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예수와 세례자 요한의 상이점 비교 | 카테고리 | 성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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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병민 | 작성일2015-01-10 | 조회수1,662 | 추천수1 | 신고 |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세례자 요한은 광야에서 금욕적인 삶을 살았던 것에 반해, 예수님은 신랑이 온 기쁨의 삶을 사셨다. 따라서 예수님의 활동지는 광야나 사막이 아닌 인간 사회 였다. 이렇게 요한은 고행과 금욕의 인물이지만 예수는 여느 사람들처럼, 사람들 가운데서 생활하시며 그들처럼 먹고 마신 분이다. 요한은 회개의 세례를 주었으나, 예수 메시지의 중점은 회개가 아니라 하느님 나라에 중점을 두었다. 이는 예수와 하느님과의 관계와 비슷하게, 인간도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데 중점을 두셨다. 이 상이함은 예수가 제시하는 하느님상과 요한이 제시하는 하느님상에서도 나타난다. 즉 요한의 하느님은 회개하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에게 벌을 내리는 진노의 하느님, 심판의 하느님인데 반해, 예수의 하느님은 죄인들과 연대성 안으로 들어오시는 하느님이시다.
요한에게는 하느님 나라의 오심이 심판의 표징으로 나타나는데, 예수에게 이 하느님 나라가 죄인들에 대한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의 표징으로 나타난다. 예수의 메시지는 기쁜 소식이요, 하느님의 최종적이며 궁극적인 은총의 제공이다.
이렇게 예수에게 핵심이 된 선포는 회개가 아니라, 하느님 나라였다. “ 때가 차서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라는 말씀 속의 회개는 가까이 다가온 하느님 나라를 맞기 위해 필요한 준비 과정이지 예수 메시지의 핵심은 아니었다. 예수께서는 가까이 온 하느님 나라를 위협과 심판으로 보여 주시지 않고, 병자들을 치유하시면서, 서지 못하는 사람을 일으켜 세우시면서, 죄인들과 함께 하시면서 보여 주셨다.
이렇게 요한의 시간이 하느님 나라가 오기 전 마지막 시간이라면, 예수의 시간은 하느님 나라의’가득 찬’ 시간이었다. “때가 차자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드님을 보내시어 여인에게서 태어나 율법 아래 놓이게 하셨습니다(갈라4,4). 이 같이 요한과 예수의 차이는 바로 하느님 의 나라가 오기 전의 마지막 시간과 하느님 나라의 시간의 차이이다. 구약의 시대가 가고, 메시아의 시대가 온 차이이다.
**김미정 아녜스 수녀 교수님의 은총론 ‘예수와 세례자 요한의 상이점’에서 인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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