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루카 복음서 10장 1절-24절-----송영진 모세 신부 | 카테고리 | 성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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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유타한인성당 | 작성일2014-10-13 | 조회수1,236 | 추천수0 | |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루카 복음서 10장 1절-24절>
10장
<1절-12절 : 일흔두 제자를 파견하시다>
1절..<그 뒤에 주님께서는 다른 제자 일흔두 명을 지명하시어, 몸소 가시려는 모든 고을과 고장으로 당신에 앞서 둘씩 보내시며,>--'그 뒤에' 라는 말은 앞의 9장에서 말한 일들이 있고 나서 시일이 지난 어느 날이라는 뜻입니다. '다른 제자'란 열두 제자가 아닌 다른 제 자라는 뜻입니다. '일흔두 명'의 제자들은 열두 제자보다는 중요성이 떨어지지만 열두 제자와 비슷한 직분 을 수행한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 외에도 일흔두 명의 제자를 더 뽑으실 수 있었다는 것은 그 당시 만 해도 예수님을 따라다닌 제자들이 무척 많았음을 뜻합니다.) 일흔두 명의 이름은 전해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일흔두 명이었을까? (일부 필사 본에는 '일흔 명'으로 되어 있기도 합니다.) 학자들은 '72' 라는 숫자를 해석하기 위해서 많은 시도를 했는데 확실한 결론은 없습니다. 그러나 많은 학자들은 '72'는 세계의 민족 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하고, 일흔두 명의 파견은 세계 속에서 선교활동을 하는 것을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합니다. 당시 사람들은 세계의 민족을 72민족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일흔두 명을 지명하시어(뽑으시어) 파견하신 것은 열두 사도의 파견과는 분명 히 구별되지만 그들이 해야 할 일들이 사도들과 비슷하기 때문에 그들에게 주는 가르침도 비슷합니다. '몸소 가시려는 모든 고을과 고장으로 당신에 앞서' 라는 말은 예수님께서 가시려고 계획 한 곳들로 제자들을 미리 보냈다는 뜻인데, 그것은 세례자 요한처럼 예수님의 활동을 미 리 준비하는 선교활동을 하라고 보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이 갔던 곳을 예수님이 나중에 전부 다 찾아가셨다고 볼 수도 없고, 그런 증거도 없습니다. 그래서 이것은 예수님의 활동뿐만 아니라 장차 교회의 활동까지도 미리 대비하는 파견이 었다고 생각됩니다. '둘씩' 보내셨다는 것은 서로 위로하고 도우라는 뜻이고, 또 서로 증 인이 되라는 뜻입니다.
2절..<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 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원래 '추수', 또는 '수확'이라는 말은 종말의 심 판을 뜻하는 말이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심판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는 일을 뜻하고 있습니다. '일꾼'은 '선교사'를 뜻합니다. '밭'은 세상이고, '주인'은 하느님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복음을 전하는 일꾼이 모자랐고, 지금도 많이 모자랍니다. 주인이 밭에 일꾼들을 보냈을 때, 해야 할 일은 많은데 일꾼이 적다면, 더 많은 일꾼이 필요하다고 느 끼는 것은 일차적으로는 일꾼들 자신입니다. 그래서 일꾼들이 주인에게 더 많은 일꾼을 보내 달라고 청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만일에 일꾼들이 자기 품삯만 받고 자기에게 맡겨진 일만 하고 가버린다면 더 많은 일꾼들을 보내 달라고 청할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인의 입장이 되어서 해야 할 일의 전체 양을 생각하는 성실한 일꾼이라면 더 많 은 일꾼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 어디 다른 곳에 일꾼들 을 데리고 계신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이 말은 하느님께 더 많은 사람들이 하느님의 일 꾼이 되려는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인도해 달라고 청하라는 말이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예수님께서 직접 청하시지 않고 제자들에게 청하라고 하시는가? 복음을 전 하는 일은 사실상 우리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은 그때나 지금이나 많은 일꾼들이 필요한 일입니다. 