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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Re:모고해 에 대해서 문의 드립니다 카테고리 | 7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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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송영만 쪽지 캡슐 작성일2014-06-29 조회수4,252 추천수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죄에 대한 설명입니다.

죄를 짖기에 인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만 모고해를 하셨다면 그것을 바로 잡는 노력을 하시기 바람니다.


사죄(死罪)

 죽음에 이르는 죄. 교회 전통은 죄를 사죄와 경죄(輕罪)로 구별하여 왔다. 이는 성서가 중죄(重罪)의 개념을 즉 하느님의 나라를 차지하지 못하게 하는 죄들(갈라 5:19), 마땅히 죽어야 하는 죄들(로마 1:29), 암흑에 이르는 죄들(2고린 6:15)과 같이 구원의 부재(不在) 상태를 초래하는 죄와, 인간의 나약함과 부족에서 이루어지는 결점들로서 신앙인들도 범하는 일상적인 죄로 구분한 사실에 근거한다(1요한 1:8-2:2, 5:16-17). 교회교도권은 이와 같은 죄의 구별을 정식으로 정의(定義)한 일은 없으나 스콜라 학자들의 용례에 따라 이 용어를 사용한 것은 사실이다. 즉 트리엔트 공의회고해성사 때 '중한 죄들을' 모두 다 고백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죄의 종류를 변하게 하는 상황도 말해야 한다고 했으며 경죄도 함께 고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한 것이다(제14회기 5장).

   사죄와 경죄의 구별은 양이나 정도의 구별이 아니라 본질상의 구분이다. 흔히 죄의 종류를 병(病)과 죽음비유하여 구별한다. 사죄의 본질은 생명과 은혜의 하느님을 배역(背逆)하는 것이다. 사죄는 인간창조주이시며 구원자이신 하느님을 알면서도 완전한 자유의지로 그 하느님을 거역하고 피조물이나 자기 자신에 집착하여 생활하는 것으로 생명하느님과 이웃 인간을 완전히 이반(離反)한 행위이다. 인간창조주이시며 구원자이신 하느님을 알면서 양심을 거슬려 완전한 자유의사로 하느님과 그의 뜻을 거역하고 자기 자신이나 피조물에 집착하는 행동을 두고 하는 말로 생명하느님과 이웃을 완전히 이반한 태도나 마음을 의미한다(예레 2:13). 이에 대하여 경죄하느님사랑을 저버리지는 않았으나 불성실한 응답이라 할 수 있다.

   사죄와 경죄는 이와 같이 본질적인 차이가 있으나 이를 윤리생활에서 실제로 구별하기는 쉽지 않다. 일반적으로 죄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채워져야 한다. 즉 하느님의 뜻(계명)을 분명히 알고(인간적 인식) 완전한 자유의지동의하여 행동하는 것이다. 사죄와 경죄의 구별은 위의 두 조건에 계명의 중대성 여하로 결정된다. 사죄의 결과로는 하느님의 은혜인 초자연적 생명을 잃게 되고 그 상태에서 죽는다면 구원이 없는, 즉 지옥의 형벌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누구나 회개속죄가 필요하며 특히 사죄를 범한 사람은 지체하지 말고 회개하고 고해성사하느님자비용서를 받아 구원을 얻도록 해야 한다.      

  

가톨릭용어사전에서..


죄(罪)

죄는 인류의 역사에 있어 가장 큰 수수께끼 중의 하나이다. 그리하여 모든 시대의 철학종교인간존재의 기본적 체험에 속하는 이 ‘신비’를 해석하려고 시도하였다. 구원역사는 죄의 상태에 있는 인간구원하기 위해서 하느님 편에서의 끊임없이 반복된 시도의 역사이다. 이 역사는 그리스도 안에서 절정을 이룬다. 그리스도는 하느님 사랑의 충만한 계시이기 때문이다. 죄의 충만한 실재는 그리스도의 파스카 신비에서 나오는 기쁜 소식과 필연적으로 연결된다. 여기서는 ① 성서에 나타난 죄의 개념, ② 죄의 본질에 대한 신학적 고찰, ③ 신의 거부로서의 죄, ④ 사죄, 중죄, 소죄, ⑤ 결론의 순서로 고찰한다.

