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삼위일체 하느님의 내적인 삶 | 카테고리 | 성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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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병민 | 작성일2014-04-29 | 조회수1,787 | 추천수2 | 신고 |
(십자성호를 그으며) 주님께서 가르쳐 주시지 않으면 저희는 주님을 찾을 수 없고, 계시해 주시지 않으면 발견할 수 없습니다 (켄터베리의 안셀름) 성부께서는 신성의 근원으로서 당신의 삶과 본질을 성자에게 주시고, 성자를 통해서 성령에게 주신다. 성부께서는 성자와 성령의 신성의 근원이지만 성령과 성자를 군림하는 분으로 존재하지 않고, 성자와 성령을 존재하게 하심으로써 성부이시다.즉 성자와 성령의 관계 안에서 성부이시다. 성자께서는 성부로부터 신성을 받으심으로써 성부와 동등한 신성을 지니시며, 성부로부터 받은 신성을 성령에게 전달하신다. 성자께서 동등한 본질을 가지고 계시지만, 이로써 성자께서 성부가 되시는 것은 아니다. 성부와의 관계 안에서 성령과의 친교 안에서 성자로서 존재하시는 것이지 성부의 복제품으로, 제2의 성부로 존재하시는 것이 아니다.또한 성부로부터 신성을 받아 성자이심은 성부보다 하등함을 의미하는 것이아니라 다름, 상이함을 의미한다. 성령은 성부와 성자와의 관계 안에서, 신성을 받으셨지만 성령 또한 동등한 신성을 지니신 삼위 중 한분이시다. 여기서도 받는다는 것이 하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서로에게 서로의 선물로 존재하는 상호 관계를 의미하는 것이다. 각 위는 절대적으로 다르고, 절대적으로 유일하지만 각위는 본질적으로 일치하시고, 다른 두 위와의 관계 안에서 존재하신다. 즉 성부는 성부이시지, 성자나 성령이 아니시고 성자나 성령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성부는 성자와 성령과의 관계 안에서 성부시다. 삼위의 관계가 가능한 것은 각 위가 유일하시기 때문이고, 각 위가 성부, 성자, 성령이라는 유일성을 가지고 존재할 수 있는 것은 관계 안에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말이다. 관계는 소유나 혼동의 관계가 아닌 이타성의 관계, 각 위의 유일함 안에서의 관계를 의미한다. 즉 관계함이 유일하게 하고, 상이함이 삼위를 일치시키는 것이 된다. 각 위의 다름은 다른 위를 위한 선물이다. 각 위는 당신 자신을 다른 위를 위해 비우시고, 주시기 위해서 존재한다. 다른 위를 위해서 존재하심이 바로 성삼위의 존재 방식이다. 이것이 사랑의 존재 방식이다. 다른 이를 위하여 자신을 비움(KENOSIS)이 이 분들의 관계 방식이다. 자신의 유일함은 온전히 다른 위를 위하여 내어 주기 위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삼위일체 하느님의 삶이다. **김미정 아녜스 교수 수녀님 (파리 예수회대학 교의신학 전임교수)의 은총론에서 인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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