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구약] 성서의 해: 집회서 - 율법과 지혜의 조합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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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20-04-11 | 조회수7,849 | 추천수1 | |
[2020 사목교서 ‘성서의 해 II’ 특집] 집회서 - 율법과 지혜의 조합
지혜문학의 마지막 작품은 집회서입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사람들의 모임에서 낭독된 목적으로 기록된 책이라고 기억하시면 좋을 듯합니다. 집회서는 다른 책들과 달리 장, 절의 표기가 없는 머리글이 본문 앞에 위치합니다. 머리글은 집회서를 누가 기록하였는지 알려주며, 이 책이 무엇을 위해서 쓰였는가 하는 목적이 담겨 있습니다. 머리글에 따르면 원래는 히브리어로 쓰인 책을 그리스어로 번역한 사람이 소개됩니다. 자신을 ‘예수’라는 인물의 손자로 밝힙니다. 아울러 집회서의 마지막 부분에서 저자는 자신을 분명하게 밝힙니다. “예루살렘 출신 엘아자르의 아들, 시라의 아들인 나 예수는 ...”(집회 50,27). 그러므로 이 책의 제목을 히브리 전통을 살려서 벤 시라(시라의 아들이라는 히브리어입니다)의 책이라고 부릅니다. 라틴말 성경은 이 책을 ‘교회(모임)의 책’이라는 의미에서 에클레시아스티쿠스(Ecclesiasticus)’라고 불렀고, 우리는 라틴어 전통에 따라서 이 책을 ‘집회서’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집회서의 원문이라 할 수 있는 히브리어 본문이 쓰인 시기는 기원전 190~180년경으로 추정되고, 예수의 손자인 벤 시라가 그리스어 번역본을 완성한 것이 기원전 140~130년경으로 추정됩니다. 지혜문학의 시대적 배경인 헬레니즘 문화 속에서 집회서가 번역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집회서의 저자는 이 책의 집필 목적을 “이국땅에 살면서 배우기를 즐기고, 율법에 맞는 생활 습관을 익히고자 하는 이들을 위하여 이 책을 펴냅니다.”(머리글 35절)라고 밝힙니다. 헬레니즘이라는 이방 문명의 영향권 아래서, 동시에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한 약속의 땅이 아닌 이방인의 땅에 살고 있는 유다인들을 위하여 쓰인 책입니다. 모세를 통하여 조상들에게 전수된 율법의 가르침이 점점 의미를 잃어가고 있는 시대에 다시금 주님의 가르침 율법을 기억하자는 의미에서 기록된 책이 바로 집회서입니다.
인간의 이성으로, 인간의 지혜로 세상과 사물의 이치 파악을 추구했던 시대가 바로 헬레니즘 시대였습니다. 지혜서는 바로 인간의 지혜로 도달할 수 없는 그 영역을 하느님의 영역으로 규정함을 이미 살펴보았습니다. 이러한 노력을 집회서도 기울였습니다. 하지만, 집회서와 지혜서의 차이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지혜와 율법의 조화’였습니다.
“이 모든 것은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계약의 글이고 야곱의 회중의 상속 재산으로 모세가 우리에게 제정해 준 율법이다.”(집회 24,23).
이처럼 집회서는 유다인의 문화와 종교가 이방 민족의 그것과 만나면서 하느님의 가르침이 잊혀 가고 있음을 지적함과 동시에, 유다 정신의 바탕을 이루고 있는 하느님의 계약, 바로 율법이라는 사실을 언급합니다. 헬레니즘 문화가 인간 이성을 활용한 지혜를 강조하고 그러한 사조가 유행을 타고, 더 가치 있어 보이지만, 하느님의 백성인 유다인은 율법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 강조됩니다.
지혜의 출발점, 그것은 인간의 이성이었습니다. 인간의 사고를 통하여 세상을 바라보는 올바르게 바라보는 힘, 그것이 바로 지혜였습니다. 그런 지혜를 집회서의 저자는 율법과 동일시 합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지혜, 그것이 바로 율법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지혜는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하여 관심을 갖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사건들을 통하여 하느님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참된 지혜라는 사실이 강조됩니다.
그러므로 집회서가 이야기하는 지혜는 하느님 경외를 잊지 않습니다. 하느님을 경외함이 바로 지혜의 시작이고, 완성이며, 동시에 모든 토대입니다(1,11-21; 2,1-18; 10,22; 34,14-20; 40,26-27; 50,27-29). 지혜는 그렇게 하느님 경외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올바른 지혜는 하느님의 계시를 해석하는 원리요 기준이 됩니다. 진정한 지혜. 그것은 유식함을 뽐내는 지식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집회서가 이야기하는 것은 바로 참된 지혜입니다. 그것은 하느님께 있고, 그분의 말씀, 그분의 가르침, 율법에 귀를 기울일 때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지혜입니다. 그러한 가르침을 지니고 살아갔던 인물들이 바로 신앙의 선조들이고, 그러한 이유로 집회서의 마무리는 그 위대한 인물에 대한 칭송으로 이뤄집니다(집회 44-50장).
[2020년 4월 12일 주님 부활 대축일 인천주보 4면, 박형순 바오로 신부(인천가톨릭대학교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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