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전례중에 여인들이 머리를 가리는 문제 | 카테고리 | 천주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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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정임 | 작성일2014-03-16 | 조회수1,254 | 추천수0 | 신고 |
(십자성호를 그으며)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서의 각주를 옮겨 드리겠습니다.
전례중에 여인들이 머리를 가리는 문제(1코린 11.16)
* "그러나 모든 남자의 머리" : 11,2-16 단락 전체에서 바울로는 다의적 多義的 낱말인 그리스어 케팔레("머리" 또는 "원천")를 가지고 언어유희를 한다.
* "그러나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이시고 여자의 머리는 남자이며,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느님이시 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고 있기를 바랍니다." : 3,23; 15,27- ; 에페 5,23 참조.
* "예언하는 여자는" ; "기도하거나 예언하는 여자는": 여기를 보면 여인들이 기도나 예언을 통해 전례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 자체는 당연한 것으로 전제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누구나 자기의 머리를 부끄럽게 하는 것입니다." 일단의 유다인 그리스도인들이 있던 코린토 공동체에서도 여자는 일반적으로 머리를 가리고 전례에 참석했던 것 같다. 13-16절을 보면 바울로는 당대 그리스도교 공동체들의 일반 관례를 존중하여 예배 때 여자가 머리를 가리는 풍습은 당대 주변 세계에서 정숙함과 예의바름 또는 품위있는 처신의 표현이었다. 여자가 긴 머리를 드러내고 다니면 수치심이 없는 정숙하지 못한 여자로 여겨졌다.
* "그렇지만 남자는 머리를 가려서는 안 됩니다. 그는 하느님의 모상이요 영광이기 때문입니다." : 창세 1ㅡ2장의 두 인간 창조 이야기 중, 하느님의 모상에 따른 창조는 첫째(1,1ㅡ2,4ㄱ: 특히 1,26-)에만 나오고 그것도 "남자와 여자로" 동시에 창조되었다는 데 비해, 둘째(2,4ㄴ-25)에서는 먼저 남자가 창조되고(2,7) 나중에 여자가 남자의 갈비뼈로 창조되었다 한다.
그런데 여기 7-9절에서는 창세 1,26-27, 2,7.21의 "사람"(아담)을 "남자"라는 똑같은 뜻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엄밀히 보면 7절에서 "남자는 하느님의 모상이지만 여자는 아니다"라고 하지 않는다. 사실 창세 1,26-27에 의하면 남자와 여자가 다 같이 하느님의 모상이다.
다만 바울로는 창세 2,7.21을 주된 근거로 삼고, 창세 1,26-27을 여자에게 적용시키기를 의도적으로 침묵할 뿐이다. 이러한 여성관은 바울로 고유의 것이라기보다 당대 유다인들의 일반적 여성관이다. 그러나 이러한 당대 여성관에 비해 바울로는 그리스도 신앙을 바탕으로 남녀의 상호성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5,11-12; 7,3-4와 그 주석: 특히 갈라 3,26-28 참조)
* 10절: 그러므로 여자는 머리 위에 권위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천사들 때문입니다. : 신명 23,15에서는 천막(지지) 주변에 하느님이 현존하신다는 것이 백성들이 단정하고 거룩하게 살아야 하는 중요한 이유다. 쿰란 문헌도 이 동기를 받아들이는데, 하느님의 초월성을 존중해서 "하느님의 현존"을 "천사들의 현존"으로 대치한다(IQa ∥5-9; 이사 6장).
* 11절: 그러나 주님 안에서는 남자 없이 여자가 있을 수 없고 여자 없이 남자가 있을 수 없습니다. ; 바울로는 앞에서 한 말이 지나쳤다고 느꼈는지 11-12절에서 남녀의 상호의존성과 남녀 모두의 피조성을 말함으로써 앞에 말한 내용을 보완한다. 이미 3절에서도 남녀의 관계를 "그리스도와 하느님의 관계"라는 테두리 속에 넣음으로써 종속관계 표현을 상대화했다.
* 그러나 주님 안에서: "주님 안에서" 또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갈라 3,26.28)가 그리스도인들 인간관계의 바탕이다.
* 11-12절에 이어 13-16절에서는 설득 또는 호소하는 문체로 표현함으로써 편향적이라고 보일 수 있는 앞(1-10절)의 말을 보완한다. 결국 11-16절을 보면 2-16절의 바울로의 의도는 남성의 여성에 대한 우월 또는 여성의 남성에 대한 열등을 주장하는 데 있지 않고, 당대 교회들의 관례를 존중함으로써 공동체 전례가 올바로 이루어지도록 하는 데 있다.
그렇지만 문제의 발단은 고린토 공동체에서 어떤 여자들이 관례를 무시하고 머리를 가리지 않고 예배 때 기도나 예언을 하는 데 있었다(4. 16절 참조). 이러한 관례 무시의 동기가 이웃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잘못된 자유관에서 나온 것이라고 볼 수 있다면, 8,1ㅡ11,1에서의 문제였던 "그리스도인의 자유와 사랑"의 문제가, 관점이 다르지만, 2-16절에서도 계속된다고 볼 수 있다.
말하자면 이렇게 말하는 셈이라 하겠다: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해서 남녀의 성적 구별(구별과 차별은 같지 않음)마저 없어진 것은 아니다. 그리스도의 구속에 의해 창조질서까지 철폐된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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