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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결정론/ 운명론...이제는 바로 알아야... 카테고리 |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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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정임 쪽지 캡슐 작성일2013-12-02 조회수1,298 추천수1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결정론 ◆   
한자 決定論
라틴어 Determinismus
영어 determinism
독일어 Determinismus
출처 : [가톨릭대사전]

   모든 사건들은 인과율(因果律)이라는 빈틈없는 법칙에 예속되어 있다는 것을 주장하는 일반적인 철학적 명제다. 인간의 이른바 자유로운 행위를, 인과율의 절대적인 적용을 기초로 삼아, 행위자에게 비의존적인 외면적 내면적 요인의 필연적인 결과로 보는 입장의 주장이다. 결정론에 따르면, 주어진 어떤 특정 조건들의 군(群) 아래에서는 오직 한 가지의 결과만이 가능하다. 이 명제는 어떤 자유의지의 개념도 배제한다. 종교사적으로 볼 때, 결정론은 큰 역할을 해 왔다. 결정론은 한편에 있어서, 운명론적인 이슬람교에서처럼, 종교의 윤리적인 해석을 결정하였고, 다른 한편에서, 신적인 섭리인간적인 자유에 관한 문제의 근본적 해명에 대한 자극을 주어 왔다. 성 바울로에서 시작되어, 아우구스티노를 거쳐 스콜라학에 이르는 그리스도교 신학에 있어서도 매한가지였다. 그리스도교 신학은, 트리엔트 공의회(The Council of Trient) 이후의 시대에, 이 결정론 문제의 해결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몇 개의 학파로 갈라졌으며, 이단설(異端說)의 기원에 있어서도 문제를 일으키는 촉매가 되었다.

   인간의 각 개인의 자유의지적인 결단을 긍정하지 않고, 따라서 인간의 책임성이나 공로와 죄과를 부정하는 결정론은, 그리스도교 윤리 뿐 만 아니라, 일반 사회윤리에도 배치되는 것이다. 종교적인 사고를 빠뜨리고 예사로이 넘어간다는 점에서 이 결정론은 근대철학의 지배적인 견해이기도 하다. 결정론에는 다음 다섯 가지 기본적인 연구법이 있다.

   ① 물리학적 결정론 : 인간까지 포함한 자연 내의 모든 것들은 침해될 수 없고 변함이 없는 자연법들에 따라서 행동한다는 주장. 홉스(Thomas Hobbes, 1588~1679)가 이 철학을 주창하였다. ② 심리학적 결정론 : 모든 인간의 행위는 우연한 요소들에 의하여, 즉 행위자의 선행적 개인적인 발전과 아울러 행위에 선행하는 관념 및 동기와의 강제적인 작용에 의하여 추진된다는 주장. 스키너(B.F. Skinner)가 이러한 입장에 대한 최대의 대변자이다. ③ 논리학적 결정론 : 인간들의 마음들이란 마치 기다란 두 개의 토막나무 틈에 가로 구멍을 파서 그 구멍 안에 죄인의 두 발목을 넣고 자물쇠로 채우던 형구(形具)인 차꼬[着錮]로 채운 것처럼 고정된 것이어서, 마음에 의하여 아무 것도 변경시킬 수 없다는 주장. 이는 숙명론(宿命論)과 동일하다. ④ 윤리학적 결정론 : 지식이 선택을 좌우한다는 주장.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 선을 알고 있다면, 그는 자동적으로 선을 따르게 된다는 입장이다. ⑤ 신학적 결정론 : 우주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은 절대적으로 하느님께 의존되어 있다는 주장. 이 설에 따르면, 어떤 사람이 만물은 선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야말로 하느님의 절대적인 신성이 그에게 그런 마음을 주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하느님이 전지전능하다는 이 결정론으로부터 선지(先知)와 예정에 대한 관념들이 생겨났다. 선지와 예정을 주장하는 사람들에 의하면, 하느님은 모든 것을 미리 알고 목적을 세우며, 자신의 영원하고 불변하며 착오가 없는 의지에 따라 모든 것을 행한다고 본다. 이런 입장은 루터나 칼빈의 신학에 나타나고 있다.

