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주석성경 각주 내용입니다.
"감옥에 있는 영들"은 두 가지로 이해할 수 있다.
첫째, 유다교 전통에서 질이 가장 나쁜 죄인으로 간주되는, 노아 시대 사람들의
영혼이다. 둘째, 사람들의 죄에 대하여 책임이 있다고 여겨지던 타락한 천사들이다.
'말씀을 선포하다'에 해당하는 그리스 말은 그리스도교 설교를 일컫는 전문 용어로,
가끔'복음을 전하다'(4,6 참조)라는 동사와 병행하여 쓰이기도 한다. 많은 교부들은
이 구절을 구원에 대한 보편적 부르심을 표현하는 것으로 알아듣는다.
사도신경에 도풀이되듯이, 신약 성경의 다른 본문들은(사도 2,31; 로마 10,7; 에페
4,8-10)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이 머무르는 곳으로 내려가셨다고만 언급한다.
이 구절에서만 유일하게, 그리스도께서 "영들에게" 가시어 직접 무슨 일을 하셨다고
말한다.
어떤 학자들은 그리스도의 이 행동을 지옥의 권세를 지닌 존재들 곧 악마들에 대한
승리의 선포로 이해하기도 한다(22절; 에페 1.20.21 참조)
200주년 신약성서 기념 주해서 각주 내용입니다.
감옥에 있는 영들을 노아 시대에 순종하지 않은 사람들의 "영혼"들로 보는 견해도 있다.
랍비들에 의하면, "노아의 홍수 때의 사람들은 부활에 참여하지 못하니"(산헤드린 10,30)
그들 영혼들은 결정적으로 멸망의 구렁텅이에 빠졌다고 한다. 그런데 주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희망이 하나도 없었던 그들에게도 구원의 복음을 전하셨으니, "의로우신
분이" 실제로 "불의한 자들을 위하여"(18절) 죽으셨다는 것이다. 요컨대 예수의 수난은
문자 그대로 "모든 이들"을 위한 대속적 수난이었다는 뜻일 것이다.
이상의 내용으로 짐작해 보건대 천국은 분명 아닐 것이고 아무튼 하느님과 함께 얼굴을
맞대고 살고 있지 않은 어떤 영혼들이 있는 곳이라고 생각됩니다. 그곳의 명칭이 연옥인지
고성소인지, 저승인지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겠습니다.
* 연옥 교리는 1베드 3,19절이 쓰일 당시에는 없었던 교리입니다.
수정합니다. 연옥교리는 1베드 3,19절이 쓰일 당시에는 교회에서 확정 교리로 아직 선포되지
않았던 교리입니다로 수정합니다.
|
한자 |
~公議會 |
라틴어 |
Concilium Florentiuum |
영어 |
The Council of Firenze |
[관련단어] 공의회 |
출처 : [가톨릭대사전] |
1438~1445. 제17차 세계공의회. 터키로부터의 방위를 요청해 온 그리스 정교회와의 일치를 모색하기 위해 교황 에우제니오(Eugenius) 4세(재위 : 1431~1447)가 소집. 공의회 우위론자들이 우세했던 바젤 공의회(1431~1449년)가 교황에 의해 페라라(Ferrara, 1438~1439년), 피렌체(1439~1443년), 로마(1443~1445년)로 이전되면서 모두 피렌체 공의회 회기로 간주되었다. 페라라에서는 동서방교회에서 700명 가량이 참석하였는데 성신은 성부와 성자로부터 발출하였다는 교리, 누룩 없는 빵을 면병으로 사용하는 문제, 연옥 교리, 교황 우위권 등이 쟁점이 되었다. 8개 회기로 이루어진 피렌체 회의에서는 동방교회측이 서방교회측의 입장을 대부분 접수함으로써 교황의 우위론, 신경(信經)에 ‘필리오케’(Filioque)문구를 첨가하는 문제, 성체와 연옥 교리 등이 확정되었다.
1439년 6월 동서방교회 사이의 일치교령이 조인되고, 그리스측 참석자들이 떠난 뒤에도 바젤 공의회에서 야기된 우위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회의는 계속되었으며 마침내 공의회에 대한 교황의 우위를 대칙서 (1441. 4)로 선포하고, 바젤 공의회의 공의회우위론자들은 이단으로 파문되었다. 11439년의 일치선언은 콘스탄티노플이 터키에 함락(1453년)됨으로써 그 효력을 잃었으나 다른 전례를 허용하는 신앙의 일치라는 일치 원칙은 이후의 재일치 노력에 계속 반영되었으며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 (⇒) 공의회
|
|
한자 |
煉獄 |
라틴어 |
purgatorium |
영어 |
purgatory |
출처 : [가톨릭대사전] |
가톨릭에 있어서의 연옥은 일반적으로 세상에서 죄를 풀지 못하고 죽은 사람이 천국으로 들어가기 전에, 불에 의해서 죄를 정화(淨化)한다고 하는, 천국과 지옥(地獄, infernum)과의 사이에 있는 상태 또는 장소를 말한다. 대죄(大罪)를 지은 사람은 지옥으로 가지만, 대죄를 모르고서 지은 자 또는 소죄(小罪)를 지은 의인의 영혼은 그 죄를 정화함으로써 천국에 도달하게 된다. 바로 이 ‘일시적인 정화’(satispassio)를 필요로 하는 상태 및 체류지가 ‘연옥’이다. 가톨릭의 연옥론(煉獄論)은 하느님의 성성(聖性), 정의, 예지, 자비를 명백히 보여주며, 인간을 절망과 윤리적인 경솔함으로부터 지켜주고, 더구나 죽은 사람도 도울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증하여 줌으로써 많은 위로와 도움을 주고 있다.