우리는 품삯만 받고 자기 일만 하고 가버리는 일용직 노동자 의 입장이 아니라 해야 할 일의 전체 양을 생각하는 주인의 입장에서 일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고용된 일꾼이 아니라 하느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즉 하느님의 일은 우리의 일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하느님께 더 많은 일꾼들을 보내 달라고 기도하면서 동시에 더 많은 일꾼들을 양성하는 일도 해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하느님의 은총과 도우심을 청 하는 것은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3절..<가거라.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예수님 께서는 제자들에게 '가거라.' 라고 명령하시면서도 '어린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 같다고 염려하십니다. 이 말씀은 선교활동을 하는 제자들이 받게 될 박해를 예고하는 말씀이면서 동시에 박해를 받게 되면 어린 양으로 행동하라는 가르침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양'은 원문대로 '어린 양'으로 번역해야 합니다. '어린 양'은 평화, 온유, 자기 방 어도 할 수 없는 나약함 등을 상징합니다. '이리 떼'는 박해자들의 폭력, 증오 등을 상징 합니다. 사실 어린 양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면 그 어린 양은 백퍼센트 죽게 될 것입니다. 그걸 알면서도 제자들을 파견하시는 것은 하느님께서 보호해 주신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 입니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 박해자들이 이리 떼처럼 폭력과 증오로 공격해도 같은 방식으로 대항하지 말고 어린 양처럼 온유와 사랑으로 대하라는 가르침이 기도 합니다.
4절..<돈주머니도 여행 보따리도 신발도 지니지 말고, 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마라.> --이 구절은 앞의 9장 3절에서 열두 제자를 파견하실 때의 지침과 같은 뜻입니다. 제자 들은 세속적인 수단에 의지하지 말고 하느님의 섭리에 대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 구절에는 9장 3절에 없었던, '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마라.' 라는 지침이 추가되 어 있습니다. 이것은 길에서 아는 사람을 만났을 때 아는 체도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쓸데없는 대화로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는 지침입니다. 당시에 그 지역에서는 길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면 모든 친지의 안부를 묻고 여러 가지 소식을 주고받는 것이 예의였습니다. 그래서 그런 인사는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형식적인 인사 때문에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선교활동에 전념하라고 하십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이 그만큼 긴박 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5절..<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먼저 '이 집에 평화를 빕니다.' 하고 말하여라.>--예수님께서는 4절에서는 길에서 형식적인 인사로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고 하셨지만, 5절에서는 어떤 집 에 들어가거든 먼저 평화를 비는 인사를 하라고 하십니다. 당시에 어느 집에 들어가면서 손님이 주인에게 평화를 비는 인사를 하는 것은 통상적인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지침은 단순히 인사를 하라는 것이 아니고, 그 집을 위해서 하느님의 평화를 기원하는 기 도를 하라는 것입니다.
6절..<그 집에 평화를 받을 사람이 있으면 너희의 평화가 그 사람 위에 머무르고,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되돌아올 것이다.>--'그 집에 평화를 받을 사람이 있으면'이라는 말은 그 집에 '평화를 이룩할 수 있는 사람', 또는 '평화에 합당한 사람'이 있다면, 이라는 뜻입 니다. 즉 그 집에 복음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 또는 복음을 받아들이는 사람 이 살고 있다면, 이라는 뜻입니다. '너희의 평화가 그 사람 위에 머무르고' 라는 말은 평화를 비는 기도를 했을 때 '하느님의 평화' 라는 축복이 그 집에 내릴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되돌아올 것이다.' 라는 말은 제자들이 대신 축복을 받게 된다는 뜻이 아니라 축복이 거부된다는 뜻입니다. (하느님께서 안 주신다는 뜻이 아니라 그 사람이 스스로 거부한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받을 수 있었던 평화였는데도 받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하느님의 평화, 은총, 구원, 축복 등은 받으려고 하는 사람만 받을 수 있습니다.