   [참고문헌] J. Lindworsky, Der Wille, Aufl. 2, 1923; Willensschule, Aufl. 12, 1927 / Bostroem, Storungen des Willens(Bumke, Handbuch der Geisteskrankheiten, 1928중) / Jules Payot, L''education de la volonte, Paris 1975 / J.D. Douglas, ed., The New International Dictionary of the Christian Church, Grand Rapids: Zondervan Publishing House, 1974.

 

운명론 ◆   
한자 運命論
영어 fatalism
독일어 Fatalismus
프랑스어 fatalisme
출처 : [가톨릭대사전]

   모든 자연현상이나 사람의 일은 선천적으로 정해져 있어서, 결코 사람의 힘으로는 변경 못 시킨다는 체념관(諦念觀)을 말하며, 다른 말로 숙명론(宿命論)이라고도 한다. 이러한 운명론을 믿는 것은, 사람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도 없는 절대적인 운명의 힘이며, 의지자유라든지 섭리(攝理, providence)까지도 부정한다. 운명론이 나타난 것은, 그리스 및 게르만의 이교상에서 그 교세의 몰락현상으로서였는데. 아라비아에선 ‘키스메트’(kismet)라고 불려 이슬람교의 근본 교리의 하나로 형성되었다. 철학적으로 볼 때는, 운명론은 스토아파를 일단 거친 뒤 니체(Friedrich Nietzsche, 1844~1900)의 ‘영원회귀’(永遠回歸, ewige Wiedderkunft)에 의하여 그 기초가 다져졌다.

   고대 그리스 사람은, 인간이나 신들이나 다같이 ‘운명’을 뜻하는 헤이마르메네(Eimarmene), 아이사(aisa), 모이라(moira)라는 것들의 최고의 강제력 아래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이보다 좀 더 경박한 생각에서, 그 힘을 튜케(tuke)라 이름 붙여 눈가리개를 하고서 재화(財貨)를 나누어 주는 여신(女神)으로 해석하였다, 이 모이라와 튜케에 대응되는 로마 사람들의 말은 ‘fatum’[신생아에 대한 신탁(神託)]과 ‘fortuna’[행복의 여신]이다. 북 유럽의 여러 민족도 그들의 어휘 속에, 그들의 조상이 남긴 운명론에 관한 기억을 보존하고 있는 낱말들이 있다. 즉 고대 게르만 민족의 말에는 ‘우를라크’(Urlag) 즉 근원적인 결정, ‘메토드’(Metod) 및 ‘우르드르’(Urdr) 즉 규정하여 재판하는 힘 등 숙명에 관련된 것들이 있다.

   사건의 인과적인 관련이 명료하지 않는 한, 미지의 친화적(親和的)인 힘 혹은 적대적인 힘에 대한 신앙이 활발해진다. 이러한 힘은 대개 운명의 여신, 모신(母神), 마녀(魔女), 별의 신 따위로 생각되었다. 그러나 이성강화됨에 따라서 운명론은 후퇴하였지만, 인간의 생각이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이 명백히 되었을 때는, 다시 숙명 또는 운명을 믿는 경향이 나타났다. 이리하여 숙명 또는 운명이 차차 변질하여 웅대하면서 굉장한 초인격적인 세계 법칙으로 화할 수도 있다. 원시적인 종교에서는, 운명의 이념이 수많은 조짐 또는 형태로 변화하였다 그러나 숙명이나 운명의 신앙은, 신이 이성 있는 성스러운 인격으로서 인정되고, 신이 절대로 반항할 수 없는 지배력을 소유할 때만이 실제로 극복 가능한 것이다.

