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신약] 성서의 해: 마르코 복음서 (2) 십자가의 복음, 십자가의 메시아 | |||
---|---|---|---|---|
이전글 | 이전 글이 없습니다. | |||
다음글 | [구약] 이사이의 그루터기에 햇순이(이사 11,1) | |||
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20-07-06 | 조회수7,679 | 추천수0 | |
[2020년 사목교서 ‘성서의 해Ⅱ’ 특집] 마르코 복음서 II – 십자가의 복음, 십자가의 메시아
마르코 복음서 저자는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1,1)이라는 문장으로 복음서의 문을 엽니다. 이 첫 문장은 사실상 복음서 전체의 제목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저자는 예수님께서 그리스도(메시아)이시고, 동시에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전하려는 목적으로 이 책을 기록한다고 독자들에게 미리 밝히고 있는 것이죠. 그리고 복음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예수는 그리스도이며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이야기들로 채워집니다.
마르코 복음서의 전반부는(1,1-8,26) 예수님의 신원과 정체성을 알아가기 위한 일련의 긴 여정으로 꾸며지는데, 예수님의 말씀과 행동이 사람들에게 놀라움을 일으키면서 “이분은 누구이실까?” 하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게 합니다: “도대체 이분이 누구시기에 바람과 호수까지 복종하는가?”(4,41); “저 사람이 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지? 저런 지혜를 어디서 받았지?”(6,2).
이러한 여정의 끝에 “베드로의 고백” 이야기가 나옵니다(8,27-30). 총 16장으로 구성된 마르코 복음서의 중앙에 위치하는 이 이야기는 복음서의 전환점 내지는 분수령이라 할 수 있는데요, 예수님께서 처음으로 “사람들이” 그리고 “제자들이” 당신을 누구라고 생각하는지 직접 물어보시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하느님으로부터 파견된 예언자적 성격을 지닌 인물 - “세례자 요한”, “엘리야” 또는 “예언자 가운데 한 분”(8,28) - 정도로 여기는 반면에, 제자들은 - 특히 제자 공동체의 으뜸인 베드로는 - 이렇게 대답합니다: “스승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8,29). 예수님의 권위 있는 가르침과 놀라운 행적들을 늘 곁에서 지켜볼 수 있었던 제자들은 결국 그분이 누구인지 알아보게 됩니다. 그들에게 예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오래 전부터 기다려 온 메시아, 즉 당신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 이 세상에 오신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이는 마르코 저자가 첫머리에 밝힌 “예수 그리스도”(1,1)와 일치하고, 예수님의 신원을 탐색하는 여정은 그렇게 종결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당신에 관하여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엄하게 이르시면서(8,30), 그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씀을 전하십니다.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고,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였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야 한다”(8,31).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한 베드로는 갑작스런 수난 예고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고, 그래서 정면으로 예수님을 반박합니다(8,32). 베드로가 기대하던 메시아의 모습은 왕으로 오시는 분, 승리와 영광의 빛으로 둘러싸인 메시아, 큰 권능과 힘으로 이스라엘의 적들을 물리치시고, 그들의 손아귀에서 당신 백성을 구해내시어 영원한 해방을 주시는 그런 메시아를 기대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와는 전혀 다른 메시아의 모습을 제자들에게 소개하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기대처럼 어떤 강력한 힘과 권능을 통해 “정복함으로써” 세상을 구원하는 메시아가 아니라, 오히려 “정복당함으로써”, 다시 말하면 십자가의 무력함을 통해서 당신 백성을 구원하는 메시아십니다. 그리고 이러한 역설적인 구원 계획은 바로 그분의 “아버지”이신 하느님에게서 비롯됩니다.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8,33). 십자가를 짊어지는 메시아가 사람들 눈에는 어리석음일지라도, 하느님께서는 그 어리석음과 무력함을 통해서 진정한 메시아의 힘과 권능을 드러내고자 하십니다. 백인대장이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시는 예수님을 보면서 “참으로 이 사람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셨다”(15,39) 하고 고백하는 아이러니한 장면은 십자가의 처절한 죽음만이 그분께서 “메시아”이시며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온전하게 드러낼 수 있음을 말해줍니다.
결국 마르코 저자가 우리에게 전하는 예수님의 모습은 수난의 길을 걷는 메시아이자 십자가 위에서 당신 아버지께 절규하는 하느님의 아들이십니다. 하지만 이 수난의 여정은 결코 죽음으로 끝나지 않고 부활을 통해 그 열매를 맺습니다. 예수님 부활로 말미암아 십자가는 더 이상 패배와 치욕의 상징이 아닌 진정한 승리를 담보하는 희망의 상징이 되고, 그를 따르는 모든 이가 반드시 지고 가야 할 구원의 도구가 됩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르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8,34).
[2020년 7월 5일 연중 제14주일(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신심미사) 인천주보 3면, 정천 사도 요한 신부(인천가톨릭대학교 교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