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 가톨릭 신자의 최소한의 약속 | 카테고리 | 성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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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윤식 | 작성일2014-01-05 | 조회수1,958 | 추천수0 | 신고 |
(십자성호를 그으며)
이 글은 누구를 상대로 꼭 꼬집는 게 아닌 우리 모두가 한번 생각해보고자 함이니 오해 없으시길 먼저 당부를 드립니다. 질문서이자 답변 성인 글은 아니지만 이곳 묻고 답하기에만 언급코자 함은 자유 게시판, 묵상 글 등에 게시하기엔 너무나 두렵기에 그렇습니다.
가톨릭은 보편 종교라 합디다. 그래서 최소한의 약속을 전제로 교리가 있고, 그걸 받은 그 속에서 신자로 탄생한다. 그 신자 된 이가 믿음의 자로 더 성숙하고자 참 신앙생활을 하고, 그게 자신의 위안과 세상의 평화를 추구하면서 하느님 영광 드러냄이 우리의 생활상일 게다. 이 틀 속에서 가톨릭의 최소한의 약속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 原罪 있는 이와 원죄 없는 분 우리 모두는 원죄 있는 이다. 아담과 하와의 후예인 우리는 다 원죄를 지녔지만 지금껏 단 한 분 예외는 성모님이시다. 이것은 믿을 교의로 설정된 교리이다. 그리고 죄를 모르시는 분의 어머니인 성모님에게 반드시 적용될 말이다. ‘원죄 없이 잉태되신 마리아’, 어쩜 이 분께 꼭 적합한 칭호가 아닐까? 따라서 原罪 없는 분은 오직 예수님과 성모님뿐이시다. 이분들께 원죄를 들먹이는 건 죄 짓는 거다. 허기야 죄 있는 우리가 한 번 더 죄 짓기로 생각하면 그만일 테지만 그래도 이분들을 원죄와 단 1%라도 결부 짓는 건 너무 지나친 감이 든다.
◆ ‘예수, 성모’란 말은 없다. 오직 ‘예수님, 성모님’ 호칭뿐이다. 우리 각자를 그냥 ‘아무개’라고 불러야 할까? 아니면 ‘아무개 님’이라고 불러야 할까? 아무렴 후자일 게다. 그리 불러야하고, 불리어 져야 할 게다. 그게 예의이다. ‘예수’는 이름이다. ‘성자’의 이름으로 가브리엘 천사를 통해 하느님이 직접 작명하신 존함이다. 이 이름, 아니 ‘존함’이라하기에도 두려운 이 분을 그냥 존칭도 없이 ‘예수’라고 막 불러야만 할까?
‘성모’는 더 그렇다. 이어 쓰는 특별 용도를 제외하고는 거의 대부분 ‘성모’는 지위[직책]를 나타내기에, ‘성모님’으로 불러야 한다. 하찮은 우리 각자를 ‘형제님, 자매님, 형제자매님’ 등으로 호칭하면서 어찌 감히 ‘성모’라 할 수가 있는가? 오직 ‘성모님’ 뿐이다. 이건 가톨릭 신자의 최소한의 기본 도리일 게다.
최신 성경, 교리서, 여타 발간물 등에 성모, 예수라는 ‘말’은 아예 없다. 다 ‘예수님’ 성모님‘이다. 만약 이걸 지키지 않는 이가 있다면 그는 스스로 신자 아님을 나타낼 게다. 여기엔 그 어느 누구도 예외는 없다. 교황님에게도 반드시 적용되리라.
◆ 예수님과 성모님께 '새로운 별명'이 필요나 할까? ‘예외 없는 법칙은 없다.’라는 말이 있더라. 그리고 꼭 예를 들어 바오로 사도가, 어느 주교님이 예외적으로 사용했다 치자. 그걸 반박하거나 부정할 이유는 없다. 그 나름의 이유가 있을 테니까.
그렇지만 원죄 없으신 분들을 원죄의 원흉인 ‘아담과 하와’와 어찌 비교할 수가! 예수님을 ‘새 아담, 둘째 아담’ 등으로 부르는 건 좀 그렇다. 예수님은 하느님이시다. 아담을 창조하신 분을 그분 창조물 아담과 동격으로 어찌 호칭할 수가 있을까? 아무리 그 좋은 형용사를 갖다 대어도 그건 좀 그렇다. 새 아담이, 둘째 아담이 어떻게 되어서 원죄가 없어져 원죄 없는 분과 동격의 비교가 될까? 이건 그분 ‘모독 죄’에 준할 수도 있지 않을까?
성모님도 그렇다. 뱀의 농간에 놀아난 하와가 아무리 회개하고 그 잘난 화장을 잘 해서 ‘새’, ‘둘째’라는 용어를 ‘앞뒤’에 부친다 해서 ‘성모님’과 어찌 동급의 비교 대상이 될까?
이건 결코 보편성인 논리가 아닌 것 같다. 꼭 특수한 경우에 특수한 예외로는 인정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보편적이라기엔 좀 그런 것 같다. 꼭 ‘그렇다.’라는 건 아니지만 생각해 볼 수가 있을 것 같기에 제언해 보는 바이니 굳이 오해는 말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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