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Re:모세의 죽음 을 묵상하며 | 카테고리 | 성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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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송두석 | 작성일2015-01-18 | 조회수1,187 | 추천수2 | 신고 |
(십자성호를 그으며) 먼저 교리서에 보시면 다음과 같이 "가나안 땅에의 입성은 신약의 영원한 생명을 얻음"을 예표합니다. 교리서 1222 : 요르단 강을 건넘으로써 하느님의 백성은 아브라함의 후손에게 약속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선물로 받는데, 이는 영원한 생명의 상징이다. 교리서 1228에 의하면 구약의 모든 예표(사건)은 신약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됩니다.
교리서 1228 : "구약의 모든 예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성취된다."
모세오경을 읽고 저 또한 모세가 가나안 땅(신약의 영원한 생명을 예표)에 입성하지 못하게 된 것에 대해 의문을 가졌었습니다. 마침 제가 요즈음 신명기를 읽고 있고 오늘 아침에 읽은 부분이 신명기 3장에 모세가 하느님께 가나안 땅에 입성하게 해달라고 간청함에도 하느님께서 단호하게 거절하시는 부분이 나옵니다. 제가 이 부분과 관련해서 여러 차례에 걸쳐 묵상을 한 적이 있었는데 나눔 차원에서 적어 봅니다. 김종업 형제님께서도 아시는 바와 같이, 민수기 20장에 나오는 므리바의 반석을 지팡이로 두번 친 사건으로 말미암아(하느님께서는 바위를 지팡이로 치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바위에게 말로 명령하라 하시었는데, 모세가 하느님의 말씀에 순명치 아니하고 바위를 두번 지팡이로 쳐서 물이 나오게 했음), 민수기 20장 12절의 하느님 말씀에 의해 모세는 요르단 강을 건너지 못한 채(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입성하지 못한 채) 광야(느보산)에서 죽게 됩니다. 가나안 땅에 입성할 자격이 있는 단 한 사람을 뽑으라면 아마 모세였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세가 가나안 땅에 입성하지 못한 것은 전기한 므리바의 반석을 지팡이로 친 사건(불순명 사건)으로 성경은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가나안 땅에 입성한 이스라엘 백성은 과연 누구일까요? 잘 아시는 바와 같이 민수기 1장의 인구조사 당시 20세 미만이었거나 그 후에 태어난 이스라엘 백성이었습니다. 민수기 1장의 인구조사 당시 20세 이상이었던 사람들 중에 가나안 땅에 입성할 수 있었던 사람은 단 두 사람이었는데 칼렙과 여호수아였습니다. 민수기 14장에 나오는 가나안 땅 정찰대 사건 당시 하느님의 말씀에 대한 절대적 믿음을 보였던 칼렙과 여호수아 단 두 사람만 가나안 땅 - 신약의 영원한 생명 예표- 에 입성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교리서의 가르침대로 구약의 모든 예표는 신약의 그리스도에 의해 성취되는데, 이러한 예표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새로이 태어난 그리스도인들(우리가 세례를 받을 때 하느님의 신비에 의해 우리 안에 새로 태어난 생명이 살게 됩니다)이 영원한 생명을 받게 됨을 상징하고 있는 것입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에도 두 부류가 있습니다. 가나안 땅에 입성하지 못한 채 광야에 뼈를 묻은 백성(신약의 외적인간 상징, 코린토 2서 4장 16절 참조)이 있는가 하면, 칼렙과 여호수아및 어린 백성들(신약의 내적인간 상징, 코린토 2서 4장 16절 참조)이 있습니다. 성경에 의하면 우리 안에 두 사람이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여러 차례에 걸쳐 우리 안에 두 사람이 살고 있음에 대해 다음과 같은 계시의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우리의 외적 인간은 쇠퇴해 가더라도 우리의 내적 인간은 나날이 새로워집니다. (코린토 2서 4장 16절) 나의 내적 인간은 하느님의 법을 두고 기뻐합니다. (로마서 7장 22절) 구약의 민수기에 극명하게 구분되는 두 부류의 백성(광야에 뼈를 묻은 백성과 가나안 땅에 입성한 백성)이 가진 상징성은 신약의 백성들에게는 다음과 같은 상징성(한 사람 안에 두가지 인격상태가 존재하는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1.모세를 포함하여 광야에 뼈를 묻은 사람들 : 신약의 그리스도인들 안에 존재하는 불순명하는 영적상태(외적인간) 2.칼렙과 여호수아를 포함하여 가나안 땅에 입성한 사람들 : 신약의 그리스도인들 안에 새로 태어난 생명-즉 바오로 사도가 말씀하시는 "내적인간"을 상징하며 성령의 성화은총으로 날로 성화되어 긍극적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됨. 영적으로 보면 우리 안에 새로 태어난 생명은 하느님을 향해 살아 있으며 하느님을 섬기며 하느님의 법에 순명하고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합니다. 반면에 우리 안에 외적인간은 세상을 향해 살아 있으며 자신의 육신을 섬기고 자신의 유익과 관련해서만 이웃을 사랑하게 되고 자신의 이익과 관련될 경우(conflict of interest) 이웃을 해치게 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을 찬미하여 글을 마칩니다. 추신 : 교리서 260 을 보시면, "하느님의 모든 계획의 궁극목적은 모든 사람이 복되신 삼위일체(한 분이신 하느님)과 완전한 일치를 이루게 하는 것이다." 라는 내용이 있읍니다. 이와 관련 신구약 성경에 나타나는 하느님과의 일치를 살펴보면 구약에서의 하느님과 이스라엘의 일치는, 속죄일에 대제사장이 짐승의 피에 의지하여 일년에 단 한차례 지성소에 들어감으로써, 하느님이 이스라엘 안에, 그리고 이스라엘이 하느님 안에라는 상징적인 일치가 이루어졌읍니다. 신약에 와서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의 은총으로 우리가 예수그리스도를 믿을 때 그리스도의 성혈에 의지하여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그리스도는 우리 안에" 있게 되는 하느님과의 일치가 일어납니다. 그리스도인들 안에 하느님과 일치를 이루는 새로 태어난 생명(내적인간)이 신비롭게 존재합니다. 바로 하느님 나라에서 누리게 될 영원한 생명입니다. 또한 그리스도인들 안에 아직도 하느님께 불순종하는 영적상태가 존재합니다. 성령의 은총으로 날로 성화되어 감에 따라 이러한 불순종의 상태는 약해지기도 하고 주님을 뒤로 하고 세상을 향해 살아 갈 때 불순종하는 외적인간이 오히려 더욱 강해지기도 합니다. 외적인간이 강해질 때 우리는 기쁨과 평화를 상실합니다. 내적인간이 성장해 갈 때 우리에게 주님이 주시는 기쁨과 평화가 넘쳐 흘러 이웃에게 그리스도를 삶으로 전하게 됩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믿고 순명하는 칼렙과 여호수아를 통해 신약의 백성 또한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하느님(예수님) 말씀을 믿고 따라야 함을 구약의 예표를 통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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