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구약] 성경 이야기: 그렇기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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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21-04-14 | 조회수4,086 | 추천수0 | |
[성경 이야기] ‘그렇기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세기 3장은 뱀의 유혹에 빠진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음으로써 죄를 범하는 과정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느님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선악과를 먹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벌로 뱀만이 아니라 땅도 저주를 받습니다. 죄를 지은 아담과 하와에게는 노동의 고단함과 해산의 고통, 그리고 죽음이 주어집니다. 성경에서 죽음은 생명을 주신 분이 가장 먼저 언급하십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구원의 약속을 선물로 받습니다. 인간의 실패라는 드라마틱한 이 이야기를 그래서 한마디로 ‘그렇기 때문에’와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금지된 열매를 먹기 전까지는 허물없이 막역한 관계였습니다. 하와가 나타나자 ‘내 뼈이며 내 살’이라고 칭송하며 솟구치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던 아담입니다. 하지만 선악과를 먹고 난 후 그들이 하는 독특한 행동이 눈에 띕니다. 둘은 ‘눈이 열려’ 알몸인 것을 알아차립니다. 그리고 서둘러 무화과 나뭇잎을 엮어 상대로부터 자신을 가리기 시작했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죄를 짓고 난 후 금실이 좋았던 그들의 관계가 조금은 소원해졌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대목입니다. 뿐만이 아닙니다. 나뭇잎 옷을 두른 두 사람은 하느님께서 동산을 거니시는 소리에 놀라 나무 사이에 숨어 자신을 은폐하기까지 합니다. 스스로 두려움 때문에 하느님과의 분리를 선택하고 있습니다. 이는 자신들이 한 행동이 잘못된 것이었음을 암묵적으로 인정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죄의 행위로 생겨난 첫 결과는 다른 사람으로부터 자신을 가리는 것과 하느님과의 분리였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분리는 자신을 다른 무엇으로 치장하며 숨기는 것이었고, 하느님과 사람 사이의 분리는 나무 뒤로 숨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너, 어디 있느냐?” 하시며 아담을 찾으십니다. 이 말씀은 성경에서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건네는 첫 번째 질문이기도 합니다. 이미 이때부터 죄인이 하느님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죄인을 찾아나서신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성경 곳곳에서 하느님은 중요한 결정의 순간에, 또 중요한 선택의 순간에 인간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지심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동생을 죽인 카인에게, 속임수로 축복을 가로챈 후 형 에사우로부터 도망치는 야곱에게도 어김없이 질문을 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묵직한 질문으로 우리 삶 깊숙한 곳으로 찾아오십니다. 성경에서 하느님이 하시는 첫 질문은 “아담아, 너 누구냐”?가 아니라, “너, 어디 있느냐?”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너, 어디 갔느냐?”는 질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또한 그가 있어야 할 곳에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사실 아담과 하와가 있어야 할 곳은 바로 하느님 앞, 그곳이었습니다.
하느님의 이 질문은 ‘지금 이 시각’까지도 유효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여전히 우리에게도 묻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너, 어디 있느냐?”, ‘네가 있어야 할 곳에 너 진정 서 있느냐?’는 질문입니다. 나 자신 안에, 하느님 안에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며, 결국은 나의 존재에 대한 질문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죄 지은 두 사람에게 다시 질문을 하십니다. “왜? 어쩌다가 이런 일을 저질렀느냐?” 그러자 아담과 하와는 핑계를 대며 서로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전가합니다. 죄를 지은 자리에 책임지는 ‘나’가 없습니다. 남 탓과 변명으로 관계의 파괴만 일어날 뿐입니다.
성경을 보면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죄를 물으실 때 사람들이 보이는 반응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하나는 회피하고 핑계를 대는 유형입니다.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고 남의 탓으로 돌리는 사람들인데 우리가 살펴본 아담과 하와가 그러합니다. 죄를 인정하기보다는 남의 탓으로 돌리려던 아담과 하와는 ‘그렇기 때문에’ 죽어야 하는 첫 사람이 되었습니다.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벨을 죽인 형 카인은 죄를 고백하고 뉘우치기 보다는 “제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입니까?”라며 회피합니다. 죄를 인정하지 않은 카인의 모습은 ‘그렇기 때문에’ 인류 최초의 살인자가 됩니다.
이스라엘 최초의 왕 사울이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승리한 후 전멸시키라는 명령을 어겼습니다. 아말렉 임금 아각은 매우 호전적인 인물로 이스라엘에 큰 위협을 주는 왕이었습니다. 사울은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모든 전리품을 없애라는 명령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에 큰 위협을 주는 아말렉 왕 아각을 사로잡았으나 살려 두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전리품 가운데 좋은 것은 남기고 가치 없는 것만 전멸시켰습니다. 사무엘이 양과 소 울음소리를 듣고 그의 잘못을 질책하자 사울은 핑계를 댑니다. 양떼와 소떼는 하느님께 희생 제사를 드리기 위한 제물로 남겨 두었다고요. 사울은 이 불순종과 핑계 때문에 이스라엘에서 최초의 버림받은 왕이 됩니다.
죄를 대하는 두 번째 유형은 자신의 죄를 즉각 인정하고 회개하는 사람입니다. 다윗이 그랬습니다. 예언자 나탄이 다윗에게 밧 세바와의 죄를 꾸짖자 그는 즉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청하였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의 위대한 왕으로서 모든 신앙인의 모범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우리 신앙의 삶은 언제나 ‘그렇기 때문에’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이의 줄타기인 것 같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죄를 짓고 동산에서 쫓겨나는 아담과 하와를 위해 손수 가죽옷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가죽옷의 재료는 가죽, 즉 짐승의 가죽을 말합니다. 하느님께서 가죽옷을 만들어 입혀 주셨다는 것은 인간의 죄 때문에 어떤 동물의 희생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첫 희생 제사는 하느님께서 손수 준비하셨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모든 죄를 없애주는 마지막 희생 제물도 하느님께서 직접 준비하십니다. 바로 예수님이시지요. 십자가의 희생 제사가 바로 그러합니다. 금방 시들어 못 쓰게 되는 무화과 나뭇잎으로는 자신의 부끄러움과 죄를 감출 수 없습니다. 완전히 가려지지 않습니다. 아담의 허물은 예수님만이 가려줄 수 있습니다.
[월간빛, 2021년 4월호, 임미숙 엘렉타 수녀(툿찡 포교 베네딕도 수녀회 대구 수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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