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또한 댓글의 배경은 아래와 같군요.
사실 저는 1여 년 전에 #5942[2012년 3월 24일]의 질문으로
지금의 이삼용 씨와 같은 질문을 올렸습니다.
그때는 저의 본당 신부님의 강론[2012년 3월 20일]이
잘 이해가 잘 가지 않아서였습니다.
그 때에 저는 질문에 답을 얻질 못했습니다.
왜 그 병자가 ‘유다인들에게 그 치유의 은사인 예수님을 알렸을까?’라고요.
제가 올린 질문을 1년이 지난 즈음 제가 답을 올린 꼴이 되었군요.
이번엔 저는 큰 부담이 없이 그 병자의 ‘알림’이 ‘고자질’로 바로 인식이 되었습니다.
그 때만 해도 전혀 생각지 못한 ‘배은망덕’과 그 ‘밀고’가요.
암튼 성경은 다양한 해석으로 치장됨을 느낍니다.
그 순식간에 다가온 그 이유에 대해서는,
1]그 병자는 예수님을 몰랐다.[5,5]
2]자비의 예수님은 그 오랜 기간 암흑의 세계를 보낸 이에게 의지를 물으셨다.[5,6]
3]그 병자는 그 오랜 기간의 마음의 고통을 이야기한다. 그렇다고 애걸하지는 않는다.[5,7]
4]예수님은 ‘일어나 들것을 들고 가거라.’라고 하셨다. 그가 가고 가지 않고는 그자의
몫이었다.[5,8]
5]유다인들이 안식일의 율법을 어긴 그 병자를 두 번에 걸쳐 꾸짖는다. 그 자는 ‘누가
시켰다.’라고 솔직하게 대답했다.[5,10-13]
6]다시 그 병자와 예수님이 만난다. ‘너는 건강하게 되었다. 더 나쁜 일이 없도록
다시는 죄짓지 마라.’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셨다.[5,14]
7]그 병자는 물러가서 자기를 건강하게 해 준 분이 예수님이라고 일렀다.[5,15]
8]유다인들은 예수님을 안식일 법을 어긴 이로 박해하기 시작하였다.[5,16]
이 내용을 보고 또 이 삼용 님의 질문의 요지를 보고 다시 묵상해 본 결과
‘고자질’쪽으로 제 나름의 방향을 정했습니다.
사실 이삼용님의 의견대로 ‘주석 성경’이나 ‘생활 성서사’ 발행 ‘여정[요한 편]’에는
이 내용에 대한 구체적 설명이 없군요.
다만 ‘여정’에는
- 그 병자는 치유를 받았지만 예수님을 알지 못했고 예수님을 믿게 되지도 않는다.
후에 그를 만나서 그에게 장차 있을 심판을 경고하신다. 죄짓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더욱 흉한 일이 생길지 모른다[14절].
이 말은 그가 마지막 날에 받게 될지도 모를 단죄를 말하고 있다. - 라고 되어 있군요.
결론적으로 이 ‘벳자타 못 가의 병자 치유’에서 그 병자의 ‘알림’을 ‘좋은 의미’냐
‘나쁜 의미’내의 판단은 각자의 것이 될 겁니다.
다만 저는 ‘성경’이 주고자하는 교훈, 즉 나와의 관계 설정입니다.
저는 지금도 1년 전 저의 본당 신부님의 강론이 제게 준엄하게 다가옵니다.
예수님을 고발하여 2번이나 죽이지 말라고.
그분께서는 지금도 재림하실 의향이 있으시지만
우리가 남에게 고발은커녕 우리 스스로가 뭉둥일 들고 죽일 것 같아
지상으로의 재림을 망설이면서 조용히 관망하면서 계시 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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