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의 토착화가 왜 필요하며 그 근거는 어디에서 찾아볼 수 있는지에 대한 글을 읽고 많은 부분에 걸쳐 수긍이 갔습니다. 하지만 서양에서 발달하여 서양 선교사들에 의해 우리에게 전해진 로마 전례에 이미 깊이 젖어 있는 우리나라에서 토착화 작업을 펼쳐나가려 할 때 많은 어려움이 뒤따르리라고 봅니다. 예상되는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우리 실정에 맞는 전례가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해서는 어떤 식으로 준비해야 될까요?
두 형태의 극단적 태도
토착화 작업을 전개하려 할 때 두 가지 극단적 태도를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토착화란 우리에게 있어 필요없다는 태도입니다. 우리나라가 이미 충분히 서구화되었기 때문에 서양에서 발달한 전례라 하더라도 아무런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데 굳이 새 형태의 전례를 만들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 그들의 주장입니다.
다른 또 하나의 극단적 태도는, 서양 것은 무조건 배척하고 우리 고유의 말과 예식으로 하느님을 예배하자는, 다소 국수주의적 민족주의 냄새를 풍기는 태도입니다. 조금 덜 급진적인 사람들은 서양 전례의 큰 틀은 그대로 놔두면서도 세부적인 데에 있어서는 거의 아무런 비판 없이 우리 전통적 요소들을 받아들이기도 합니다. 언젠가 어느 신부님께서 농민들을 위한 미사를 할 때 빵과 포도주 대신 막걸리와 떡을 사용하고, 성가 대신 민요를 부른 것은 이런 예의 하나일 것입니다.
준비되지 않은 개혁은 실패한다
한 목사님께서 당신이 일하고 있는 교회 건물이 낡아서 교회 지도층 인사들과 협의하여 새 교회를 짓기로 결정하고 성전 설계를 전문가에게 맡겼습니다. 이 일을 맡은 건축가는 우리나라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첨탑이 있는 고딕식 양식 대신 과감하게 노아의 방주를 연상시키는 아주 현대적인 건축을 설계하였습니다.
목사님의 주도로 그 설계를 받아들인 교회 건축위원회는 주일 예배 때 신도들에게 새 성전의 조감도를 보여주면서 교회 신축을 위한 헌금에 동참해 줄 것을 호소하였습니다. 그런데 신도들의 반응은 아주 냉담하였습니다. 그들의 눈에 익은 성전 모습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신도들을 설득해 보아야 소용없음을 깨달은 목사님은 일단 교회 신축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 않고, 대신 새 성전의 조감도를 신도들이 교회에 들어오면 꼭 거치게 되는 게시판에 붙여 두었습니다. 몇 달이 지난 다음 목사님은 설교 시간에 성전 건축을 위한 헌금에 동참할 것을 호소하면서, 새 성전은 게시판에 붙어 있는 조감도와 같은 것임을 밝혔습니다. 이번에는 신도들이 아무런 거부감 없이 그 조감도를 받아들였고 이에 성전을 무사히 지을 수 있었습니다.
같은 설계의 성전에 대해 처음에는 반대하던 신도들이 왜 찬성하게 되었는가 하고 의아해 하는 사람에게 목사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누구나 낯선 것은 싫어하는 법입니다. 새 성전이 현대적인 것이라서 처음엔 거부 반응을 보였지만, 매주일 교회에 들어오고 나가면서 게시판에 붙은 새 성전 조감도를 보게 되니까 나중엔 그 조감도가 낯설지 않게 느껴지게 된 거지요."
같은 말을 우리는 토착화 작업에 대해서도 적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대부분의 신도들은 기존의 로마 전례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새로운 양식의 전례에 대해 본능적으로 저항을 느끼게 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사정을 무시하고 무조건 우리 고유의 것을 전례에 도입할 때 많은 사람들이 이에 반발하게 될 것이고, 그 결과 본래의 좋은 의도 대신 교회 안에 분열과 어색함만을 낳게 되어 실패하게 됩니다.
우리나라 교회에서도 일부 사람들이 전례의 토착화 작업을 시도하였지만 그것이 반대에 부딪히거나 별로 좋은 반응을 얻지 못한 까닭은 아직 이러한 작업의 의미를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감정적으로 거부하였기 때문입니다. 준비되지 않은 개혁, 소수의 선각자에 의해 일방적으로 이루어지는 개혁은 대부분 실패한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입니다.