7절..<같은 집에 머무르면서 주는 것을 먹고 마셔라. 일꾼이 품삯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이 집 저 집으로 옮겨 다니지 마라.>--'일꾼이 품삯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라는 말은 선교활동의 대가로, 즉 영적인 은혜를 나누어 주는 대가로 생계비를 받을 수 있다는 뜻입 니다. 그러나 이것은 풍요로운 삶이 아닌, 단순한 생계유지만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같은 집에 머무르면서 주는 것을 먹고 마셔라.' 라는 지시는 한 집에 머무르면서 주는 대 로 먹고 마시고 생계를 해결하라는 지시입니다. 또 '이 집 저 집으로 옮겨 다니지 마라.' 라는 지시는 더 나은 대접을 받기 위해서 더 잘 사는 집으로 옮겨 다니지 말라는 지시입 니다. 무엇이든 주는 대로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8절..<어떤 고을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받아들이면 차려 주는 음식을 먹어라.>--이 구절은 7절과 같은 뜻입니다. 7절은 개인 집에 대한 것이고, 8절은 동네에 대한 것입니다. 여기 서 '받아들이면'이라는 말은 뒤의 10절의 '받아들이지 않으면'이라는 말과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어떤 고을은 제자들을 받아들이고, 어떤 고을은 받아들이지 않게 될 것입니다. '차려 주는 음식을 먹어라.' 라는 말은 '차려 주는 대로' 먹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어떻든 선교사들은 활동의 대가를 받아서 생계를 유지할 권리가 있지만, 어디까지나 생계유지로 그쳐야 합니다.
9절..<그곳 병자들을 고쳐 주며, '하느님의 나라가 여러분에게 가까이 왔습니다.' 하고 말하 여라.>--이 구절은 9장 2절과 같은 구절입니다. 즉 제자들이 수행해야 할 임무를 말한 것입니다. 제자들이 할 일은 병자들을 고쳐주는 일과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음을 선 포하는 일입니다. 여기서는 임무만 주신 것으로 되어 있지만 9장 1절에서 열두 제자에게 힘과 권한을 주신 것처럼 일흔두 제자에게도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힘과 권한도 주신 것 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병자들을 고쳐 주는 일'은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왔음에 대한 표징 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지금, 여기에' 가까이 다가왔으며, 그 모습은 인간을 구원하는 일을 통해서 드러납니다.
10절..<어떤 고을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한길에 나가 말하여라.>--제자 들을 받아들이지 않는, 즉 거부하는 고을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경우에는 그 고을을 떠 날 수밖에 없습니다. '한길에 나가 말하여라.' 라는 말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공개적으 로 말하라는 뜻입니다.
11절..<'여러분의 고을에서 우리 발에 묻은 먼지까지 여러분에게 털어버리고 갑니다. 그러 나 이것만은 알아 두십시오.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습니다.'>--발에 묻은 먼지를 털 어놓는 것은 그 동네와 인연을 끊는다는 표시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거부당하더라도 마 지막까지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발에 묻은 먼지를 털어버리면서도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 이 왔다는 말을 하라는 것은 복음을 선포하는 일을 포기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제자들이 복음을 선포한 다음에 그 복음이 거부당하더라도 그것은 제자들의 책임이 아닙니다. '이것만은 알아 두십시오.' 라는 말은 하느님의 나라가 왔을 때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은 알아야 한다는 경고의 말인데, 심판과 멸망의 말은 생략되어 있습니다. (이 말이 생략된 것에 대해서는 이제라도 회개하면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음을 암시하는 것으로 해 석할 수 있습니다.)
12절..<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날에는 소돔이 그 고을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라는 말은 엄숙하게 선언할 때의 관용어입니다. '그날'은 심판의 날입니다. '소돔'은 유대인들에게는 범죄와 멸망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날 에는 소돔이 그 고을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 라는 말은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고을 은 소돔보다 더 엄한 벌을 받게 될 것이다.' 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소돔이 회개했을 때 받았을 은총보다 '그 고을'이 복음을 받아들였을 때 받게 될 은총이 훨씬 더 크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더 큰 은총을 거부하는 것은 결국 스스로 더 엄한 벌을 자초하는 것입니다.