   1. 성서에 나타난 죄의 개념 : 죄와 죄책(罪責)에 대해서 성서는 명료하고 완전한 이론을 제시하지 못해도 의미심장한 내용을 제시하고 있다. 성서는 “하느님이 인간사랑하시고 돌보아 주시는 분이기 때문에 인간은 하느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사실을 서술하고 있다. 그러므로 죄의 가장 심오한 본질은 하느님의 솔선적인 사랑에 대한 응답의 거부로 나타난다.

   ① 구약성서 : 구약에서는 죄를 하느님의 율법과 원의에 대한 침범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죄는 규율의 회피이고 침범이다. 주님계명을 거스르는 불순명이다(신명 28:15-68). 창세기 3장은 낙원에서의 아담과 에와의 죄는 하느님 명령의 의식적인 침범으로 기술하고 있다. 하느님께 거역하는 그들의 반란은 신이 그들에게 준 것보다 더 소유해야 하겠다는 추정적인 원의에서 나온 것이다. 죄에 대한 구약의 가장 특징 있는 기술은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 맺은 계약에 잘 나타나 있다. 여기서 죄는 계약의 신을 망각하는 것으로 고찰된다(호세 1:3, 에제 16:1-9). 또한 하느님으로부터 이탈과 배은망덕으로도 고찰된다(이사 1:24, 아모 3:2). 하느님은 인간에게 당신의 은혜와 은총을 주시며 여기에 대한 응답으로 인간에게 당신의 계명에 충실하기를 원하신다. 그런데 인간은 하느님 계명순명치 않고 계약을 파괴하였다.

   ② 신약성서 : 신약성서에서는 인간참회를 하고 그의 마음과 방향을 바꾸도록 요구하고 있다. 여기서 죄는 주님께 대한 배은적인 도피로 고찰된다(루가 15:11-32, 탕자의 비유). 사도 요한과 바울로는 죄는 빛의 부인(요한 3:19, 8:12, 1요한 2:8-11, 에페 5:18-14), 진리의 부인(요한 8:44, 로마 1:18)으로, 고찰된다. 따라서 어둠과 거짓말과 상통한다. 사도 바울로는 그의 편지에서 죄의 성서적 개념에다 몇 가지 관점을 더 첨가하고 있는데, 인간의 나약으로, 하느님께 마땅히 돌려야 할 영광의 거부로 보고 있다(로마 1:18-32). 그는 또한 죄인은 하느님을 거슬러 증오 속에 살고 있다. “육체적인 것에 마음을 쓰는 사람은 하느님의 율법에 복종하지도 않고 또 복종할 수도 없기 때문에 하느님의 원수가 되고 맙니다. 육체를 따라 사는 사람은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릴 수 없습니다”(로마 8:7-8, 5:10 참조, 에페 2:14, 골로 1:21). 그러므로 죄인들은 하느님 나라로부터 제외된다(1고린 6:9, 갈라 5:21). 또한 죄는 인간 자신의 몸을 모독하는 것이다. 그 이유로서 인간의 몸은 성령의 궁전이기 때문이다. 이 성전은 죄악으로 파괴된다(1고린 3:16, 6:19).

   그리스도는 악의 세력에 대항하여 투쟁하는 야훼의 종이시다. 그리스도는 자신을 죄인들의 구세주(마태 9:13, 루가 15:19)로 나타내시고, 세상의 죄를 없이 하시는 하느님의 교양으로 나타내신다(요한 1:29). 만일 인간성령인도하심에 자신을 맡긴다면 신앙과 세례로써 그리스도와 함께 죄의 정복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죄는 이 세상에서 아직 완전히 정복되지 않았다. 이러한 이유에서 그리스도는 인간을 회심과 포기와 사랑에로 계속 초대하시며 이 같은 일을 교회에 위촉하셨다. 그리스도(지금은 당신의 교회)와 사탄, 빛과 어둠, 선과 악 사이의 투쟁은 종말까지 계속될 것이다.

