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을 보면서 느끼는 게 때와 장소, 분위기에 따라 다름을 느낀다는
어느 신부님의 말씀을 기억한다. 정말 그 느낌의 차이를 실감한다.
특히 여유를 가지고 보면 그 감이 배가되는 것 같다.
저는 창세기 1장의 천지 창조에서 아브라함이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아
가나안의 여정에 오를 때 까지를 묵상하고
그 내용을 이곳 ‘우리들의 묵상’에 100회에 걸쳐 게재한 바가 있다.
이번에 2부로 이어서 게재할 계획을 갖고 그 이후를 묵상중이다.
2부는 가나안에서 이집트로, 다시 가나안으로 탈출까지를 묵상해 볼 계획이다.
이 과정에 창세기의 중요 내용을 보면서 이사악이 태어나고
이스마엘이 어디론가 떠나는 내용을 묵상했다.
이스마엘 그의 나이 열네 살이다. 이와 관련된 창세 21장 16절이 정말 맘에 걸렸다.
‘활 한 바탕 거리만큼 걸어가서 아기를 마주하고 주저앉았다.
‘아기가 죽어 가는 꼴을 어찌 보랴!’ 하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이렇게 그는 아기를 마주하고 주저앉아 목 놓아 울었다.’
보면 볼수록 ‘활 한 바탕 거리만큼 걸어가서’가 맘에 걸린다.
'활 한 바탕’이 도대체 뭘 의미할까?
묵상은 여기에 시작하여 이스마엘이 ‘아기’로 호칭이 되고,
심지어는 '덤불 밑으로 내던져 버리고는’라는 표현까지가 하나같이 맘에 걸렸다.
그래서 이곳에 번역상의 오류일 것 같았고 이제는 ‘정오표’로 그 ‘수정 여부’가 있을 것 같아
‘정오표’를 찾아달라고 게시했다.[#7076 참조]
여기에 이복선 님이 #7083의 글로 ‘번역상의 의심부분 이상 없다.’라는 내용이
답변글로 게시되었고
여기에 14절의 ‘하가르’가 ‘어깨에 멘 게 과연 뭘까?’까지 발전되었다. 참 대단한 진전이다.
이번에 저는 이 대목과 관련 주요 내용을 네 개의 성경에 번역된 것을 일괄 볼 기회를 가졌다. 아래 표를 참조해 보길 바란다. 이 내용이 앞으로 어떻게 발전할지는 난 잘 모른다.
그렇지만 아직도 번역이 원본에 너무 충실하다보니
오히려 그 내용의 묵상이 걸림돌이 됨을 느꼈다.
과연 이스마엘을 ‘아기’로의 번역이,
이미 지친 어미가 열네 살 큰 애를 ‘덤불 밑으로 내던져 버리고는’라는 표현,
그리고 ‘활 한 바탕’의 혼돈스런 의미를 지울 수 없다.
이 의심, 아니 혼돈 속에 번역에 종사하는 분들의 노고를 십 중 이해할 것 같다.
암튼 여러 성경의 내용을 볼 수 있어 많은 도움이 된 것 같다.
이번에 제가 가진 세 가지의 이 의심은 이번만은 제 혼자만의 것으로 끝내야 할 것 같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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