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이사 6,8-12 말씀에 대한 이해/유다의 슬픈 진실 | 카테고리 | 성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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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정임 | 작성일2014-01-03 | 조회수1,040 | 추천수1 | 신고 |
(십자성호를 그으며)
이사 6,9-12에 대한 이해/유다의 슬픈 진실
그때에 나는 이렇게 말씀하시는 주님의 소리를 들었다. "내가 누구를 보낼까?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가리오?" "제가 있지 않습니까? 저를 보내십시오."하고 내가 아뢰었더니 그분께서 말씀하셨다. "너는 가서 저 백성에게 말하여라. '너희는 듣고 또 들어라. 그러나 깨닫지 마라. 너희는 보도 또 보아라. 그러나 깨치지는 마라.' 너는 저 백성의 마음을 무디게 하고 16) 그 귀를 어둡게17) 하며 그 눈을 들어붙게 하여라.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서는 돌아와 치유되는 일이 없게 하여라." 18) 그래서 내가 아뢰었다. "주님 언제까지입니까?" 그분께서 말씀하셨다. "성읍들이 주민 없이 황폐하게 되고 집집마다 사람이 없으며 경작지도 황무지로 황폐해질 때까지다. 주님이 사람들을 멀리 쫓아내 이 땅에는 황량함이 그득하리라. 아직 그곳에 십분의 일이 남아 있다 하여도 그들마저 다시 띁어 먹히리라. 향엽나무와 참나무가 잘릴 때 거기에 남는 그루터기와 같으리라. 그 그루터기는 거룩한 씨앗이다."
주석성경 각주 발췌
16) 직역: " ... ... 마음을 기름지게 하고." 마음, 곧 심장에 기름기가 너무 끼어 둔해지고 결국 움직임을 멈춘다는 것이다. 이사야는 반항적이며(1,2-5.19-20; 3,8; 9,8-0; 30,1) 알아들으려 하지 않는 (특히 30,9-11 참조) 청중들에게 메세지를 선포한다.
예언자의 선포가 백성의 마음을 무디게 한 것은 이 때문이며(29,9-12), 예언자는 아하즈 임금의 일에서도 이러한 경험을 분명히 하게 된다(7,2-12-13; 8,6.14-15). 이런 소명을 받은 것은 이사야만이 아니다(예레 1,10; 에제 2,3-10; 3,4 등 참조).
17) 직역: "무겁게"
18) "마음으로 깨닫고서는 다시 치유되는 ... ... " 으로 옮기기도 하지만, 이 경우 '다시 치유됨'이 어떤 것을 뜻하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반면에 '돌아옴'곧 회개는 듣고 보고 깨달음의 정상적인 결과이다. 6,9-10은 신약 성경에서도 중요한 구실을 한다(마태 13,13-15; 마르 4,12; 루카 8,9; 요한 12,40; 사도 28,25-27 참조.
마음이 무디고, 귀는 어둡고, 눈은 들어붙어 있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느님께서는 누군가를 보내시려고 하신다. 누구를 보낼까? 왜 이렇게 누구를 보낼까? 하고 고민하셔야 했을까? 참으로 대책(?)이 스지 않는 백성이기에 고민하셨을 것이다. 그들을 치유해 주시고 싶으신데 ...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를 보내 일을 하셔야 하기에 고민하시고 계시다.
그때에 용감한 이사야가 손을 들고 나선다. "제가 있지 않습니까? 저를 보내십시오."
이렇게 용감하게 나서는 이사야 예언자에게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의 영적 상태가 어떤지 알려 주시는 것이다. 야, 너 자신 있다고? 쟤네들이 어떤 상태일 줄로 알기나 해? 차라리 듣고 또 들어도 깨닫지 말라고 해. 보고 또 보아도 깨치지 말라고 해. 걔네들은 마음이 무디고 귀는 어둡고 눈을 들어붙어서 네가 무슨 말을 해도 마음으로 깨닫고서 돌아와 치유되는 일이 없을 것이야.
그들의 마음이 이토록 완고하다는 것을 말씀해 주시는 것으로 이해가 됩니다. 그러자 이사야 예언자가 언제까지 그들의 상태가 그렇게 되겠느냐고 묻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성읍들이 주민 없이 황폐하게 되고 집집마다 사람이 없으며 경작지도 황무지로 황폐해질 때까지다."
완전히 이 세상살이에서 망하고 나서야 정신을 차릴지도 모른다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이사야 예언자가 예언의 말씀을 전하나 그들의 마음은 더욱 완고해집니다. 결국 어땠습니까? 바빌론으로 유배를 갔지 않는지요? 결국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의 상황도 이와 같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지 않다가 이 세상 삶을 마감하게 되고, 그로 인해 멸망하게 된다면 어떻게 되는가?
이스라엘 백성의 그토록 기가막힌 상황에서도 누군가를 보내 그들을 회개시킬 계획을 하시면서 고민하시는 하느님, 그리고 그 말씀을 선포한 예언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아서지 않은 이스라엘. 그렇다면 이스라엘이 유배를 간 것은 누구의 책임이겠습니까?
예수님께서도 이사야 예언자의 그 시대 사람들의 영적 상태 버금가는 상황의 백성들 안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뜻을 선포하셨습니다. 유다에게도 직접 나는 네가 하려고 하는 일을 이미 알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다는 예수님 앞에 무릎을 굻지 않았습니다. 유다 앞에 무릎을 굻은 것은 예수님이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다의 발을 씻어주셨습니다. 끝까지 유다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래도 유다는 돌아서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유다의 슬픈 진실이 아닐까요?
만약 내 자녀 중에서 나를 고발해서 내가 곧 죽을 상황에 놓인다는 것을 안다면 우리는 예수님처럼 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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