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인물]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들: 이사악(창세 21,1-7; 22,1-19; 26-27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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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21-06-28 | 조회수3,885 | 추천수0 | |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들] 이사악(창세 21,1-7; 22,1-19; 26-27장)
이사악의 탄생은 하느님의 약속이 지연되는 가운데 믿음을 간직한 아브라함에게 주신 그분의 선물이요 보증이었습니다. 이사악이란 이름은 하느님께서 주신 ‘웃음’(창세 21,6)이란 의미인데요, 정작 그의 삶은 웃음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그는 아버지 손에 짐승처럼 도살되어 제물이 될 뻔한 아들이요, 망나니 큰아들과 사기꾼 작은아들을 둔 ‘비운의’ 아버지였으니까요. 혹자는 스펙터클하고 감동적인 일화들로 가득한 아버지 아브라함이나 아들 야곱 이야기에 비해, 이사악 이야기가 분량도 적고 내용도 너무 평범하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주인공이라기보다는 다른 두 성조의 이야기에 낀 ‘조연’ 같다 할까요. 그렇지만, 이사악은 그들만 못하지 않습니다. 그는 아브라함이나 야곱과는 달리, 시련이 닥쳐도 하느님께서 주신 약속의 땅 가나안을 결코 떠난 적이 없었고, 심지어 자신의 목숨을 하느님께 바치려던 유일한 성조였으니까요.
예수님의 조상 이사악의 삶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예수님과 무척이나 닮아있습니다. 무엇보다 이사악과 예수님 모두가 아버지의 사랑을 가득히 받은 유일한 아들이었지요. 이사악은 믿었던 아들에게 기만당했고(창세 27,1-29), 예수님은 사랑하시던 제자에게 배신을 당하셨습니다. 죽음을 향해 장작을 지고 모리야 산에 올랐던 이사악처럼(22,6-8),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고 골고타 산에 오르셨지요. 이사악은 임신하지 못하는 아내를 위해 하느님께 기도했고(25,21), 예수님은 구원을 잉태하지 못하는 백성을 위해 성부께 기도하셨습니다. 심지어 당신을 십자가에 못 박아 매달았던 이들을 위해서도 말이지요. 이사악은 아버지 손에 묶여 장작 위에 올려졌어도 저항하지 않았고(22,9),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 달려 죽기까지 성부께 오롯이 순종하셨습니다. 이사악이 아버지 아브라함과 함께 하느님께 순명했던 모리야 산은 후일 예루살렘 성전이 세워지는 자리가 되었고(2역대 3,1), 예수님께서는 바로 그 예루살렘에서 수난과 죽음을 통해 유일하고 완전한 제사를 완성하심으로써 당신께서 은총과 구원의 성전 그 자체이심을 온 세상에 드러내셨습니다.
“아버지, 번제물로 바칠 양은 어디 있습니까?” 했던 순진한 물음이 결국 제 자신이 장작 위에 얹어지는 참담한 상황으로 돌아왔을지라도, 불평하거나 저항하지 않았던 이사악을 기억합니다. 아버지에게 배신당하고 버려진 듯한 그 순간에도 아버지에 대한 신뢰를 잃지 않았던 그야말로,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를 앞서 보여준 참 조상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런 이사악을 두고, 소극적이고 피동적인 삶을 산 성조라 그 누가 평할 수 있을까요.
소극적이고 평범해 보이는 우리의 일상도 하느님 보시기엔 결코 초라한 하루가 아님을, 나와 누군가의 구원을 위한 영원한 무게를 지니는 하루임을 다시 한번 되새깁니다. 매일 장작을 지고 산에 올라 자신을 하느님께 봉헌하는 우리가 되길 기도합니다.
[2021년 6월 27일 연중 제13주일(교황 주일) 대구주보 3면, 강수원 베드로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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