   2. 죄의 본질에 대한 신학적 고찰 : 범죄의 가능성은 인간이 지상생활을 하는 동안 인간자유의지의 특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인간은 그의 모든 자유로운 활동에서 필연적으로 선을 얻으려 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선과 부(富)의 아름다움과 매력은 인간의 모든 활동을 가능케 하고 충동한다. 인간은 이 선과 부를 추구하는 데 전념하며 악을 행할 때에도 선의 가면 하에서 행하는 것이다. 또한 자신이 선택하는 것이 일시적이고 무가치하고 영구적인 선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선택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죄의 본래의 모순이라 할 수 있다.

   진실되고 영구적인 선은 최종적으로 하느님의 영광, 역사 안에서 하느님 계획의 실현, 인간세상구원에 있다. 이와 같은 의미에서 죄는 인간의 참된 임무와 소명으로부터의 이탈과 탈선이다. 인간은 단순히 자신만을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고, 공동업무의 성취와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존재하고 생활한다. 따라서 모든 죄는 세 가지 불의를 내포하고 있다. 즉 ㉮ 하느님을 거스르는 불의, ㉯ 인간 공동체와 이웃을 거스르는 불의, ㉰ 죄인 자신을 거스르는 불의이다. 이 말은 인간이 모든 죄에 있어서 이상 세 가지 침범에 대해서 심리적인 경험을 갖는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고, 오직 신학적 차원에서 이 같은 불의가 항상 초래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3. 신의 거부로서의 죄 : 죄는 본질적으로 하느님과 하느님 계획을 거부하는 것이다. 많은 신학자들이 이 관점을 강조한다. 오늘날 사람들은 죄에 대한 종교적 차원의 감각을 대부분 상실하였으며, 종교로부터 죄를 분리시키고 종교를 외면하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현대인들은 죄를 악이 아닌 하나의 불완전한 것으로 고찰한다. 이 같은 생각은 확실히 인간 중심적인 사고이다. 죄는 확실히 개인적이고 사회적인 차원을 갖고 있다. 그러나 종교적 차원은 다른 차원들의 기초가 되고 이 종교적 차원에서 다른 차원들은 그들 가치의 본연의 규범을 이끌어 낸다. 모든 것은 하느님의 존재에서 유래한다. 하느님은 인간에게 고유한 임무와 목표를 부여해 주셨다. 그런데 죄인의 범죄행위는 하느님의 계획을 배척하고 그의 취향에 따라 다른 목표를 지향한다. 따라서 죄인들이 하느님과 그의 도움을 배척하는 것은 하느님과의 기본적인 관계를 혼란시키고 이를 파괴하는 것이다. 또한 범죄로써 하느님께 자신의 예속을 거부하는 것이다. 예속의 거부는 최고의 주님이신 하느님께 마땅히 드려야할 순명을 거부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함으로써 인간은 신이 창조물의 본성에 심어 주신 질서와 율법을 무시하는 것이다.

   ① 죄의 사회적 차원 : 현대인들이 죄의 사회적 차원에 대해서 갖는 의식은 매우 민감하다. 특히 그리스도교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신비체와 하느님 사랑과의 관계가 적절히 표현되어야 한다. 이의 적절한 예가 사도 요한의 편지에 표현되어 있다. “만일 누가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그의 형제를 미워한다면 그는 거짓말쟁이다. 그 이유는 보이는 형제사랑하지 않는 자는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 없기 때문이다”(1요한 4:20). 우리의 많은 죄는 이웃과 동료들에게 손해를 줄 뿐 아니라 악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이 같은 일은 불의와 악한 표양과 악한 협조 같은 죄에서 특히 잘 표출된다. 이 같은 범주에 사회의 건전치 못한 풍토의 조성과 묵인, 악에 오염된 주변환경을 개선하려는 노력의 결여와 소홀 등이 포함된다.

   한편 대부분의 개인적 특성을 갖고 있는 죄들도 사회적 차원을 띠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죄는 공동체의 최종임무를 실현하는 데 있어서 장애가 되기 때문이다. 죄인은 자신의 모든 죄를 통해서 이 같은 임무를 수행하기를 거부하고 대신 자신의 취향대로라는 목적을 성취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로에 의하면 그리스도 교인들은 “그리스도의 지체이며 개별적으로도 신비체의 회원이다”(1고린 12:27 참조).