<13절-16절 : 회개하지 않는 고을들>
13절..<"불행하여라, 너 코라진아! 불행하여라, 너 벳사이다야! 너희에게 일어난 기적들이 티로와 시돈에서 일어났더라면, 그들은 벌써 자루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앉아 회개하 였을 것이다.>--12절에서 복음을 거부한 고을들에 대해 언급하신 예수님께서는 여기서는 회개하지 않는 고을들을 구체적으로 지목하시면서 멸망을 예고하십니다. '불행하여라.' 라 는 말은 '불행하게 될 것이다, 심판 때에 멸망하게 될 것이다.' 라는 뜻입니다. '코라진'은 갈릴래아 호수 북쪽에 있는 마을입니다. '벳사이다'는 코라진 옆에 있고, 베드로, 안드레아, 필립보의 고향입니다. 예수님께서 두 마을에서 행하신 기적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티로'와 '시돈'은 지중해변에 있는 도시들인데 이방인 지역의 대표적인 도시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당시에 두 도시는 이방인들을 상징하기도 하고, 하느님의 심판을 받게 될 도시를 상징하기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만일에 당신이 티로와 시돈에서 기적을 행하셨다면 그들은 벌써 회개했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그만큼 코라진과 벳사이다의 죄가 크다는 것입니다. 즉 코라진과 벳사이다는 기적을 보고서도 예수님을 믿지 않았고,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는 것입니다. 여기서 '자루옷'은 회개와 슬픔을 표시할 때 입는 옷입니다. 공동번역 성서는 '베옷'이라고 번역했는데, 우리가 알고 있는 그 '베'가 아니고 염소의 털로 만든 옷입니다. '재를 뒤집어쓰고 앉아' 라는 말은 회개를 표시하는 모습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참회를 할 때 재를 머리에 얹고 재 위에 앉아서 했습니다.
14절..<그러니 심판 때에 티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티로와 시돈은 복음을 들을 기회가 없었지만 갈릴래아 지역은 복음을 들었습니다. 따라서 듣고도 거부한 갈릴래아 지역 사람들이 받을 벌은 티로와 시돈이 받을 벌보다 더 엄할 것입니다. (이 구절은 티로와 시돈을 칭찬하는 뜻도 아니고, 그들이 구원을 받게 될 것이라는 뜻도 아닙니다. 이 구절은 복음을 듣고도 믿지 않고, 기적을 보고서도 회개하지 않는 갈릴래아 지역의 사람들이 심판과 엄한 벌을 받게 된다는 것을 강조하는 구절입니다.)
15절..<그리고 너 카파르나움아, 네가 하늘까지 오를 성싶으냐? 저승까지 떨어질 것이다.> --'카파르나움'은 예수님의 활동 중심지였습니다. 그래서 다른 곳보다 더 많은 기적을 행 하셨을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곳보다 더 많은 은총을 받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더 많은 은총을 받았기 때문에 더 엄한 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네가 하늘까지 오를 성싶으냐?' 라는 말은 교만하지 말고 자만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저승까지 떨어질 것이다.' 라는 말 은 코라진이나 벳사이다보다 더 엄한 벌을 받고 더 비참한 신세가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저승'이라는 말은 원문에는 '하데스'로 되어 있는데, 공간적으로는 하늘과 반대되 는 곳입니다. 구약성경에서는 일반적으로 죽은 사람들이 머무는 장소로 되어 있는데, 신 약성경에서는 믿음 없는 자들이 임시로 머물면서 벌을 받는 장소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 고 있습니다.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지옥'과는 좀 뜻이 다릅니다. 16장 19절-31절의 '부 자와 라자로의 비유'에 나오는 부자가 죽어서 가 있는 곳이 바로 그곳입니다.
