출두해 부활을 이야기해 분란을 일으킨 바오로에게 그날 밤 주님께서 나타나시어 용기를 내라고 격려하시며 로마에서도 증언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사진은 로마 성 밖의 성 바오로 대성전 전경.
천인대장이 소집한 최고 의회에 출두한 바오로는 최고 의원들에게 이야기합니다. 바오로의 말에 최고 의회 의원들 사이에 분란이 생기고 천인대장은 바오로를 다시 진지로 데려갑니다. 이 단락을 세 부분으로 나눠 살펴봅니다.
최고 의원들 앞에서 한 발언
첫째 부분(23,1-5)은 최고 의회 의원들 앞에서 바오로가 한 첫마디와 관련됩니다. 바오로는 이렇게 말을 꺼냅니다. “형제 여러분, 나는 이날까지 하느님 앞에서 온전히 바른 양심으로 살아왔습니다.”(23,1) 최고 의회는 대사제와 수석 사제들 그리고 원로들로 이뤄진 이스라엘 백성을 대표하는 최고 기구입니다. 백성의 신망과 존경을 받는 지도자들이 최고 의회를 구성하고 있었습니다. 그들 앞에 서서 “하느님 앞에서 온전히 바른 양심으로 살아왔다”는 바오로의 첫마디가 최고 의회 의원들에게는 대단히 못마땅했을 것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대사제 하나니아스가 그 곁에 서 있던 이들에게 바오로의 입을 치라고 명령합니다.(23,2) 하나니아스는 기원후 47년쯤부터 59년쯤까지 대사제를 지낸 인물입니다. 그는 탐욕스럽고 포학한 성격으로 많은 재산을 모아 사치스럽게 살다가 66~73년의 제1차 유다 독립 전쟁 때에 열혈당원들에게 친로마파로 몰려 살해됐다고 합니다. 하나니아스가 이런 인물이라면 바오로의 말에 뺨을 치라고 명령한 것도 이해할 만합니다.
뺨을 치라는 하나니아스의 명령에 바오로가 “회칠한 벽 같은 자”라고 발끈하면서 “하느님께서 당신을 치실 것이오!”라고 저주를 퍼붓습니다. 그러고는 “율법에 따라 나를 심판하려고 앉아 있으면서 도리어 율법을 거슬러 나를 치라고 명령했다”고 이유를 밝힙니다.(23,3) 하느님 앞에서 양심에 하등의 거리낄 것이 없이 살아왔다고 자부하는 바오로로서는 뺨을 치라는 대사제의 명령이 “너희는 재판할 때 불의를 저질러서는 안 된다. … 너희 동족을 정의에 따라 재판해야 한다”(레위 19,15)라는 모세오경의 규정을 위배하고 있다고 본 것입니다.
그러자 그 곁에 있던 자들이 “하느님의 대사제를 욕하는 것이오?” 하고 바오로를 힐난합니다. 이 말에 바오로는 대사제인 줄 몰랐다면서 ‘네 백성의 수장을 저주해서는 안 된다’(탈출 22,27)라는 성경 말씀을 인용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합니다.(23,5)
이 첫째 부분에서는 바오로의 성격이 확연하게 드러납니다. 이 대목은 바오로가 과감하고 직설적이며 물불을 가리지 않은 성격임을 알게 해줍니다. 그렇지만 그는 또한 자신의 잘못에 대해서는 곧바로 인정하고 수용하는 성격이기도 함을 알 수 있습니다.
바리사이와 사두가이의 부활 논쟁
둘째 부분(23,6-10)에서는 바오로의 말이 바리사이와 사두가이의 논쟁으로 비화됩니다. 대사제에게 욕을 한 것에 대한 잘못을 인정하고 난 바오로는 최고 의회 의원 가운데 바리사이들도 있고 사두가이들도 있음을 간파합니다. 율법을 엄격히 지키던 바리사이였던 바오로이기에 바리사이와 사두가이를 쉽사리 구별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고는 이렇게 말합니다. “형제 여러분, 나는 바리사이이며 바리사이의 아들입니다. 나는 죽은 이들이 부활하리라는 희망 때문에 재판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23,6)
당시 유다 사회의 양대 기둥이라고 할 수 있는 사두가이와 바리사이는 여러 면에서 대조적이었습니다. 사제 계급에는 사두가이들이 많았고, 율법 학자(교사)들은 바리사이가 주를 이루었습니다. 사두가이들은 세속 삶에서 지도자 자리에 있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반면에 바리사이들은 종교적인 면에서 스승(랍비)들이었습니다.
