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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약] 흥미진진 성경읽기: 칭찬의 달인 예수님을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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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0-08-10 조회수7,115 추천수1

[양승국 신부의 흥미진진 성경읽기] 칭찬의 달인 예수님을 아십니까

 

 

며칠 전 약속 시간이 촉박해 오랜만에 택시를 탔습니다. 백발이 성성한 기사님이 얼마나 친절한지 깜짝 놀랐습니다. 뒷좌석에 앉자마자 하시는 말씀. “길가에 서 계실 때부터 느꼈는데, 손님 관상이 참 좋습니다. 귀도 큼직하고 스님이 되셨으면 아마 큰 스님이 되셨을 상입니다. 제가 관상을 좀 보거든요.” 기사님의 갑작스런 덕담에 당황스럽고 몸 둘 바를 몰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기사님! 말씀은 고맙습니다만, 솔직히 저는 세상 작고 쪼잔한 사람입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기사님의 덕담에 우울했던 제 마음이 순식간에 환해졌습니다. 서로 덕담을 주고받다가 어느덧 택시는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미터기를 보니 요금이 9천 원이었습니다. 그토록 좋은 덕담을 폭포수처럼 들어놓고 도저히 그냥 내릴 수가 없더군요. 천 원을 더 얹어 만 원을 드렸습니다. 우리는 마치 오랜 친구처럼 큰 목소리로 작별인사를 나누며 그렇게 헤어졌습니다. 

 

보십시오. 기사님께서 제게 덕담을 ‘탁!’ 던지시니, 저 역시 그에 호응하며 ‘거금’ 천 원을 ‘탁!’ 내놓지 않았습니까? 덕담은 덕담을, 칭찬은 칭찬을, 격려는 격려를 낳습니다. 칭찬과 격려 대신 원색적인 비난과 폄하가 난무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SNS 시대에 악성댓글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며 그 후폭풍 역시 만만치 않습니다.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언어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절실한 시대입니다. 

 

아이 어른을 막론하고 누구나 칭찬받는 것을 좋아합니다. 연세 많은 어르신들은 산전수전 다 겪으셨으니, 칭찬에서 많이들 자유로워지셨겠지 생각했는데, 그것도 아니었습니다. 당신들 지난 삶 안에 펼쳐졌던 산업화 역군으로서의 기적같은 스토리, 줄거리를 다 외울 만큼 들은 월남전 무용담에 맞장구쳐드리고, 칭찬과 감사를 드리면 눈물까지 글썽이며 기뻐하십니다.

 

만성 적자에 시달리는 회사를 위해 큰 프로젝트를 성사시켜, 흑자로 되돌린 한 회사원이 있었습니다. 회사 CEO는 너무 고마운 나머지 전체 사원들 앞에서 그 회사원을 극찬했습니다. 큰 칭찬을 받은 그의 삶은, 그 순간을 기점으로 180도 바뀌었답니다. 

 

다음날부터 그는 알람 소리가 울리지도 않았는데 저절로 눈이 떠지더랍니다. ‘빨리 회사에 가서 열심히 일해야지.’ 하는 생각으로 조바심까지 들더랍니다. 멀리 회사 건물이 눈앞에 들어오는 순간, 저절로 마음이 설레고 가슴이 뛰더랍니다. 제대로 된 칭찬 한마디의 효과가 얼마나 큰지 잘 보여주는 좋은 예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이나 백성을 가르치실 때 칭찬이란 도구를 적절히 사용하셨습니다. 그런 흔적이 복음서 몇 군데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자문을 구하러 온 대견스런 율법학자를 크게 칭찬하십니다. “너는 하느님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마르 12,34) 열심히 기도하며 하느님 나라를 고대하던 나타나엘을 향한 칭찬도 돋보입니다.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요한 1,47) 

 

그러나 칭찬 중에서도 가장 독보적인 예는 종의 치유를 청하는 따뜻한 마음의 소유자 백인대장을 향한 칭찬일 것입니다. “나는 이스라엘의 그 누구에게서도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마태 8,10) 

 

