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 이즈음에서 분열을 마무리하길[소순태 씨께] | 카테고리 | 성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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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윤식 | 작성일2014-02-28 | 조회수1,253 | 추천수1 | 신고 |
(십자성호를 그으며)
2월이 가기 전에 이곳 묻고 답하기에서 벌어진 소순태 씨와 관계된 글들이기에 다시금 소개한다. 이 바램이 이번에도 끝내 마무리하지 않고 유야무야 얼버무리면, 이는 그가 이곳만이 아닌 굿뉴스 전체에서 분열을 조장하는 가장 중심축의 인물이라 낙인찍힐 것이기에. 이건 어쩜 그에게 주는 가장 온유한 마지막 글이 될 것 같다. 이후의 글들에 대한 강도는 각자의 판단에만 맡길 생각이다.
솔직한 심정이다. 그는 지금 이곳저곳에서 저지르고 있는 비열한 짓에 대해 석고대죄하고 자숙하던지 아니면 이곳을 떠나길 권유한다. 이는 이곳 굿뉴스의 평화를 위해서다. 그는 ‘시기와 질투’에 관해서, 수년간 ‘번역 오류 주장’을 줄기차게 해 왔다. 이에 관한 내용이 그의 게시로 또 집중적으로 거론되어 이곳에서 최근 3개의 질문이 게시되었다. 얼마나 그의 답변을 간절히 요구했으면 글 제목으로 그의 이름을 사용하면서까지 정중하게 부탁했다.[#7603/7600/7599]
좋은 점을 강조하고자 남의 이름까지 사용하는 홍보효과도 만점일 게다. 여타 강조를 위해서도 이름까지 사용할 수도 있다. 이것을 그는 깡그리 짓밟고 이곳 ‘묻고 답하기’에서의 요청을 저곳 ‘묵상방’에 며칠이 지난 후에 버젓이 게시했다. 이것은 비열하고 추잡하기 그지없다. 적어도 질문자 내지는 요청자에게 최소한의 답변하는 성의는 보여야 한다. 그게 이곳 이용자의 도리요, 신앙인의 자세다.
그리고 요청자의 글에 직접적인 답변이 좀 그렇다 치면 댓글로의 성의는 나타내야 한다. 그리고는 소순태라는 이름을 제목으로 사용하지 말라면서 이곳저곳 온통 도배를 하고 다녔다. 솔직히 말해 글 제목에 이름만은 사용하지 말란 건 어느 선에서는 이해는 된다. 그렇지만 거듭 이야기하거니와 이 역시 요청자의 게시 글에 답변을 하면서 ‘부탁’성 멘트로 충분히 족할 내용인 것을. 그런데도 이를 이곳저곳 누워 침 뺏는 식의 까발림은 참으로 안타까운 현상이다.
이에 관해서 그가 제게 저지른 것에 대한 사과가 아직 없기에 그 역시 이 점에 관해서는 자유로울 수 없음을 상기시키고자 한다. 그는 당시에 제 이름을 무식하게도 붉은 글로 그것도 진하게 그의 글 #6140에 제목으로 버젓이 게시했다. 이에 관해서는 #6144와 6167을 참조하면 알 수 있을 게다. 언제 저의 의견을 받아들여 글 제목을 바꾸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적어도 저의 요청에 한 마디 사과는 했어야 했다. 이게 적어도 1년 남짓 전의 일이다. 그는 수없이 이런 비겁한 짓을 저지르고 있다.
금번 교부(敎父)에 관한 것도 그렇다. 아래 질문 글 #7607의 ‘바오로 성인을 왜 사도라고 하나요?’에 대한 댓글을 게시하면서 질문자에게 ‘사도’들에 관해 설명하면서 혹시 참고가 될 것 같아 ‘교부’와 ‘교부들의 제자’에 관한 저의 의견을 게시했다. 이 내용이 뭐가 그리 못마땅한지 소순태 씨는 ‘교부란?’이란 글을 자유게시판#204050[2/15일]과 묵상방 #87328[2/18일]에 연거푸 게시했다. 그러면서 ‘개인적으로 추측 혹은 추정하는 행위 그 자체가 바로 무지의 소치일 것입니다.’라는 그 특유의 저질적 핀잔의 말도 잊지 않았다. 이건 아니다.
그리고 이번에 그는 묵상방의 글 #87458을 게시했다. 그는 또 다시 거기에서 ‘시기와 질투’에 관한 번역 오류를 또 다시 게시했다. 그래서 제발 그만 좀 하라는 댓글을 어렵게 주었다. 물론 그는 자신의 글에 답변과 댓글을 사양했다. 그건 이해가 된다. 그렇지만 믿음의 생활에서 이렇게 분심을 초래하는 오해의 소지가 있는 것을 두고 모두가 방관한다는 건 좀 그렇다. 이런 독선적이고 무책임한 주장인 ‘번역 오류’를 두고 무관심만이 과연 최선일까? 그래서 정중히 그 어려운 댓글을 달았다.
그의 글은 다른 곳에서 좋은 내용을 복사를 해서 갖다 부칠 수 없도록 ‘복사 방지’까지 해 둘 정도인 좀 괴상한 심보도 있는 곳이었다. 그는 여기에 또 못된 심보 내지는 질투로 자신의 댓글을 공난으로 채워 추가 댓글을 쉽게 읽지 못하도록 한참 아래에 배치하는 이상 야릇한 조작을 했다. 참으로 안타깝다.
어디 그것뿐이던가? 참으로 기이하게도 이곳 ‘굿뉴스’의 글을 그의 개인 웹 사이트로 퍼간 걸 ‘클릭’해 보면, 그의 글은 꼭 ‘당부의 말씀’으로 시작한다. 분심이 드는 이는 아예 읽지를 말란다. 아래를 읽었다면 ‘분노와 질투를 가지지 않을 걸로 동의한 이‘로 생각한다나! 그리고는 한 바닥 이상 이상한 공백을 두고 있다. 참으로 기발한 술책을 동원한다.
이렇게 모든 댓글을 거부하고, 쪽지도 차단하고, 그리고 자신을 위해 조언하는 것 마저 저버리면서까지 번역 오류 주장을 하는 그 저의는 과연 무엇일까? 참으로 아쉽고 연민의 정까지 느끼게 한다. 요즈음에는 아예 댓글마저 달지 말라는 걸 공공연히 게시한다. 이 점에 있어서는 빨리 큰마음으로 돌아서기를 간곡히 빌 뿐이다.
소순태 씨, 그는 지금 자신이 저지르고 있는 이런 비열한 짓에 대해 석고대죄하고 자숙하던지 그렇지 않으려면 이곳을 떠나길 권유한다. 이는 이곳 굿뉴스의 평화를 위해서다. 그의 평화와 우리 모두의 평화가, 그리고 굿뉴스의 안정된 평화를 이루는 게 이번이 마지막 기회이길 꼭 당부하는 바이다. 그의 어떤 형태로의 반응을 기대해 본다.
감사합니다. ^^+
PS : 다음에 소개하는 글은 제가 근자에 누군가에게 선물 받은 ‘시기와 질투’에 관한 참으로 진지한 글이기에, 이를 소순태 씨께 참고가 될 것 같기에 감히 선물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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