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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Re:마태오복음 25장1절 해설 카테고리 |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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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정임 쪽지 캡슐 작성일2014-09-07 조회수1,913 추천수2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열 처녀의 비유(200주년 기념 주해서 발췌 139쪽-140쪽 )

 

1. 1) 신랑을 기다리는 열 처녀 비유(25,1-13)는 마태오복음만 있다. 이 비유의 기원을 두고 설이 구구

하다. 예수 친히 발설하셨다는 설(예레미아스), 초대교회에서 창작했다는 설(슈낙부르크), 마르 13,33-

37; 12,35-38; 13,25-28을 참작하여 마태오가 편집했다는 설(간드리), 예수 친히 발설하신 하느님 나라

비유(25,1-10ㄴ의 원형)와 문을 닫은 다음 두드려도 소용없다는, 어록의 상징어(25,10ㄷ-12 = 루카 13,

25)를 합쳐서 마태오가 편집했다는 설(그날카) 등 그야말로 백가쟁명이다.

 

2) 여기서는 위의 전승사 및 편집사 논쟁에 휘말리지 않고, 지금의 텍스트를 기록하면서 마태오가 품은

뜻을 찾고자 한다. 신랑은 재림하실 그리스도를 뜻한다(9,15), 열 처녀는 그리스도인을 뜻한다. 그 중

슬기로운 다섯 처녀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그리스도인들이요, 어리석은 다섯 처녀는 듣고도

지키지 않는 그리스도인들이다(7,21-27).

 

교회는 선인들과 악인들이 함께 사는 불완전한 공동체다(7,21-23.24.27; 22,11-14; 참조 : 13,24-30.36-

43), 신랑인 그리스도께서는 내림을 늦추신다(24,48; 25,5.9), 그렇지만  꼭 오신다. 한밤중에(24,43 참조),

곧 뜻밖의 시긴에 오신다(24,36.39.42.44.50; 25,6.13). 그분이 오실 때 그리스도인들은 마중나가야 한다

(1테살 4,17).

 

그런데 슬기로운 다섯 처녀만, 곧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한 그리스도인들만 실제로 마중나가서 혼인

잔치에 참석한다. 즉, 종말 축복을 누리게 된다. 이러석은 다섯 처녀, 곧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도 행하지

않은 그리스도인들이 "주님, 주님" 해봐야 이미 때는 늦었다(7,21-23.24-27). 그러니 늘 깨어 있어야 한

다(24,42; 25,13). 늘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24,44). 그 뜻인즉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늘 행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신랑이신 예수님이 언제 내림하실지 모르기 때문이다.(24,36.39.42.44.50; 25,6.13).

 

결론적으로, 마태오가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매우 사목적이다. 예수님이 내림을 좀 늦추시더라도

방심하지 말라. 그분은 예기치 않은 때에 꼭 오신다. 그분이 내림하실 때까지 그분의 말씀을 충실히 행

하라. 그것만이 내림하실 예수님을 맞이하고 구원받는 길이다 ㅡ 이렇게 마태오는 나름대로 그리스도인

의 참된 삶을 천명한 셈이다.

 

3) 그리스도인?의 참된 삶에 맞추어 이야기를 끌고가다 보니 이야기의 흐름이 자연스럽지 못하고 억지가

있게 마련이다. 어리석은 다섯 처녀가 미처 기름을 준비하지 않았다는 것, 신랑이 하필 한밤중에 온다는

것, 신랑이 어리석은 처녀들을 몹시 박대했다는 것 등 억지가 하둘이 아니다. 그러니 우리 이야기는 자연

스러운 비유가 아니고, 무리가 많은 우화(알레고리)다.

 

우화에는 으레 많은 은유(메타포)가 들어 있고, 은유는 교훈을 담고 있다. 신랑을 기다리는 열 처녀 비유

(25,1-13)에 그리스도인의 참된 삶에 관한 교훈을 담은 은유가 많이 나오는 까닭을 이제 알 만하다.  인

생은 복잡하므로 많은 교훈이 필요하며, 많은 은유로 이야기를 엮다 보니 이야기가 자연스럽지 못하고

무리한 우화가 될밖에.

 

2. 2) "하늘나라는 ...와 같을 것입니다"라는 서두는, 비록 시제가 다르기는 하지만, 가라지 비유의 서두

(13,24), 무자비한 종  비유의 서두(18,23), 임금의 아들 혼인잔치 비유의 서두(22,2)와 동일하다.

 

2) 구약성서에서의 야훼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혼인을 맺는다는 표현이 자주 나온다. 곧, 신랑은 야훼를,

신부는 이스라엘을 가리키는 은유로 나타난다(호세 2,18; 3,1; 이사 54,5-8; 62,4-5; 에제 16,7-8).

 

1세기 교회에서는 그리스도를 신랑으로, 교회를 신부로 가리키는 은유를 즐겨 썼다(9,15; 요한 3,29;

2코린 11,2; 묵시 19,7; 21,2.9). 단, 마태 25,1-13에서만은 교회를 뜻하는 은유가 신부 대신 신부의 여자

친구들이다.

 

참고삼아 알리거니와, 유다교에서 메시아를 뜻하는 은유로 신랑을 거론한 적이 없다. 예수께서도 자신을

신랑이라고 하신 적이 없는 것 같다.

 

3) 예수시대 결혼 풍습을 알아야 신랑을 마중나가는 처녀들 우화의 흐름을 따라갈 수 있겠는데, 불행히도

그 새대 결혼 풍습에 대한 정보가 빈약하다. 우화 밑바탕에 깔려 있는 결혼 풍습을 다음과 같이 추정해

보면 무난할 것이다.

 

ㅡ 이스라엘에선 약혼으로 법적 혼인이 성립된다. 약혼기간은 일년쯤 되는데, 그 동안 약혼자들은 합법

    적 부부이기는 하지만 성관계는 맺지 않는다. 그 동안 신부는 그냥 친정에 눌러 산다.

ㅡ 혼행 때가 되면, 저녁때에 신랑이 남자 친구들과 함께 신부 집으로 행차한다.

ㅡ 그러면 신부의 여자 친구들이 등불을 들고 신랑을 마중나간다. 그리고 신랑을 신부 집에 모셔온다.

ㅡ 하객들 모두가 신랑과 신부를 모시고 신랑 집으로 가서 밤종 내내 혼인잔치를 벌인다. 잔치는 무려

    한 주간 동안 계속된다(요한 2,1-12.  발췌  끝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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