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 제자들의 부르심의 차이에 대해서 | 카테고리 | 성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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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윤식 | 작성일2014-02-01 | 조회수1,820 | 추천수1 | 신고 |
(십자성호를 그으며)
질문1) 1번항과 2번항은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안드레아를 처음 만나는 장면인데 상황이 다른것 같읍니다. 보총 설명을 해주십시오.
예, 많이 다릅니다. 그것은 다르게 보아서 다른 것 같군요. 김진태 님의 의견에 따르면 달리 보이는 게 정상입니다. 그렇지만 복음을 보는 관점을 달리 보시면 다를 게 없다고 여겨집니다. 결론적으로 이렇게 깊은 묵상거리를 주신 좋은 질문에 대해 먼저 감사를 드리면서 저의 의견을 피력하겠습니다.
요한과 마태오 복음은 최대한 복음사가가 직접 보고 체험한 것을 기록했다고 생각하셔야 합니다. 요한복음은 창세기의 서론과 세례자 요한의 증언 후의 일 주일간의 행적(요한 1,19-2,12)으로 시작합니다. 예수님의 사랑받던 제자는 세례자 요한의 제자로 보입니다.(요한 1,35) 이는 요한의 증언 후 사흘 째 되는 날입니다. 요한 사도와 시몬의 동생은 예수님을 따라갑니다.
소위 세례자 요한에서 예수님 쪽으로 신구약의 교체 시기입니다. 소제목이 ‘첫 제자들’(요한 1,35-42)이지 상세 내용으로는 첫 제자로의 정식으로 공인되는 것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시점으로는 35절의 이튿날 행적은 제자 두 사람이 예수님을 따라가 그날 하루를 묵은 것이 전부입니다.(40절 까지 참조). 이는 정확한 내용입니다. 때가 오후 네 시쯤이라는 정확한 표현을 보면 사도 요한의 기억이 정확하다고 우리는 짐작할 수 있습니다. 다만 여기에서 전제가 되어야 할 것은 35절의 제자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시몬의 동생 안드레아(40절 참조)와 또 한 사람은 사도 요한입니다. 이는 여러 문헌에서 또 한 사람이 사도 요한일 거라고 추측을 하는 자료가 참 많은 것을 이해하셔야 합니다.
문제는 이 다른 제자가 사도 요한의 여부는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 날의 행적을 이해하기 위해서 제자 두 사람의 인적 사항을 살펴 본 겁니다. 이는 제목이 첫 제자들이지 공관 복음에서의 만남(예; 마르 1,16-20)과 비교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시 요한복음 쪽을 봅시다. 이어지는 41절과 42절은 35절의 이튿날과 그 다음 날의 행적과는 결부시킬 내용이 아닙니다. 이것은 복음사가인 사도 요한의 기억을 되살려 기록한 것입니다. ‘필립보와 나타니엘을 부르시다(43-51절)’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네 사람이 ‘예수님을 따랐다.’라는 말은 없습니다. 다만 요한복음 사가의 특수한 기록 방식에 따라 ‘카나의 혼인 잔치’까지 7일의 행적을 기록한 것입니다. 복음사가는 예수님이 제자들의 뽑음이 성경이 시작되는 그 부분에서는 그리 중요한 사항이 아니었을 겁니다. 그는 세례자 요한으로부터 예수님으로 이전되는 그 내용을 일주일이라는 특수 기간을 정해 나열해 본 것에 불과합니다.
그렇지만 공관 복음에서는 예수님이 ‘네 사람을 제자로 부르신 행적(예; 마르 1,16-20)’은 참조 문헌을 참조하여 기록한 것입니다. 네 사람은 예수님의 부르심에 모든 것을 버리고 따랐습니다. 사도 요한은 이 내용을 상세하게 알 것입니다. 이는 그가 세례자 요한의 제자로 예수님과는 처음부터 만남을 체험한 것이기에, 그에게는 이 내용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수 있는 내용이기도 할 것입니다.
따라서 김진태 님의 질문인 두 개의 상황을 하나로 결부시킨다는 게 무리가 있음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분명히 두 상황은 직접적으로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내용이 확연히 다릅니다. 그래서 제자들의 만남을 공관과 요한복음의 내용이 다름을 단순히 성경 내용으로 보면 오해의 소지가 충분히 있다고 여겨집니다. 그렇지만 두 내용은 어쩜 분명히 다른 독립된 내용입니다.
미진하지만 보충 설명이 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이 내용은 아레 '네 가지 답변'과 관련됨을 참조하십시오.
감사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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