   그리고 신비체의 모든 지체들은 서로 밀접히 결합되어 있다. 만일 한 지체가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면 다른 지체들도 고통을 받는다(1고린 12:26 참조). 따라서 죄로 인하여 병중에 있는 지체들은 은총의 생활을 해치며 다른 지체에 도움을 줄 수 없을뿐더러 신비체 건설에 해를 가져온다. 이와 같은 의미에서 신비체에 있어서 죄의 결과는 본질상 사회적 차원을 갖는다.

   ② 죄의 개인적 차원 : 죄인이 자신의 죄로써 자기 자신을 추구하고 보다 용이한 길을 선택한다 하여도, 그의 마음의 심오한 곳에는 교활하고 정신적인 병으로 인하여 고통을 받으며 그의 참된 행복과 그의 최종목적을 포기하게 되는 것이다. 인간은 신에 의해서 지정되기 않은 목적에서는 자신의 행복과 목적을 발견할 수가 없는 것이다. 즉 인간은 범죄로써 자신이 선택한 다른 목적으로 방향을 바꿈으로써 신의 최종목적을 거부하게 된다. 죄는 또한 인간의 완전한 성숙과 발전을 방해하고 거부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죄는 병든 인격의 증상이고 정신적 혼란과 질병의 증상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가 우리 죄의 병을 치료해 주시는 분으로 묘사된 것은 결코 우연만은 아니다(이사 53:5, 1베드 2:24).

   4. 사죄(死罪), 중죄(重罪), 소죄(小罪) : 인간은 가벼운 죄와 중죄, 단점들, 사소한 반칙과 범죄행위를 쉽게 구별한다. 또한 실천적 판단을 내릴 때, 누구든지 모든 죄가 다 같은 것이 아님을 잘 알고, 실제로 이와 같은 기반에서 행동한다. 이러한 이유에도 불구하고 죄의 서로 다른 중대성에 대한 신학적 설명은 몇 가지 논쟁과 문제점들을 안고 있다.

   ㉮ 죄의 상이한 단계 : 구약성서에 어떤 죄들은 하느님과의 근본적인 단절을 가져오고 그의 은총을 상실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 같은 죄들은 신명기의 저주에 나열된 죄들이다(신명 27:15-26). 신약성서는 몇 가지 심각한 죄와 죽음에 해당하는 죄(로마 1:28-31, 1요한 3:14), 혹은 하느님 나라로부터 제외되는 죄(1고린 6:9, 갈라 5:19-21, 에페 5:3-5, 묵시 22:15)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사도 요한이 죽음의 죄라고 부르는 이 죄는 가장 큰 죄의 종류이다(1요한 5:16). 한편 가벼운 죄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는데, 이들은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오지 않는다. 이 같은 죄들은 의인(義人)들에 의해서도 자행될 수 있는 죄들이다. 이처럼 ‘우리의 잘못을 용서하소서’ 하고 아버지께 청하는 것은 일상생활의 사소한 잘못에 관한 것이다(마태 6:12).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소죄’, ‘대죄’라는 구체적인 개념과 용어가 신약성서에 제시되지 않았어도 이와 같은 개념을 암시해 주는 표지들이 있다.

   교회의 가르침은 하느님과 교회공동체를 거스르는 작은 결점과 중대한 잘못을 항상 뚜렷이 구별해 왔다. 사죄와 소죄의 구별은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결정되었다. 모든 대죄는 그 수와 종류대로 고백해야 한다고 하였다. 그 이유로서 그러한 죄가 있는 사람들은 분노의 자식들이며 하느님의 원수가 되기 때문이다. 한편 소죄에 대해서는 고백의 의무가 없지만, 속죄를 장려한다. 소죄은총의 상태를 파괴하지 않기 때문이다(Denz, 1537). 사죄와 소죄의 두 범주는 윤리신학에서 주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윤리법칙의 모든 침해는 이 두 범주 중 하나에 속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윤리신학자들은 죄를 사죄·중죄·소죄의 3단계로 구별하려고 시도한다. 유죄적인 행위들의 분류를 위해서 다음과 같은 기본적 구별이 도움이 될 것이다. 사죄와 소죄죄인의 주관적 조건의 단계이다. 즉 유죄행위로서 하느님으로부터 자신을 단절시키고 은총의 상태를 상실했느냐, 혹은 은총의 상태를 상실하지 않고, 다만 영성생활의 힘을 감소시켰느냐에 달린 것이다. 중죄와 가벼운 죄는 최종목적의 실현을 위해 필요한 객관적 질서에 초래된 손상의 관점에서 취한 단계이다. 윤리적 질서에 대한 객관적인 중대한 침해는 보통으로 사죄의 표지이다. 그러나 항상 그렇지는 않다. 그 이유는 완전한 인식의 결여나 자유의지의 부족은 사죄의 근원을 주관적으로 예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객관적 윤리질서의 가벼운 침범은 보통으로 소죄의 표지이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가벼운 침범이 때로는 하느님을 거스르는 의식적인 반역과 반란의 기회가 될 때 사죄가 될 수 있다.

