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구약] 구원 역사의 발자취를 따라: 야곱의 여정 (2) 인간의 불행과 하느님의 축복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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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21-06-12 | 조회수4,447 | 추천수0 | |
[구약성경 순례 - 구원 역사의 발자취를 따라] 야곱의 여정 (2) 인간의 불행과 하느님의 축복
지금 우리는 야뽁강에 와 있습니다. 야뽁강은 아랍어로는 자르카강(‘푸른 강’)이라고 합니다. 이 강은 현재 요르단 왕국의 수도인 암만(성경에는 랍바) 근처의 샘에서 시작되어 요르단강으로 흘러드는 지류입니다. 이 강을 건너면 수콧에 이릅니다. 야곱은 야뽁강을 건너 수콧에 정착하였다가 그곳에서 요르단강을 건너 마침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갔습니다(창세 33,17-18).
야곱은 야뽁 건널목에서 형 에사우를 만날 준비를 합니다. 형을 만나는 일이 그에게는 자신의 가장 어두웠던 과거와 마주하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외삼촌 라반의 거듭된 속임수를 경험하면서 그는 과거 자신이 형과 아버지를 속였던 일을 진심으로 통회하였을 것이고, 그만큼 형의 분노를 이해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형의 분노와 직면하기 위해 준비합니다. 먼저 심부름꾼들을 보내어 에사우에게 전갈을 보냅니다. 형이 장정 400명과 함께 그를 맞으러 온다는 소식에 두려움을 느낀 그는 만일의 공격에 대비하여 자신의 일행과 짐승을 두 무리로 나누고, 주님의 보호를 간청합니다. 그리고 에사우의 마음을 누그러뜨리고자 엄청난 양의 선물을 순차적으로 보냅니다. 그날 밤 그는 식솔들을 모두 강을 건너게 한 후 강 반대편에 혼자 남아 밤을 보냅니다. 그곳에서 그는 어떤 사람과 동이 틀 때까지 씨름합니다. 야곱은 이 싸움에서 엉덩이뼈를 다쳤지만, 그 사람이 축복을 줄 때까지 놓아주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야곱은 ‘하느님과 겨루고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다’고 해서 이름이 이스라엘로 바뀝니다. 야곱이 씨름한 사람의 정체는 모호합니다. 그러나 야곱이 “내가 서로 얼굴을 맞대고 하느님을 뵈었는데도 내 목숨을 건졌구나.”(창세 32,31) 하고 말한 것으로 보아 분명히 그는 이 사건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체험하였던 것 같습니다. 우리 역시 어떤 사람 혹은 어떤 사건을 경험한 후 불현듯 하느님을 뵈었다는 깨달음을 얻는 경우가 있지 않습니까? 이 사건으로 야곱은 이름만 바뀌지 않고 새로운 인물로 변모됩니다. 두려움으로 홀로 뒤에 남았던 야곱은 이제 식솔들의 맨 앞에 서서 에사우를 맞이합니다. 동생은 형 앞에서 일곱 번 땅에 엎드려 절합니다. 곧 군주에게 바치는 예우로 형을 맞습니다. 에사우는 20년의 세월이 지나 다시 만난 동생을 끌어안고 입을 맞추었으며, 그들은 함께 울었습니다.
에사우는 세이르로 돌아갔고, 야곱은 수콧에 천막을 쳤다가 요르단 강을 건너 스켐에 정착하였습니다. 반평생을 나그네 살이로 보낸 야곱이 스켐의 아버지 하모르에게서 땅을 매입한 것을 보면 아마도 그는 이곳에 영구히 정착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는 이곳에 제단을 쌓고 ‘엘 엘로헤 이스라엘’(이스라엘의 하느님 엘)이라 불렀습니다.
야곱이 처음 길을 떠날 때 베텔에서 만났던 하느님은 과연 약속대로 야곱을 지켜주셨고, 복을 베풀어주셨습니다. 그래서 야곱의 말대로 모든 것이 넉넉한 상태가 되었습니다(창세 33,11 참조). 그런데, 하느님의 축복은 우리를 인생의 모든 불행에서 지켜줄까요? 스켐에 정착한 이후의 야곱의 삶을 살펴봅시다. 스켐에서 야곱의 고명딸 디나는 강간을 당하였고, 그 일로 인해 야곱의 두 아들 시메온과 레위가 스켐인들을 죽이는 바람에 야곱 일족은 결국 스켐 땅을 떠나야만 했습니다. 사랑하는 아내 라헬은 막내 벤야민을 낳다가 죽었습니다. 맏아들 르우벤은 아버지의 소실 빌하와 동침하는 비행을 저질렀습니다. 또 기근으로 인하여 야곱은 이집트로 이주해야만 하였고, 결국 생애의 마지막을 그곳에서 맞았습니다. 그런데도 야곱은 하느님께서 자신이 사는 동안 늘 목자가 되어 주셨다고 말합니다(창세 48,15). 과연 하느님의 축복을 받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어떤 의미에서 야곱의 삶을 복된 삶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2021년 6월 13일 연중 제11주일 가톨릭마산 8면, 김영선 루시아 수녀(광주가톨릭대학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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