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원(罪源, capital sins)의 하나인데, 한국 천주교회 용어로는 죄원을 ‘칠죄종’(七罪宗)이라 지칭하여 본죄(本罪) 즉 우리 자신이 지은 죄의 일곱 가지 근원을 가리키며, ‘질투’도 그 중의 하나이다. 다른 사람의 우수함, 행운, 성공에 대해 슬퍼하거나 불만을 느끼는 ‘이웃사랑’에 대한 배반죄이다. 다른 사람이 갖고 있는 것은 자신에게서 빼앗아간 것이라고 보든지, 어떤 부정이 저질러진 것이라고 느끼든지 하는 것을 포함하고 있다. 질투에 있어 기본적인 것은, 무언가 자신에게서 빼앗아갔다는 느낌이다. 따라서, 질투는 단순히 타인이 재능이나 재산을 소유하고 있음을 슬퍼하는 것만이 아니고, 확실히 자기가 타인과 동일하게 되고자 하거나, 타인을 앞지르려고 하는 야심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타인의 성공이 자기에게 재난을 초래하는 경우는 실지로 있을 수 있는 일이므로, 타인의 행복을 슬퍼하는 일이 모두 죄스러운 질투가 된다고는 볼 수 없다. 다만 이기심과 냉혹에서 빚어지는 슬픔이 죄악이다(1고린 10:24, 13:4-6, 갈라 15:26, 1베드 2:1). 다른 사람을 앞지르려고 하는 야심은 칭찬하여 마땅한 경쟁심(emulation)이다.
질투의 어원은 라틴어 ‘invidia’ 또는 ‘invidere’이며, 그 뜻은 ‘곁눈질로 보다’ 또는 ‘의심쩍은 눈으로 보다’이다. 악마의 질투에 의해서 이 세상에 죄와 죽음이 왔고, 질투로부터 최초의 살해가 시작되었다. 즉 그리스도 유태인에 의하여 살해된 것이다(마태 27:18). 질투는 파괴하는 한에 있어서, 인간의 이기심의 가장 비열한 형식이다. 질투가 애덕(愛德, charity)에 반하는 죄이며, 그 자체가 중죄이지만, 질투의 기본에 완전히 동의했느냐의 여부, 또는 질투의 대상의 대소에 따라서 경중의 차가 있다. 가장 무거운 대죄(大罪)는 타인이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초자연의 선물, 곧 완덕(完德)을 슬퍼하는 일이다. 사실상 그다지 중대하지 않은 선(善)에 대한 질투는 단순한 소죄(小罪)에 불과하다. 부도덕한 또는 부정한 계획과 희망이 실패함을 기뻐하는 것은 죄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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