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사도는 이렇게 전한다.
“세상은 지나가고 세상의 욕망도 지나갑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은 영원히 남습니다.”(1요한 2,17)
가진 걸 아무리 움켜쥐어도 죽을 때에는 빈손으로 가지만,
그것을 남에게 내 주어 사랑의 흔적을 남기면
그 이는 영원히 다른 이의 가슴속에 남아 있을 게다.
가진 게 많은 이가 부자가 아니라,
가진 것을 나누어 하늘의 곳간에 덕을 많이 쌓는 이가 진정한 부자이다.
알렉산더 대왕의 유언이다.
“내가 죽게 되면 손을 관 밖으로 꺼내 주시오.
천하를 손에 쥐었던 자도
죽을 때에는 결국 ‘빈손’으로 간다는 걸 보이고자 하는 것이오.”
우리는 평생을 모았던 재물이나 쥐었던 권력을 놓고 간다.
죽을 때에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다는 건 너무도 평범한 진리이다.
허나 많은 이가 이를 잊은 채 산다.
일반적으로 재물은 가질수록 욕심과 걱정이 는다.
이렇게 재물에 대한 탐욕과 집착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걸 막는다.
만족하지 않기에 부족을 느낀다. ‘영적 빈곤’이다.
‘참 많이’ 가졌건만, ‘나무랄 데 없는’ 조건이지만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영혼이 굶주려 있기에. 주님의 힘을 받지 못하면 그런 삶을 계속하다가 죽음을 맞는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부자는 하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려울 것이다.
내가 다시 너희에게 말한다.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
제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몹시 놀라서,
“그렇다면 누가 구원받을 수 있는가?”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눈여겨보며 이르셨다.
“사람에게는 그것이 불가능하지만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마태 19,23-26)
신앙의 해를 보내는 우리는 어떤 삶인지를 돌아봐야 한다.
썩어 없어질 하찮은 재물에 쌓여 ‘영적 빈곤’ 속에서는 주님을 모실 수는 없다.
무소유(無所有)는 가진 게 없는 걸 결코 말하지 않는다.
무소유는 가진 걸 비워 내는 거다.
그리하여 마침내 자기 자신마저도 포기하는 걸 말한다.
덜어 내고 비우면서 주님 뒤를 따른다면,
그분은 당신 은총으로 차고 넘치도록 가득 채워 주실 게다. 이것이 ‘텅 빈 충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