16절..<너희 말을 듣는 이는 내 말을 듣는 사람이고, 너희를 물리치는 자는 나를 물리치는 사람이며, 나를 물리치는 자는 나를 보내신 분을 물리치는 사람이다.">--이 구절은 예수 님께서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이름으로 행동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해 주시는 말씀입니다. (10절에서 말한, 제자들을 받아들이지 않는 고을이나 코라진, 벳사이다 같은 고을에 대한 경고의 말씀이기도 합니다. 즉 제자들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하느님을 거부하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너희의 말을 듣는 이'란 복음을 받아들이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너희를 물리치는 자'는 복음을 거부하는 자를 뜻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이를 거부하는 것은 복음을 거부하는 것이고, 복음을 전하도록 선교사를 파견하신 분, 즉 예수님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곧 예수님을 보내신 하느님 을 거부하는 것이 됩니다.
<17절-20절 : 일흔두 제자가 돌아오다>
17절..<일흔두 제자가 기뻐하며 돌아와 말하였다. "주님, 주님의 이름 때문에 마귀들까지 저 희에게 복종합니다.">--제자들이 어디로 가서 활동을 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일흔두 제자가 기뻐하며 돌아왔다는 것은 그들의 활동이 대체로 성공적이었음을 나타냅니다. '주 님의 이름 때문에' 라는 말은 그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권한을 행사했음을 나타냅니다. 제자들은 자기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마귀들을 복종시킨 일에 대해서 놀라고 기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제자들이 마귀들을 복종시켰다는 것은 마귀들을 쫓아냈다는 뜻입니다.
18절..<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나는 사탄이 번개처럼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제자들이 마귀를 쫓아낸 것은 곧 사탄이 패배했다는 뜻입니다. 제자들의 승리는 곧 예수님의 승리입니다. '사탄'은 마귀 두목의 이름입니다. 예수님께서 사탄이 번 개처럼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을 보셨다는 것은 사탄의 패배를 보셨다는 뜻인데 하느님 나 라가 발전하면서 인간에 대한 악마의 지배력이 줄어들고 있고, 궁극적으로는 패배하고 쫓 겨나게 된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하신 것으로 해석됩니다. 여기서 '번개처럼'이라는 말은 하늘에서 땅으로 떨어지는 것을 표현한 것입니다. (번갯불 의 번쩍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요한 묵시록 12장 9절을 보면 사탄이 미카엘과의 싸움 에서 패배하고 땅으로 떨어지는 장면이 있습니다.
19절..<보라,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고 원수의 모든 힘을 억누르는 권한을 주었다. 이제 아무것도 너희를 해치지 못할 것이다.>--'보라.' 라는 말은 장엄하게 선언할 때의 관용어입니다. (공동번역 성서는 이 말을 빼버렸는데, 잘못된 번역입니다.) 19절은 예수님 께서 제자들에게 직접적으로 권한을 주시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제자들을 파견하실 때 주 신 힘과 권한을 다시 확인하시는 말씀으로 해석됩니다. '뱀과 전갈'은 악령, 악의 세력, 적대 세력 등을 나타내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그래서 뱀 과 전갈을 밟는다는 것은 마귀나 악한 세력을 물리친다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원수'는 사 탄입니다. '원수의 모든 힘'은 사탄의 모든 능력을 뜻합니다. 그래서 '원수의 모든 힘을 억 누르는 권한'은 마귀를 쫓아내는 권한을 좀 더 강하게 표현한 것입니다. '이제 아무것도 너희를 해치지 못할 것이다.' 라는 말은 제자들을 지켜 주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거꾸로 생각하면 사도시대에 교회가 받았던 박해를 미리 예고하는 말씀이고, 또 그렇게 박해를 받게 될 때에 예수님께서 지켜 주실 것이라는 약속이기도 합니다. 이 약속이 있기 때문에 제자들은 용기와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20절..