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 시편은 음률도 내용도 다 중요함 | 카테고리 | 성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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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윤식 | 작성일2014-04-07 | 조회수950 | 추천수0 | 신고 |
(십자성호를 그으며)
이 시편의 번역은 최민순 시인 신부님이 잘 번역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 있어(알라딘 서점 참조), 그 내용이 일단은 이해에 도움이 될 걸로 짐작이 됩니다만...
암튼 제 생각은 ‘시편’에 관한 한 공동 번역 ‘성서’도 이해에 도움이 될 걸로 판단되어 그 내용을 참조로 먼저 밝혀 둡니다.
"나는 너를 가르쳐 네 갈 길을 배우게 하고 너를 눈여겨보며 이끌어 주리라. 부디 철없는 말이나 노새처럼 되지 마라. 재갈이나 굴레라야 그들을 휘어잡는다.(8-9절)"
시편 32는 회개는 기쁨의 원천을 나타내며 용서를 받아서 감사를 드리는 기도라 여겨집니다. 1-2절은 하느님이 죄를 용서해 주실 때 인간은 자유스러움을 나타냅니다. 3-4절은 그렇지만 죄를 숨길 때에는 가책에 시달립니다. 5-7절은 용서를 받은 시편 작가는 돌아와 기쁨을 노래합니다. 이는 죄를 지은 다음에는 지체하지 말고 하느님께 용서를 빌어야 함을 교훈으로 줍니다. 8-9절은 용서를 체험한 죄인은 하느님의 길을 발견한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길들여진 야생 동물처럼 고집을 부리지 않는 일이다.
이런 맥락에서 ‘성경''의 내용을 살펴봅시다.
‘나 너를 이끌어 네가 가야 할 길을 가르치고 너를 눈여겨보며 타이르리라. 지각없는 말이나 노새처럼 되지 마라. 재갈과 고삐라야 그 극성을 꺾느니. 그러지 않으면 네게 가까이 오지 않는다(8-9절).’
이 내용을 묵상해보면, ‘하느님은 죄 지은 인간이 회개하고 용서를 청하는 이를 지켜보며, 사랑으로 용서해 준다. 따라서 너희들은 재갈과 고삐로 묶인 말이나 노새가 순응하듯이 겸손되이 나만을 바라보며 내 계명을 지켜야만 나의 가까이에서 나를 따를 수 있다.’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양쪽 부정을 양쪽 긍정으로 이해하는 편이 훨씬 쉬울 것 같군요. 이런 측면에서 저의 의견입니다.
1]먼저 질문자의 내용인 ‘네게’라는 번역은 하느님 또는 시편 저자의 입장에서 ‘내게’가 아닌 ‘네게’가 적절하다. 여겨집니다. 2]그리고 ‘지각없는 말이나 노새가 재갈과 고삐’로 그의 야성인 ‘극성’을 꺾인 상태임을 감안, 시편 작가의 의도는 ‘재갈과 고삐’로 본성을 죽인 상태를 비추어 우리도 하느님을 두려워하며 죄를 회개하고 용서를 청해야 함을 교훈으로 주는 것 같군요. 3]따라서 '재갈과 고삐가 동물들의 기를 꺾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여겨 져, ‘성경’ 번역이 아주 적절하다 여겨집니다. 4]이런 측면에서 ‘재갈과 고삐로서(라야) 그들의 성질을 꺾이느니’보다는 ‘재갈과 고삐라야(로써) 그 극성을 꺾느니’가 보다 시어(詩語)적이고 이해를 쉽게 할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결론적으로 거듭 이야기 합니다만, 성경 번역은 십 수 년에 걸쳐 여러 전문가들이 고뇌의 결실로 된 작품입니다. 그러기에 그 내용에 대해서는 최상의 수준이라 생각하면서 일단은 긍정의 차원에서 이해를 하시기를 권유해 드립니다. 만약 그래도 오해의 소지가 있는 부분은 먼저 ‘성경’ 관리의 주관 ‘한국 천주교 주교 회의’의 관련 기관에 문의한 후 그 내역과 함께 ‘번역 오류’등의 주장을 먼저 하셔도 무방할 겁니다. 그럴 경우는 기 발행된 내용의 정정에 많은 시간이 소요되기에 대부분은 그런대로 수긍을 할 겁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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