그러나 고대 및 중세의 카타리파(Cathari), 발두스파(Waldenses) 등 이단자들은, 죽은 자를 위한 전구와 연옥의 존재를 부정하였고, 루터는 ≪연옥론철회≫(Widerruf vom Fegefeuer, 1530)에서 연옥신앙을 부정하였다. 로마 교회가 연옥에 관한 가르침을 정식으로 정의내린 것은, 리용 및 피렌체의 합동공의회(1274년 및 1439년), 그레고리오 13세 및 우르바노(Urbanus) 8세의 신경(信經), 그리고 프로테스탄트에 반대하여 열린 트리엔트 공의회(1545∼1563년)에서였다.
연옥의 영혼은, 이 세상에서의 경우 은총의 도움에 의해서 행하여진 애덕(愛德)에 따른 통회(痛悔)와 기도에 의하여 소죄가 정화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연옥에 있어서도 소죄가 정화된다. 하지만 죄에 대한 슬퍼함이 벌에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 즉 여기서는 적극적으로 착한 일을 하거나 공덕을 쌓는 상태가 아니라, 단지 하느님의 정의에 의해서 내려진 벌의 고통을 견디는 것만으로 정화와 속죄가 되는 상태이다. 내세(來世)에서는 공덕을 쌓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연옥의 영혼은, 신이 내리는 고통을 즐겁게 수용함으로써 죄에 대한 유한적인 벌의 보상을 하면 확실하게 정화되는 것이다. 연옥의 고통이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것이 아니고, 각자의 죄에 상응하는 것임은 물론이다. 그 고통의 기간이나 엄중함도, 지상의 신자의 기도와 선업(善業) 즉 신자의 전구에 의해서 단축 또는 경감된다.
그 다음 연옥의 영혼은, 신을 마음으로부터 사랑하고, 천국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 확실하므로, 고통이 마음의 평안과 기쁨을 흔들리게 하는 것은 아니다. 신학자들의 주장에 의하면 연옥의 영혼은 지상의 사람들을 위하여 전구할 수가 있다. 그들은, 지상의 신자에게 연옥의 영혼의 전구를 기도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 연옥의 영혼에 대하여 성 토마스는, 연옥의 영혼이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지는 못하며, 또한 지상의 일에 관하여 지식을 갖지 못한다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벨라르미노(Robertus Bellarminus, 1542∼1621), 수아레스(Francisco de Suarez, 1548∼1617), 구트베를레트(Konstantin Gutberlet, 1837∼1928), 셰벤(M.J. Scheeben, 1835∼1888), 바우츠(Bautz), 두르스트(B. Durst)등 신학자는, 연옥의 영혼이 그 형벌 상태 아래 있다는 이유 때문에 자신에게는 공덕이 없지만, 우리를 위해 기도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공심판(公審判) 뒤에 연옥은 존재하지 않게 되는 것이지만, 하나하나의 영혼에 있어서는 그 벌로부터 해방되기까지 이어질 것으로 본다. 정화가 끝나면 영혼은 곧 천국으로 들어가 버린다.
[참고문헌] F. Schmid, Das Fegfeuer, 1904 / M. Landau, Holle und Fegfeuer im Volksglauben, 1909 / J.P. Kirsch, Sprazzi, d'oltra tomba, Roma 1924 / V. Kerns, The Traditional Doctrine of Purgatory, IrEccl Rec 80, 1953 / M. Schmaus, Vom den letzten Dingen, Aufl. 5, Munich 1959 / John A. Hardon, S.J., Modern Catholic Dictionary, New York 1980.
|
|
한자 |
古聖所 |
라틴어 |
limbo |
영어 |
limbo |
출처 : [가톨릭대사전] |
경계(境界)라는 뜻의 라틴어 'limbus'에서 유래하였다. 라틴 신학에 의하면, 이미 죽은 이들이 지복직관(至福直觀)에 완전히 들지는 못했지만 벌을 받고 있지는 않은 상태에서 머무르는 곳을 지칭한다. 구약의 조상들이 그리스도가 강생하여 세상을 구할 때까지 기다리는 곳([라] limbus patrum [영] limbo of Fathers)과 영세받지 못하고 죽은 유아(幼兒)의 경우와 같이 원죄 상태로 죽었으나 죄를 지은 적이 없는 사람들이 영원히 머무르는 곳([라] limbus infantium [영] limbo of infants) 등 두 가지 뜻이 있다. 후자의 경우 이들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는 것은 영세를 통해 얻은 은총은 다른 무엇으로도 대체될 수 없기 때문이다. 즉 “물과 성령으로 새로 나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요한 3:5)라는 성경의 말씀에 그 기초를 두고 있다. 이들은 초자연적인 지복을 받을 수는 없지만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quinas)를 비롯한 여러 신학자들이 주장하듯이 자연적 상태에서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행복을 누리고 있는 것으로 믿어졌다.
교회의 고성소의 존재를 명확히 정의한 적은 없으나 여러 번 간접적인 지지를 표명하였다. 고성소의 존재를 부인하는 자들 중에는 얀센주의자가 많은데, 이들은 예정설(豫定說)을 통해 인간을 원죄 상태에서 구원할 수 있는 모든 은총, 즉 성세성사까지도 부인하였기 때문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