<그러나 영들이 너희에게 복종하는 것을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여라.">--여기서 '영들'은 악령들입니다. 제자들은 자기들이 악령들을 복종시 켰다고 기뻐했는데(17절), 예수님께서는 악령들을 복종시키는 기적을 행했다고 교만에 빠 지지 말고 자기 자신의 구원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으라고 가르치십니다. 사실 하느 님께서는 다른 방법으로도 악령들을 굴복시킬 수 있는 분입니다.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여라.' 라는 말은 '생명의 책'에 이름이 기록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라는 뜻입니다. '생명의 책'이란 구원 받을 사람들의 명단이 기록되어 있는 책인데(묵시 20,15), 그 책에 이름이 기록된다는 것은 곧 구원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21절-24절 : 하느님 아버지와 아들>
21절..<그때에 예수님께서 성령 안에서 즐거워하며 말씀하셨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 시니, 아버지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 어졌습니다.">--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성공적인 선교활동에 대해 아버지께 감사기도를 드리십니다. '성령 안에서 즐거워하며 말씀하셨다.' 라는 말은 '성령과 기쁨으로 가득 차서 기도하셨다.' 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느님을 '아버지' 라고 부르시는 것은 하느님과 예수님이 아주 친숙한 부자 관계라는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미 소년 시절 때부터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불렀습니다(2,49). '하늘과 땅의 주님'이라는 말은 창세기 14장 19절에서 온 표현인데, 하 느님은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분, 주님으로서 우주 만물에 대한 지배권을 가지신 분이라는 뜻입니다. 하느님은 그런 주님이시기 때문에 당신이 주고 싶은 사람에게 은총을 주실 수 있는 분입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스스로 잘난 체 하는 사람에게는 안 주시고 보잘것없는 사람에게는 주십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감사기도의 이유입니다. '지혜롭다는 자들'은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을 가리킵니다. '슬기롭다는 자들'은 사두가 이파 사람들과 헤로데 당파에 속한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유대인들은 옛날부터 지혜로운 현자들이 하느님의 계시를 받게 된다고 생각했는데, 율법학자들, 바리사이, 사두가이, 헤 로데 당파는 자기들이 지혜로운 사람들이라고 자처하면서 잘난 체 했던 사람들입니다. '이것'은 하느님의 계획, 예수님의 복음 등을 뜻합니다. '이것을 감추시고' 라는 말은 하느님께서 잘난 체 하는 사람들에게는 구원의 계획이나 복 음을 감추시고, 안 가르쳐 주셨다는 말인데, 이 말은 사실상 자칭 지혜로운 자들이 복음 을 거부하는 태도를 뜻하는 말입니다. '철부지들'은 일차적으로는 예수님의 제자들을 가리키고, 넓은 뜻으로는 가난하고 무식한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라는 말은 그런 가난하고 무식하고 낮은 계층에 있는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율법학자들이나 바리사이들은 그 런 무식한 사람들은 구원을 받지 못할 것이라고 하면서 경멸했지만 하느님께서는 오히려 그런 가난하고 낮은 사람들에게 구원의 은총을 베푸셨고, 예수님은 그런 보잘것없는 사람 들이 구원을 받게 된 것에 대해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잘난 체 하는 사람들이 구원을 받지 못하게 된 것을 감사드리는 것은 아 닙니다. 지금 예수님의 감사기도는 스스로 잘났다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회개를 촉구하는 말씀이 됩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라는 말은, "이렇게 이루어진 아버지의 선하신 뜻에 저도 동의합니다." 라는 뜻일 수도 있고, "이렇게 이루어 진 것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기 때문에 아버지를 찬양하고 감사드립니다." 라는 뜻일 수 도 있습니다. 여기서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라는 말은 '하느님의 은총', 또는 '하느님의 구원 계획' 등을 뜻하는 말입니다.