1단계: 의식(意識)의 토착화
교회 구성원 대다수가 토착화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때는 그 일을 성공적으로 해나가기가 사실상 매우 어렵습니다. 이때문에 전례가 무엇이며, 전례의 토착화는 왜 필요한 지에 대한 교육이 먼저 이루어져야 합니다. 즉, 한국 교회의 구성원 대다수의 의식이 먼저 바뀌지 않는 한 전례의 토착화는 부분적으로만 이루어질 수 있을 뿐, 진정한 의미의 토착화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장에서는 우리 자신이 전례 토착화의 당위성에 대해서 확신을 가져야 한다는 정도로 이야기를 맺을까 합니다.
2단계: 로마 전례를 알자
우리 한국 교회가 로마 교회에 속해 있다고 해서 언제나 로마 전례를 있는 그대로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미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각 민족이 자기네 고유의 문화적 자산에 따라 하느님을 예배할 수 있음을 선언한 바 있습니다. 그렇지만 로마 전례 자체를 무시할 수는 없는 것이, 우리의 토착화 작업을 무(無)에서 시작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현재의 로마 전례도 사실상 2,000년이란 세월을 통해 수많은 변천을 겪어오면서 시대에 맞게 하느님께 예배를 드리고자 노력한 결과입니다. 따라서 로마 교회와 로마 전례의 역사를 제대로 알 때 우리가 우리 문화 자산으로 하느님을 예배하는 과정에 있어 만나게 될 많은 문제점들을 미리 내다보고 그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현재 우리가 지내는 로마 전례를 이루는 각 요소가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게 되면 어떤 부분을 어떻게 우리 식으로 표현할 수 있는지 방향을 잡을 수 있습니다.
로마 전례라 해서 처음부터 같은 모양으로 이루어졌던 것은 아닙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로마 교회의 영향력이 로마뿐 아니라 북유럽에까지 미치게 됨에 따라, 라틴 문화가 다른 문화들과 만남에 따라 로마 전례는 끊임없이 나름대로 토착화 작업을 거쳐 왔습니다. 이때문에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의 전례는 2,000년에 걸쳐 여러 요소들이 혼합된 형태의 것이라 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에 전례 개혁을 통해 순수한 로마 전례에로 복귀하고자 시도하였지만, 그리 쉬운 일은 아니어서 현재의 로마 전례 안에도 여러 문화적 요소들이 많이 들어 있습니다.
이같은 이차적이고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요소들을 제거한 순수한 로마 전례, 파스카 신비를 가장 단순하게 표현한 고전 로마 전례는 우리 토착화 작업을 위한 밑거름으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로마 전례가 북유럽의 여러 문화적 요소들과 결합하기 이전의 형태, 즉 4~8세기의 고전 로마 전례를 제대로 아는 작업을 먼저 진행시켜야 할 것입니다.
3단계: 우리 문화를 알자
궁극적으로 토착화는 우리 문화로 하느님을 찬미하자는 것입니다. 토착화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면서도 그 작업을 시도함에 있어 어려움을 겪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우리 자신이 우리의 문화를 잘 알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현대 사회 안에서 고유 문화는 많은 경우 그 형태를 온전히 유지하지 못하고 있으며, 어떤 경우는 외래 문화의 영향을 받아 본래의 모습을 많이 잃어버려 순수한 우리 문화가 무엇인지 파악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바람직한 토착화 작업을 위해서는 우리 문화에 대한 전문 연구가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비록 그들이 그리스도교 신앙의 입장에 서 있지 않은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아무런 편견 없이 과학적인 자세로 그들의 연구 결과를 수용하여야 합니다. 이렇게 할 때 참된 민족 문화로써 하느님을 찬미하는 소기의 목적을 향해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모든 문화가 그러하듯 우리 문화 안에도 부정적 요소와 긍정적 요소가 섞여 있게 마련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 문화에 대한 철저한 연구를 통해 숨겨진 보물을 발굴, 발전시켜야 할 것이고, 그렇지 못한 것은 다른 문화의 좋은 점으로 보완, 개선한다는 열린 마음으로 토착화 작업에 임해야 할 것입니다.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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