   ㉯ 사죄와 소죄의 본질 : 모든 죄는 하느님의 뜻을 거부하고 하느님과의 관계를 단절하는 것이다. 신학자들은 일반적으로 소죄는 사죄처럼 하느님의 뜻에 직접적이고 완전한 거부를 가져오지 않고, 하느님의 뜻을 게으르게, 불성실하게 따르는 것이라고 한다. 전통적인 윤리신학은 행위의 주관적 불완전성을 이차적 이유로 생각하고, 사물의 객관적 중대성에서 첫째 이유를 찾는다. 우리는 중대한 일에 있어서 하느님의 법을 침범하거나, 중대한 일이지만, 완전한 인식과 자유의지가 없이 하느님의 법을 침범할 때이다. 오늘날에는 소죄를 설명하는데 있어서 행위의 주관적 불완전성을 가장 중요시한다. 그 이유로서 이때에는 ‘최종적 결정’이나 ‘기본적인 선택'을 구성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편 사죄는 하느님의 뜻과 인간의 올바른 목표에 반대되는 ‘최종적 결정’을 하기 때문에 사죄가 성립된다. 이때에는 죄스러운 결정과 심각한 무질서에 대한 명백한 인식과 자유의지의 충분한 동의가 전제된다. 인간의 전 생애 중 사죄는 최종적이며, 취소할 수 없는 선택은 아니다. 인간이 생존하는 동안에는 참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종결정은 죽음의 순간에만 될 수 있다. 또한 사죄는 보통으로 중대한 대상에 의해서 야기된다. 다만 예외적으로 작은 대상이 사죄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사죄와 소죄의 본질과 조건들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인간은 하느님의 뜻에 반대되는 생활에 자신을 맡기기를 결정할 때 사죄를 범한다. 여기에는 항상 충분한 인식과 의지의 완전한 동의를 전제로 한다. 또한 하느님의 뜻을 채우는데 있어서 단순히 소홀히 할 때 소죄를 범한다. 이 같은 일은 중요치 않은 일에 이어서 하느님의 법을 침범하는 것이다. 혹은 중요한 일이지만 불완전한 인식과 의지의 불완전한 동의로써 하느님의 법을 침범할 때이다.

   5. 결론 : 오늘날 신자들의 교리교육사목쇄신이 필요하다. 그 중에서도 죄의식의 교육이 하느님 아버지의 무한히 자비하신 사랑으로 회개가 실현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살고 그리스도와 더불어 하나가 되도록 우리를 부르셨다. 죄의 그 중대성의 의식은 신앙의 차원이다. 죄인구세사적 차원에서 볼 때 계속 정화되어야할 것이다. 또한 죄와 죄의 결과에 대한 고찰은 교회에 부여된 화해성사의 차원에서 이해되도록 지향되어야 할 것이다. 이 성사화해죄인인간에게 전 구세사의 요약이다. 즉 그리스도의 승리에로의 참여이다. 그리스도는 당신의 죽으심과 당신의 가장 완전하신 사랑순명의 행위로써 세상의 죄에 대해 승리하셨기 때문이다. (兪鳳俊)

   [참고문헌] Giannino Piana, Peccato, Dizionario Teologico interdisciplinare, vol.II, Marietti Roma, 1977 / C. Henry Peschke, Christian, Ethics vol.I, C. Goodlife, Neale, Alcester and Dublin 1978 / Bernard Haring, Free and Faithful in Christ, vol.I, St. Paul Publications, Middlegreen, Slough 1978 / 유봉준, 기초윤리신학, 가톨릭출판사, 서울 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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