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유다의 배신과 예수님의 모습 그리고 나와 우리들의 모습 발견하기 | 카테고리 | 성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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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정임 | 작성일2014-06-02 | 조회수1,610 | 추천수1 | 신고 |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유다의 배신과 예수님의 모습 그리고 나와 우리들의 모습 발견하기
마태오 복음서를 따라 묵상해 보면 ... 마태오 26장에 유다와 베르도에 대한 예고가 함께 나옴을 볼 수 있었다. 유다는 이미 예수님을 배신한 상태였다. 유다가 수석 사제들을 찾아가 예수님을 넘겨 주면 무엇을 줄 작정이냐고 이미 거래를 하고 은돈 서른 닢을 받은 상황이었다(마태 26,14-16 참조)
그러므로 마태오 복음서 26장 20절 이하에서의 상황은 제자가 배신할 것을 예고하시는 장면이라기 보다는 유다가 배신한 사실을 알리는 장면이라고 해도 좋을 장면이었다. 그런데 성경은 제자가 배신할 것을 예고하시는 것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미 배신했고, 끝이 난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제자가 배신할 것을 예고하신다는 의미에는 어떤 큰 뜻이 있는 것일까?
예수님께서는 이미 유다가 당신을 은돈 서른 닢에 수석 사제들에게 팔아넘겼음을 아셨다. 그렇다면 유다만 조용히 불러서 이야기해도 좋았을 것 같은데 예수님은 열두 제자와 함께 저녁 식탁에 앉으셔서 이미 유다가 팔아넘긴 사건을 아직 일어나지 않은 사건처럼 말씀 하시고 계시지 않는가? 함께 밥을 먹는 식탁 공동체를 볼 수 있었다. 우리 말로 한식구...
이 장면을 통해 이런 점이 느껴진다. 유다의 문제는 유다 개인의 문제로 보지 않으시는 예수님의 마음이다. 이미 당신의 공동체에 함께 살고 있는 형제적 관점에서 보시는 마음을 느낄 수 있다. 형제가 당신을 이미 팔아넘겼지만 공동체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사건으로 보고 함께 머리를 맡대고 의논해 보길 원하시는 마음은 아니었을까?
결국 유다가 이미 예수님을 은돈 서른 닢에 팔아 넘겼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인 것처럼 말씀하시는 이유는 제자들 누구라도 다 그럴 가능성 안에 있음을 말씀하시는 것은 아닐까? 누구도 유다처럼 될 수 있는 가능성 안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없지 않는가? 이점을 함께 고민해 보길 원하시는 마음은 아니었을까?
그런데 제자들의 반응은 이랬다. "주님, 저는 아니겠지요?" 아, 예수님께서 얼마나 슬프셨을까? 제자들의 입에서 나오는 반응은 나만 아니면 된다고 하고 있었다. 그러시면서 당신을 배신할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볼 수 있도록도 해 주셨다. "나와 함께 대접에 손을 넣어 빵을 적시는자, 그가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이 말씀을 새겨 들었다면... 누가 예수님과 함께 대접에 손을 넣어 빵을 적시는지 보는 눈이 있었다면...
그런데 여기서 더 웃기는 것은 ... 이미 예수님을 은돈 서른 닢에 팔아넘긴 유다의 말이다. 이미 다 저질러 놓고도 ... 시치미를 떼고 천연덕스럽게 "스스님, 저는 아니겠지요?" 이렇게 말하고 있지 않는가? 여기에서 유다가 예수님과 제자들 앞에 무릎을 굻었다면...
수석 사제들이 정말 예수님의 얼굴을 몰라서 잡지 못했을까? 이미 유다가 예수님을 팔기 전에도 수석 사제들은 예수님의 얼굴을 알고 있었다. 예수님은 지하 조직에서 얼굴을 감추시고 일하셨던 분이 아니었지 않는가?
아무튼 예수님의 마음은 이미 유다가 모든 일을 다 저질러 끝난 일임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에게는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고 하시고 있었다. 어떤 마음에서 그러셨을까?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기에 마음을 다해 서로 애써서 돌려보려고 노력하라는 의미는 아니었을까? 이미 유다가 그런 일을 저질렀다고 알게 되면 제자들의 반응은 어땠을까?
그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라면 아직 누구에게도 책임이 없는 일이 되지 않는가? 누구의 책임이 아직 없는 상태에서는 서로 마음을 모으기가 조금 쉽지 않을까 싶다. 아마도 예수님께서는 교회 공동체가 당신의 마음으로 일을 의논하기를 바라시고 계신 것은 아닐까 싶다.
누군가가 예수님을 팔아넘긴 이미 끝난 사건이지만 ... 아직 누군가가 그 일을 하지 않았고 하려고 마음 먹고 있는 상태로 생각하고 머리를 맏대고 해결해 나가는 방법으로 일하기를 바라시는 마음이 느껴진다. 이미 일어난 어떤 사건을 가지고 의논할 때와 아직 일어났지만 일어나지 않은 일처럼 생각하고 풀어가는 모습은 아주 다르기에 그렇다.
그러나 제자들은 이 문제를 풀어나가지 못했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성찬례를 제정하시면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시면서 직접 보여 주셨다. 누군가의 발이 더러워졌다면 그저 당신이 하셨던 것처럼 허리를 굽혀 그의 발을 씻어주라고 ...
아마 유다가 회심하고 돌아오면... 유다의 발을 그렇게 허리를 굽혀 씻어주라고 ...
오늘날 교회는 회심하고 돌아오는 수많은 유다를 그렇게 허리를 굽혀 그의 발을 씻어 주고 있는가? 나는 내 곁에 있는 그런 형제를 그렇게 해 주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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