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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인물] 성경 속의 여인들: 레베카, 라헬, 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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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1-04-12 조회수5,987 추천수1

[성경 속의 여인들] 레베카, 라헬, 레아

 

 

누군가를 축복하는 일은 언제나 즐겁다. 축복까지는 아니어도 칭찬이나 격려의 말은 지루한 일상을 꽤나 설레게 한다. 그러나 축복에 관한 이야기일진대, 갈등과 다툼, 그리고 질투까지 벌어지는 참극이 일어난다면, 이건... 글쎄, 당혹스럽다가도 매우 궁금해지는 이야기다. 야곱의 어머니 레베카, 야곱의 아내 라헬과 레아의 이야기가 그렇다.

 

야곱의 어머니 레베카는 에사우를 향했던 이사악의 축복을 야곱을 위해 가로챈 장본인이다(창세 27,7-10 참조). 그 일로 형제간이었던 야곱과 에사우는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질 만큼 사나운 관계가 되어 버렸다(창세 27,41 참조). 창세기는 레베카의 행동과 그 행동의 결과에 대해 어떠한 판단도, 심판도 제시하지 않는다. 독자들은 궁금해한다. ‘이건 잘못된 것이 아니냐’고, ‘하느님의 축복은 정당한 방법과 올바른 원의 속에 주어져야 한다’고.

 

레베카의 행동으로 야곱은 도주의 길을 떠난다. 그리고 야곱은 또 다른 여인들, 레아와 라헬을 만난다. 주지하다시피, 야곱이 사랑한 여인은 라헬이었으나 라헬의 아버지 라반은 또 다른 여식, 레아를 먼저 야곱의 아내로 들였다. 라헬을 얻고자 이미 7년을 일한 야곱은 다시 7년의 시간을 라반에게 고스란히 바친다(창세 29,15-30 참조). 하느님의 축복을 이어받은 야곱은 이제 레아와 라헬 사이에 벌어지는 질투와 갈등의 당사자가 된다.

 

레아는 자식을 낳았지만 야곱의 사랑에 목말라했고, 야곱이 사랑한 라헬은 자식이 없어 레아를 질투했다(창세 29,31;30,1 참조). 다반사로 일어나는 여인들의 사랑과 질투 이야기라 특별할 건 없다. 다만, 다시 질문해 보자면, 하느님의 축복을 받은 야곱 이야기에 왠 질투와 갈등이 이토록 많은가? 이건 축복인가, 저주인가?

 

룻기에서 라헬과 레아는 이스라엘을 세운 여인으로 칭송받는다(룻 4,11 참조). 한 민족을 세울 만큼 대단한 영웅적 덕목이나 능력과는 무관한 라헬과 레아다. 혹자는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이스라엘은 여느 민족처럼 자신들의 조상을 영웅화하면서 민족적 정체성을 드높이고자 한 게 아니라고. 맞는 말이다. 그러나 굳이 집안싸움이나 갈등을 조상들의 이야기에 첨가하는 것 역시 득 될 일은 없어 보인다. 거룩한 성조들의 이야기에 집요하리만큼 계속되는 여인들의 갈등은 하느님의 축복이 전해지는 인간 역사의 민낯이자 그 민낯이 곧 하느님의 섭리가 드러나는 방식이었던 셈이다.

 

현대의 종교는 절대적 진리와 그 진리의 교조주의적 정형화에서 개인의 힐링과 수련으로 대체된 현상을 보인다고 하버드대 신학자 하비콕스는 진단한다. 레베카, 라헬, 레아는 도덕적이지도, 절제미와 교양을 갖추지도 않은 평범한 여인들일 뿐이다. 더욱이 그녀들은 다투고 갈라지고 원망하고 슬퍼한다. 그런 평범하고 고단한 역사 안에서 하느님의 축복은 주어졌고 이어진다. 그녀들을 통해 현대 종교의 현상에 이런 질문을 던져보는 건 어떨까? ‘잘나야 신앙인인가?’, ‘능력이 있고 명망이 있어야 영성적인가?’, 아니면 이런 희망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나 같은 모자란 사람에게도 하느님은 축복하시고 함께하시는가?’ ‘나 같은 죄인에게도 축복이란 게 가능한 건가?’

 

[2021년 4월 11일 부활 제2주일(하느님의 자비 주일) 대구주보 3면, 박병규 요한보스코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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