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구약] 구원 역사의 발자취를 따라: 라멕의 과도한 복수와 인간의 타락과 폭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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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21-01-11 | 조회수7,596 | 추천수0 | |
[구약성경 순례 - 구원 역사의 발자취를 따라] 라멕의 과도한 복수와 인간의 타락과 폭력
이제 우리의 순례지는 하느님 곁을 물러난 카인의 삶의 터전입니다. 창세 4,16에 의하면 카인은 주님 앞에서 물러 나와 에덴의 동쪽 놋 땅에 살았다고 합니다. 여기에서 히브리어 ‘놋’은 목적 없이 방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느님께서 카인에게 세상을 떠돌며 헤매는 신세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으니 그가 놋 땅에서 살았다는 말은 곧 세상을 떠돌며 살았다는 말과 다르지 않습니다. 후에 그는 성읍 하나를 세우고 자기 아들 에녹의 이름을 따라 그곳을 에녹이라고 불렀습니다. 카인의 후손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성경은 침묵하고 있지만 아담의 7대손이자 카인의 6대손인 라멕에 관해서는 짧은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그는 굉장히 난폭한 사람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자신의 아내들에게 자랑삼아 말합니다. 누군가 그에게 상처를 입히면 그는 그자를 죽여 버렸고, 생채기 하나를 내면 아이 하나를 죽였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카인을 해친 자는 일곱 갑절로 앙갚음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그는 자신을 해친 자는 일흔일곱 갑절로 앙갚음을 받을 것이라고 큰소리칩니다(창세 4,23-24). 이것으로 보아 세상에는 카인의 때보다 폭력의 문제가 훨씬 더 심각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태 18,22에서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라멕의 말을 염두에 두고 하신 말씀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용서만이 폭력의 고리를 끊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어지는 이야기들은 하느님께서 왜 홍수로 세상을 벌하셔야만 했는지 그 상황을 설명해 줍니다. 창세기의 홍수 이야기에는 야훼계 전승의 홍수 이야기와 사제계 전승의 홍수 이야기가 섞여 있습니다. 홍수의 원인이 이중으로 소개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홍수의 원인은 야훼계 홍수 설화에 속하는 창세 6,1-6과 사제계 홍수 설화에 속하는 창세 6,11-13에서 각각 설명되고 있습니다.
먼저 창세 6,1-6에서 말하는 홍수의 원인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창세 6,1-4의 이야기는 하느님의 아들들과 인간의 딸들의 결합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이어서 언급되는 인간의 악이 증대된 것(6,5-6)과 무슨 연관이 있는지는 본문에서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의 결합에 관한 이야기는 우리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어떤 신화의 일부인 듯합니다. 이들의 결합으로 나필족이라고 하는 장사들이 태어났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들 안에 당신의 영이 영원히 머무는 것이 위험하다고 여기신 까닭에 인간의 수명을 120세로 제한하셨습니다. 나필족들 때문에 세상에 악이 만연된 것인지는 알수 없으나 세상은 악으로 가득 찼고, 사람들의 모든 생각과 뜻이 악해지고 말았습니다. 그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만드신 것을 후회하시며 마음 아파하셨습니다(창세 6,5-6). 바로 이어서 사제계 홍수 설화에 해당되는 홍수의 원인이 언급됩니다(창세 6,11-13) 여기에서는 홍수의 원인이 인간의 타락과 폭력으로 설명됩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성경의 저자는 하느님의 부서진 마음과 인간의 부패와 타락을 대비시킵니다. 세상은 하느님 앞에서 타락해 있었고, 폭력으로 가득 찼습니다. 곧 하느님께서 개입하시지 않는다면 세상은 폭력 때문에 멸망해버리고 말 것입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사람들 때문에 땅 위의 모든 것을 쓸어버리시겠다는 결정을 내리십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이 말씀은 세상을 끝장내시겠다는 의지를 드러내신 말씀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는 세상이 온통 타락하였지만 그 가운데 예외적인 인물을 찾아내셨기 때문입니다. 노아는 당대에 의롭고 흠 없는 사람으로 하느님과 함께 사는 이였고(창세 6,9), 그만은 주님의 눈에 들었습니다(6,8) 여기에서 온 인간의 타락과 한 인간 노아의 선행은 엄청난 대조를 이룹니다. 하느님의 구원은 이 한 사람 노아에게서 다시 시작됩니다. 하느님의 은총은 어떻게든 그 길을 찾아내십니다. 인간의 선택이 만들어 낸 막다른 길에서도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피조물을 구원하시기 위한 우회로를 만들어 내십니다. 이처럼 홍수 이야기 안에는 하느님의 정의와 하느님의 자비 사이의 긴장이 나타납니다.
[2021년 1월 10일 주님 세례 축일 가톨릭마산 8면, 김영선 루시아 수녀(광주가톨릭대학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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