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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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聖母痛苦 |
라틴어 |
B.M.V. Perdolens |
영어 |
sorrows of Mary |
출처 : [가톨릭대사전] |
성모 마리아가 아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받았던 슬픔과 고통을 말한다. 성모통고는 예수의 구세사(救世史)적인 수난과 죽음에서 절정을 이룬다. 성모통고에 대한 신심은 성모가 예수의 십자가 아래 서 있었다는 사실에 근거한다(요한 19:25). 또한 성모가 아기 예수를 성전에 봉헌하러 갔을 때의 예언자 시메온이 성모의 마음이 날카로운 칼에 찔리듯 괴로움을 받게 되리라는 예언(루가 2:35)에도 근거한다. 성모통고에 대한 신심은 6세기에 동방에서 먼저 발달되어, 여러 예술작품을 통해 이를 표현해 왔다. 서방에서는 12세기에 시작되어 특히 이 신심을 목적으로 한 성모 마리아의 시녀회(Servites)가 창립(1233년)되면서 본격적으로 되었다. 성모통고의 숫자는 처음에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14세기에는 그리스도의 다섯 상처를 본떠 다섯 가지로 정해진 적도 있으며 7, 8, 9, 23 등 150가지로도 가능하였다. 그러나 15세기 말경 7이란 숫자가 가지는 상징과 또한 성모칠락과 연관되어 성모칠고로 고정되었는데 이는 쿠덴베르크의 사제였던 요한의 영향 때문이었다.
성모통고의 기념일은 1960년까지는 두 가지였다. 즉 고난주일(현재의 사순 제5주일) 후 금요일에 지켜지던 축일(the seven sorrow of the Blessed Virgin Mary)은 1423년 쾰른 교회의회에서 결정된 미사에서 발견되는데, 1482년 교황 식스토(Sixtus) 4세가 전례적인 미사를 만들어 로마 미사 전례서에 삽입시켰다. 이 축일은 몇몇 수도단체와 나라에서 지켜지다가 1727년 교황 베네딕토(Benedictus) 13세에 의해 전교회(全敎會)에서 지켜졌다. 그러나 1960년의 예식서는 이 축일 지키는 것을 감소시켰다. 두 번째 축일은 16세기 세르비트회(Servites)가 주창한 성모통고 신심에서 시작된 것으로 9월 셋째 주일에 미사와 행렬을 하는 것이 1600년경에는 대중화되어, 1668년 교황 복자 인노첸시오(B. Innocentius) 11세에 의해 이 날이 축일로 인가되었다. 1814년 교황 비오(Pius) 7세가 이 축일을 전교회로 확장시켰으며, 1908년 교황 성 비오(St. Pius) 10세가 축일의 등급을 높였다. 1913년부터는 9월 15일(the seven sorrow of the B. V. Mary)로 고정되었고 1969년부터는 의무적 기념일로만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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