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박윤식님의 질문에 대한 답변 | 카테고리 | 성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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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복선 | 작성일2014-02-24 | 조회수681 | 추천수2 | 신고 | ||||||||||||||||||||||||||||||||||||||||||||||||||||||||||||||||||||||||
(십자성호를 그으며)
박윤식님께서 인용하신 교부들의 주해 내용중에, ‘땅의 군주들의 마음을 화해시키시는 분’ (욥 12,24 참조) 라는 말이 있다고 하셔서 그렇게 이해할 만한 내용이 있는지, 욥 12,24 본문을 찾아보았지만 그런 내용을 파악할 수 없었습니다.
해당 본문에 ‘땅의 군주들의 마음을 화해시키시는 분’ 이라는 의미를 떠올릴만한 내용이 있는지 같이 확인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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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를 돕기 위해, 우리말 성경 → 미국 개편성경 → 히브리 본문 順 으로 올려 드립니다.
(욥12,24)
(미국 개편 성경)
<출처: http://www.usccb.org/bible/job/12>
(히브리어 본문) * 히브리 단어의 고유 번호를 누르시면 단어들의 뜻과 쓰임을 알 수 있습니다.
<출처: http://www.blueletterbible.org/Bible.cfm?t=KJV&x=-311&y=-2279&b=Job&c=12&v=1#s=t_conc_448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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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잘 몰라서 그런지, 참조하라던 욥12,24에서는 박윤식님이 올려주신 주해에 인용된 의미인( ‘땅의 군주들의 마음을 화해시키시는 분’)이라는 내용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박윤식님의 두번째 질문글에서,
만약 이런 주님의 불개입으로 이런 화해가 없이 친구지간[비록 나쁜 의미의 친구]이 되질 않아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부활의 영광도 없었을 것이고, 부활의 신비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루카 복음사가는 원수지간인 두 지도자가 그날 친구사이로 화해되었다고 기록했을 것이라고 저는 묵상했습니다.
===> 이 부분은 가톨릭 교리서 599항과 600항을 보시면 이해가 되실 것 같습니다.
599예수님께서 죽임을 당하신 일은 불행한 상황들 때문에 생겨난 우연한 결과가 아니었다. 베드로 사도가 성령 강림 날의 첫 설교 때부터 예루살렘의 유다인들에게 “하느님께서 미리 정하신 계획과 예지에 따라” 예수님이 넘겨지셨다(사도 2,23)고 설명했듯이, 예수님의 죽음은 하느님의 구원 계획의 신비에 속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성경의 이러한 어법은 예수님을 넘겨준440) 사람들이 하느님께서 미리 써 놓으신 각본을 수동적으로 실행에 옮긴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600하느님께는 시간의 모든 순간이 실제적으로 현재이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그 ‘예정’의 영원한 계획을 수립하실 때 거기에는 당신 은총에 대한 각 사람의 자유로운 응답도 포함된다. “과연 헤로데와 본시오 빌라도는 주님께서 기름을 부으신 분, 곧 주님의 거룩한 종 예수님을 없애려고,441) 다른 민족들은 물론 이스라엘 백성과도 함께 이 도성에 모여, 그렇게 되도록 주님의 손과 주님의 뜻으로 예정하신 일들을 다 실행하였습니다”(사도 4,27-28).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구원 계획을 이루시기 위하여442) 그들의 무지에서 나온 행동을 허락하셨다.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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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교리서를 보면, ''기름부음 받은이'' 이신 예수님을 없애려고 한 헤로데와 빌라도의 행동은 그들의 무지에서 나온 행동 즉, 그들의 자유로운 응답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저는 이를 토대로, 전에는 원수지간이었던 그 두 사람이 예수님을 신문하는 그 자리에서 친구가 된 것은, 예수님의 화해의 개입이었다기보다, ''그들의 이해관계가 맞았기 때문에'' 그 날에 친구가 되었다고 보았던 것입니다.
루카 23,12
<저와 생각이 다른 분들의 의견 개진도 환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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