또 교리와 관련, 바리사이와 사두가이들은 부활과 천사, 영에 대한 생각이 달랐습니다. 바리사이들은 죽은 이들의 부활과 천사 그리고 영이 있다고 믿었고 사두가이들은 부활도 천사도 영도 없다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죽은 이들이 부활하리라는 희망 때문에 재판을 받고 있다”는 바오로의 말에 최고 의회에 있던 바리사이들과 사두가이들 사이에 논쟁이 벌어지면서 회중이 둘로 갈라지고 큰 소란이 벌어집니다. 그리고 바리사이파에서 율법학자 몇 사람이 일어나 “우리는 이 사람에게서 아무 잘못도 찾을 수 없다”면서 “영이나 천사가 그에게 말하였다면 어떻게 할 셈입니까?” 하고 강력하게 항의합니다.(23,7-9)
논쟁이 격렬해지자 바오로가 그들에게 찢겨 죽지 않을까 염려한 천인대장은 바오로를 빼내어 진지 안으로 데려가라고 명령합니다.(23,10) 천인대장으로서는 바오로가 로마 시민인 것을 알고는 바오로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아보려고 최고 의회를 소집했습니다만, 자신의 예상과는 다른 방향으로 사태가 번져가자 놀랐을 것입니다. 그래서 황급히 바오로를 빼내어 안전한 진지로 데려가라고 지시한 것입니다.
로마 군대 진지에서 본 환시
이 단락의 마지막 세 번째 부분(23,11)은 진지에서 바오로가 본 환시입니다. 그날 밤에 주님께서 바오로 앞에 서시어 이르십니다. “용기를 내어라. 너는 예루살렘에서 나를 위하여 증언한 것처럼 로마에서도 증언해야 한다.”
바오로는 3차 선교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밀레토스에서 에페소 교회 원로들에게 작별인사를 하면서 이렇게 말한 바 있습니다. “이제 나는 성령께 사로잡혀 예루살렘으로 가고 있습니다. 거기에서 나에게 무슨 일이 닥칠지 나는 모릅니다. 다만 투옥과 환난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은 성령께서 내가 가는 고을에서마다 일러 주셨습니다.”(20,22-23) 바오로는 자신의 삶이 순탄치 않은 시련과 환난의 연속이 될 것임을 알고 있었는데, 예루살렘에서 이를 다시 한 번 체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루살렘 성전 옆 로마 군대 진지에서 바오로는 “용기를 내어라… 로마에서도 증언해야 한다”는 주님 말씀을 듣습니다. 주님께서는 바오로가 예루살렘을 넘어서 로마에까지 주님을 증언해야 한다는 것을 일깨우시면서 용기를 북돋아 주고 계신다고 하겠습니다.
생각해봅시다
최고 의회 앞에서 바오로가 한 처신은 위험 앞에서도 움츠러들지 않은 바오로의 성품을 잘 보여줍니다. 그는 최고의회 위원들 앞에서도 움츠러들지 않고 떳떳하게 이야기합니다. 바오로는 인간적인 위협이나 위험 앞에서 굴복하지 않는 용기를 보여줍니다. 그렇지만 그는 또한 자신의 실수에 대해서는 즉시 인정할 줄 아는 솔직함을 지녔습니다. 그랬기에 ‘하느님의 대사제를 욕하는 것이오?’ 하는 지적에 바로 잘못을 인정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오로는 용기와 솔직함 못지 않게 지혜로움도 갖췄습니다. 최고 의원들이 부활을 믿는 바리사이와 믿지 않는 사두가이로 갈라져 있는 것을 간파하고 부활 이야기를 꺼내 회중을 분란시킨 것은 바오로의 지혜로움을 보여주는 일화라고 하겠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사도행전을 통해서 계속 살펴보고 있듯이 바오로를 움직이는 힘은 따로 있었습니다. 바로 성령이십니다. 회심한 이후 바오로는 늘 성령의 이끄심에 따라서 움직였습니다. 성령께 마음을 열지 않고서는 성령의 이끄심을 따를 수 없습니다. 바오로의 삶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성령께 마음을 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우고 있습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20년 4월 5일, 이창훈(한국평협 평신도사도직연구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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