22절..<"나의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나에게 넘겨주셨다. 그래서 아버지 외에는 아들이 누 구인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또 아들 외에는, 그리고 그가 아버지를 드러내 보여 주려는 사람 외에는 아버지께서 누구이신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22절의 원문은 형식으로는 21절에 이어지는 기도로 되어 있고, 내용으로는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공동번역 성서는 원문대로 기도로 번역했고, 새번역 성경은 내용을 보고 22절을 독립되어 있는 말 씀으로 번역했는데, 공동번역 성서처럼 그냥 기도로 번역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생각됩 니다.) '나의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나에게 넘겨주셨다.' 라는 구절에서 '모든 것'이라는 말은 '모든 지식과 모든 권한'으로 해석됩니다. 하느님께서 예수님께 모든 지식과 모든 권한을 넘겨주셨다는 말은 곧 예수님은 하느님과 대등한 위치에 있고 같은 권한과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아버지와 아들만이 서로를 완전하게 알 수 있고, 아들만이 아버 지를 드러내 보여 줄 수 있습니다. 여기서 '안다.' 라는 말에는 완전히 일치되어 있는 관 계라는 뜻도 들어 있습니다. '드러내 보여 주다.' 라는 말은 '알려 주다.' 라는 뜻입니다. '아버지 외에는 아들이 누구인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라는 말과 '아들 외에는,... 아버지 께서 누구이신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라는 말은 아버지와 아들만이 서로를 완전하게 알 수 있고, 완전하게 일치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한 인간이 하느님을 알고 하느님과 일치되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거쳐야 합니다. '그가 아버지를 드러내 보여 주려는 사람 외 에는'이라는 말은 예수님께서 선택하신 사람만이 하느님을 알 수 있고, 하느님과 일치를 이룰 수 있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여야만 하 느님을 알 수 있고, 하느님께 다가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구절은 요한복음 14장 6절,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 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라는 말과 요한복음 14장 9절,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라는 말과 같은 뜻입니다.
23절..<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제자들에게 따로 이르셨다. "너희가 보는 것을 보는 눈은 행복하다.>--앞의 21절에서 하느님께서 철부지들에게 드러내 보여 주신 것에 대해 감사를 드렸던 예수님은 이제 그 철부지들, 즉 제자들에게 그들이 얼마나 큰 축복을 받았 는지를 직접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보는 것'이란 예수님의 기적, 가르침, 행하신 모든 일 들을 뜻합니다. 제자들이 그것을 보았다는 것은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음을 본 것이고 예수님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 여기서 '본다.' 라는 말은 믿고 받아들이는 것을 뜻합니다. '보는 눈'은 '보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너희가 보는 것을 보는 눈은 행복하다.' 라는 말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이 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복이 있다.' 라는 뜻입니다. '행복하다(복이 있다).' 라는 말은 행복하게 될 것이다, 즉 구원의 행복을 얻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24절..<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예언자와 임금이 너희가 보는 것을 보려고 하였지만 보 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것을 들으려고 하였지만 듣지 못하였다.">--이 구절은 앞에서 말한 '너희는 행복하다.' 라는 말을 보충 설명한 구절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라는 말은 엄숙하게 선언할 때의 표현입니다. (공동번역 성서는 이 말을 빼버렸는데 잘못된 번역입니다.) 구약시대 때부터 많은 사람들이 메시아를 갈망했고 기다렸지만 보지 못했습니다. '예언자들'은 미래를 보았던 사람들이고 하느님의 말씀을 세상에 전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많은 예언자들이 메시아를 예언했고, 자신들도 메시아를 기다렸지만 메시아 시대의 행복 을 누리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제자들은 메시아를 보게 되었으니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왜 '임금'이 언급되었는지, 그 이유를 확실하게 알 수 없습니다. 글자 그대로 구약시대 임금들을 뜻할 수도 있고, 임금들처럼 중요한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을 뜻할 수도 있습니다. 어떻든 그런 사람들도 메시아 시대를 보고 싶어 했지만 보지 못했는데 제자들처럼 평범한 사람들이 메 시아 시대를 보게 되었으니 얼마나 행복한가, 라는 뜻의 말씀입니다. 여기서 '본다.' 라는 말은 23절에서처럼 보고, 믿고, 받아들이는 것을 뜻하고, '듣는다.' 라 는 말은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구원의 시대가 왔다는) 소식, 즉 복음을 듣고, 예수 님의 가르침을 듣고, 실천함으로써 구원을 얻게 되는 것을 뜻합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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