   이상을 요약하면, 운명론은 고대에 있어서 지배적이었다. 사람의 화복(禍福), 수명, 생사 문제가 모두 한 명의 악신(惡神)의 손아귀에 좌우된다고 생각하였던 바빌론의 종교는 물론이요, 인간 세계에는 자연의 회귀현상에서 완전히 나타난다는 이법(理法)이 불규칙하고 불완전한 모양으로 밖에는 나타나지 못하기 때문에, 세계는 쇠퇴, 파멸로 기울어지게 마련이라고 본 그리스 사람의 역사관도, 일종의 운명론이었다. 중국의 노장사상(老莊思想)에서의 영원한 우주적인 이치 즉 ‘도’(道)에 의한 친자의 임명 또는 혁명의 천명(天命)사상이나, 불교의 ‘카르마’(Karma, 業)에 의한 인과응보의 세계나. 혹은 인도의 ‘바라문’(婆羅門, Brahmana)의 실아체험(實我體驗), 바라문의 입김에 따라 세계가 탄생하며 삼켜지는 커다란 우주시간 물결 사이에 네 개의 시대가 경과하는 데, 이 경우 최후의 것은 악화(惡化)의 힘으로서의 ‘시간’, ‘때’(Kala)에 의하여 파멸, 즉 세계 연소로 정해지며, 개선이나 구제의 방도가 없다고 하는 사상도 운명론의 하나로 볼 수 있다. 이슬람교의 ‘알라’(Allah)신앙도 일종의 결정론(determinism)이나, ‘코란’에서의 제일의적인 의미 부여가 신 중심적이라는 점에서는 결코 운명론적은 아니다. 또한 칼빈주의(Calvinism)의 예정설(豫定說, predestination)도 종교적인 결정설로 보이나, 그것은 자유로운 은혜의 선행규정 아래에서의 복종을 결단하도록 촉구하며, 자유로운 자발적인 책임응답을 일깨우도록 하므로, 일반적인 운명론을 뛰어 넘고 있다.

   근대적인 형태로서는 1차 세계대전 뒤에 나온 슈펭글러(Oswald Spengler, 1880~1936)의 ≪서양의 몰락≫(Der Untergang des Abendlandes, Umrisse einer Morpologie der Weltgeschichte, 1918~1922)에 있어서의 문명의 유기체적인 숙명론이나, 부르크하르트(Jacob Burckhardt, 1818~1897)의 문명수기, 그 병리학적인 진단도, 운명론의 범주에 든다고 할 수 있다. 어쨌든 운명론의 문제는 의지자유, 응답적인 결단을 눌러 죽였느냐 아니냐의 여부에 달려 있다. 그리스도교하느님으로부터 독립한 운명이나 숙명 따위를 인정하지 않고, 전지전능하게 자비적으로 세계를 주재하며, 인간자유행동이라는 것을 자신의 영원한 결의 가운데 끌어들인 가장 높은 자리의 오직 한 분 하느님섭리에 대하여 가르친다. 성서 속에는 운명 외 신앙에 언급하는 구절이 매우 드물다.

   운명이란, 결국 인간의 삶과 그 환경세계가 자연 필연이든가 아니면 역사 필연에 의하여 결정되어 있다고 믿는 사상이다.

   [참고문헌] H. von Arnim, Die stoische Lehre von Fatum und Willensfreiheit, Vienna 1905 / E. Dennert, Naturgesetz, Zufalll, Vorsehung, 1906 / A. Festugiere, L'Ideal religieux des Grecs et l'Evangile, Paris 1932 / W.C. Greene, Maira: Fate, Good and Evil in Greek Thought, Cambridge, Mass. 1944 / D. Amand de Mendieta, Fatalisme et liberte dans l'antiquite grecque, Louvain 1945 / J. Konard, Schicksal und Gott. Untersuchungen zur Philosophie und Theologie der Schicksalserfahrung, 1947 / E. Stakemeier, Uber Schicksal und Vorsehung, Luzern 1949 / カトリツク大辭典 III, 東京 富山房, 5刷, 1954 / G. Peligersdorffer, Fatum und Fortuna, Literaturwissenschaftliches Jahrbuch, NF 2, 1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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