이스라엘은 신앙의 민족이었습니다. 그들에게서 신앙은 삶의 중심이요 전부, 존재 이유요 최종 목표였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점차 초심을 잃어버렸습니다. 율법과 성전, 잡다한 예식이 지나치게 강조되면서, 신앙의 본질인 하느님과 그분의 말씀, 사랑의 실천은 점차 뒷전으로 밀려나기 시작했습니다. 사제들과 레위인들에게는 신앙이 먹고사는 수단, 생존 방식으로 전락했습니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에게 신앙은 오만과 논쟁의 구실이 되고 말았습니다. 안타깝게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집단적 불신앙과 완고함 속으로 깊이 빠져들고 말았습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백인대장이 카파르나움에 머물고 계시던 예수님을 만나러옵니다. 그는 헤로데 안티파스 직속 이방인 장교였습니다. 말 그대로 그는 백명의 군인들을 부하로 두고 있는 장교였습니다. 오늘날로 보면 중대장 계급 정도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백인대장이 예수님께 건네는 한마디 한마디 말을 통해 그가 얼마나 성숙하고 인간미 넘치며, 동시에 참된 신앙인인가를 즉시 알 수 있습니다. 첫마디부터 예수님 마음을 움직이게 했습니다. “주님, 제 종이 중풍으로 집에 드러누워 있는데 몹시 괴로워하고 있습니다.”(마태 8,6)

 

백인대장은 예수님을 ‘주님’이라 부릅니다. 이를 통해 그가 지닌 신앙의 깊이를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이미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권능을 지니신 분으로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뿐 아닙니다. 그는 자신의 병이나, 아들딸의 치유를 청하는 것이 아니라 종의 치유를 청하고 있습니다. 점점 백인대장이 마음에 쏙 드셨던 예수님께서는 즉시 그의 청을 수락하십니다. “내가 가서 그를 고쳐 주마.”(마태 8,7) 

 

그러나 백인대장은 뜻밖의 말씀을 예수님께 건넵니다. “주님, 저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그저 한 말씀만 해 주십시오. 그러면 제 종이 나을 것입니다.”(마태 8,8)

 

백인대장의 말은 예수님을 무시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당시 율법 규정에 따르면 유다인들은 이방인의 집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유다 사람에게는 다른 민족 사람과 어울리거나 찾아가는 일이 불법임을 여러분도 알고 있습니다.”(사도 10,28) 이렇게 백인대장은 말 한마디, 행동 하나, 모든 생각이 성숙하고 신중했으며 배려심으로 가득했습니다. 거기다 주님을 향한 깊은 신앙으로 넘쳐났으니, 예수님 마음에 쏙 들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은 다음과 같은 극찬으로 당신의 마음을 표현하시며, 그에 대한 평가를 해주십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이스라엘의 그 누구에게서도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마태 8,10) 평소 백인대장의 겸손하고 따뜻한 성품으로 미루어보아 예수님의 칭찬 앞에 결코 우쭐대거나 자만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칭찬은 그를 크게 한 걸음 더 나아가게 하는 자극제가 되었음이 분명합니다. 더 깊은 신앙의 소유자, 더 관대하고 자상한 장교로 살아갔을 것이 확실합니다. 

 

미국 현대문학의 효시이자 대부인 동시에 탁월한 정치사회비평가였던 마크 트웨인(1835-1910)은 칭찬의 탁월한 효과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좋은 칭찬 한마디에 나는 두 달을 기쁘게 살 수 있습니다.” 칭찬이 진실한 마음에서 우러나올 때 그 칭찬은 상대방에게 가장 아름다운 선물이 될 것입니다. 칭찬은 받는 사람의 마음을 넓혀주고, 마음속에서 새로운 불꽃이 솟아오르게 하며, 열정과 기쁨의 풍토를 마련해줍니다.

 

* 양승국 - 살레시오회 소속 수도사제. 저서로 『축복의 달인』 『친절한 기도레슨』 『성모님과 함께라면 실패는 없다』 『성모님을 사랑한 성인들』 등이 있다.

 

[생활성서, 2020년 8월호, 양승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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